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블러드] - 이 영화가 듣보잡이 되어버린 이유.

쭈니-1 2009. 12. 8. 23:37

 

 


감독 : 크리스 나혼
주연 : 전지현, 코유키
개봉 : 2009년 6월 11일
관람 : 2009년 6월 13일
등급 : 18세 이상

영화가 그렇게 엉망인 걸까?

어느덧 토요일 아침은 제게 영화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중으로는 항상 바쁘고, 주말에도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보니 유일하게 남는 시간은 토요일 아침뿐입니다. 만약 영화를 보지 않는다면 늘어지게 늦잠 자는 것이 전부인 시간이니 결국 저는 잠을 줄이고 영화를 보는 셈입니다.
잠보인 제가 잠을 줄이면서 영화를 보는 것이기에 금요일 저녁이 되면 영화 선택에 심사숙고합니다. 애초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는 [블러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블러드]보다는 [거북이 달린다]가 점점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래도 전지현의 해외 진출작인데...'라는 생각에 [거북이 달린다]를 향한 제 마음을 [블러드]로 고쳐 잡곤 했습니다.
[블러드]를 보겠다던 제게 구피는 '그거 재미없대.'라고 초를 칩니다. '누가 봤대?'라고 물으면 '그런 건 아닌데 딱 봐도 재미없게 생기지 않았어?'라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댑니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은 비단 구피뿐만이 아닙니다. 전지현의 해외 진출작이라는 화려한 수식이 붙은 영화라면 당연히 개봉 첫 주 개봉관을 최대한 확보하고 관객몰이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만약 재미가 없다면 2주차부터는 개봉관과 관객이 급속도로 빠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블러드]는 아닙니다. 아예 개봉 첫 주부터 개봉관 자체가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비해서 소규모이고, 관객들도 전혀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지 않습니다.
이건 영화를 본 후 '에이, 재미없네.'가 아닌 아예 처음부터 '영화, 재미없겠네.'라는 반응과 같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일본에서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1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는 소식과 우리나라에서도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순위가 고작 7위였음을 감안한다면 관객들은 애초부터 이 영화에 관심이 없었던 겁니다. 과연 전지현의 해외 진출작이라는 수식어만으로 [블러드]에 관심을 가진 제가 이상한 걸까요?


 

나한테도 관심 좀 가져주지?


캐릭터는 갖다 버리고 배우 전지현만 남았다.

토요일 아침, CGV 공항에서 가장 작은 개봉관에 앉아 10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블러드]를 봤습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볼 때쯤에는 다른 영화들처럼 기대감을 안고 본 것이 아닌 '도대체 얼마나 엉망이 길래.'라는 호기심으로 본 것이기에 영화의 재미에 대한 기대는 처음부터 전혀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블러드]는 상당히 허술한 영화였습니다. 전지현의 해외 진출작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에 속지 않고 애초부터 이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은 관객들의 현명함이 놀라울 정도로 [블러드]는 허술했습니다. 굳이 이 영화와 비교할만한 영화를 찾으라면 [드래곤볼 : 에볼루션] 정도. 그러고 보니 이 두 영화엔 공통점이 있네요. 원작이 일본만화라는 점과 다국적 영화라는 사실인데... 만화 자체만으로는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작품들이 외국인 감독과 배우들을 만나 애처로울 정도로 허술해져 버린 것입니다.
[블러드]를 보고 소위 말하는 영화 평론가, 혹은 영화 기자들의 리뷰를 읽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영화는 엉망이지만 전지현은 나름대로 분전했다.'라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러한 평가는 전지현이 다분히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나온 대단히 관대한 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지현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연기자로써 그녀를 좋아할만한 영화가 극히 적었던 관계로) 그렇다고 그녀의 안티라고 할 정도로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그녀의 영화는 별로지만 CF에서 그녀의 섹시한 이미지는 남자 입장으로는 꽤 보기 좋았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블러드]에서의 전지현은 영화만큼이나 엉망이었습니다. 사야라는 캐릭터는 온데간데없고 세일러복을 입은 전지현의 모습만 비춰진, 전형적으로 캐릭터 표현에 실패한 배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주연 캐릭터의 단조로움 외에도 이 영화는 지적하고 싶은 것이 너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내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날 보는 시선들이 왜 그래?


뱀파이어영화인데 좀비들만 보이더라.

[블러드]의 가장 큰 장점이어야 했던 것은 뱀파이어영화라는 장르입니다. 최근 들어서 미국의 [트와일라잇], 한국의 [박쥐] 등 유난히 각양각색의 뱀파이어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 시점에서 [블러드]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야라는 캐릭터를 내세운 독특한 뱀파이어영화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블러드]를 보고 있으면 내가 뱀파이어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  버립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자신의 장르적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표현된 뱀파이어를 보면 그 해답은 나옵니다. 인간의 모습을 띄고 있는 뱀파이어가 본 모습을 드러내며 변형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뱀파이어라기보다는 늑대인간에 가깝습니다. 뱀파이어 일당이 떼거지로 사야에게 덤벼드는 장면은 무슨 좀비들 같았습니다. 뱀파이어가 뱀파이어 같지 않고 늑대인간과 좀비처럼 보였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 뱀파이어영화가 그 오랜 세월동안 인기일까요? 그것은 뱀파이어라는 존재에서 드러나는 특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뱀파이어는 그 원류인 드라큐라 백작에서도 나타나듯이 귀족적입니다. 신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스스로 인간임을 거부하고 인간의 피를 마시며 영생을 누리는 존재로 재탄생한 것이 바로 뱀파이어입니다. 그들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이고, 스스로 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존재입니다. [트와일라잇]은 그렇게 인간보다 우월한 뱀파이어의 이미지를 미소년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관객들의 열광을 얻어냈고, [박쥐]는 신을 섬기는 신부였던 한 남자가 뱀파이어가 되며 신에게 도전해야하는 고뇌를 진지하게 담아냈었습니다. 하지만 [블러드]에는? 모든 뱀파이어영화가 그러라는 법은 없지만 [블러드]의 뱀파이어는 그 특유의 매력을 모두 잃은 채 인간보다 하등한 존재로 보일 뿐입니다.


 

귀족 요괴인 우리 뱀파이어에게 무릎을 꿇어라.


모든 것을 포기해도 좋다. 하지만 클라이맥스는 포기하면 안 되지.

[블러드]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야라는 캐릭터는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서 스스로 영화의 캐릭터를 포기했습니다. 뱀파이어영화이면서 뱀파이어의 장점을 포기했고, 단순한 스토리를 통해 영화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재미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야와 오니겐(코유키)의 마지막 대결을 그린 클라이맥스도 포기했습니다.
오니겐이라는 캐릭터는 [블러드]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녀의 우아한 몸짓은 뱀파이어의 귀족적인 이미지와 유일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그 수많은 뱀파이어 중에서 가장 뱀파이어다운 오니겐과 사야의 마지막 대결을 저는 상당히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정적으로 이 영화를 실망하게 만드는 원흉이 되고 말았습니다. 애초부터 기대 따위를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을... 대결은 너무 허무하게 끝나 버립니다. 영화의 러닝타임을 20분 정도만 늘려서 이 마지막 대결을 좀 더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면(러닝타임을 20분이나 늘려도 [블러드]전체의 러닝타임은 2시간이 채 되지 않습니다.) 50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이해라도 되었을 텐데... 뭐가 그리도 급했는지 영화는 둘의 대결이 시작한지 채 몇 분이 되지 않아 시시하게 끝내버립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많은 분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극장을 빠져나갑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솔직히 이 이른 토요일 아침에 극장에서 [블러드]를 본 것에 대해서는 후회는 없었습니다. 물론 재미있는 영화를 본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영화가 재미없더라도 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줬다면 그 영화에 투자한 시간과 돈은 아깝지 않기 때문입니다. [블러드]를 보며 500억 원이라는 돈이 들어가고 국내 톱스타의 해외 진출작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이유를 직접 확인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이십대 후반의 나이로 세일러복까지 입었는데... 날 좀 봐줘요.  

이제 그만 폼 잡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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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24일 입니다 . 모든것을 24일에 겁니다
 2009/06/19   
쭈니 혹시 [트랜스포머 2]를 말씀하시는 건지... 저도 기대가 큽니다. ^^;  2009/06/19   
이빨요정
이 영화 패스입니다.
저도 24일에 올인 합니다.
 2009/06/20   
DayWalker 읽진 못했지만 소설이 원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변명을 만들어보자면 블러드에서의 뱀파이어는 원래 괴물입니다. ㅅㅅ;
레지던트이블의 T바이러스와 비슷하다고 해야 되나.
애니는 매우 짧은 단편이지만 매력(사실 본지 오래되서 기억도 잘 안나지만)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인상이 남아있습니다.

그런 소설류를 머라고 들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여하튼 애당초 애니화되기 쉽고 애니같은 스토리로 만들어진 소설에 속하겠죠. 은영전처럼요.

시나리오 선택부터 잘못되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양권에서 원작의 인지도에 기대서 묻어가볼려고 했던 것 같군요.

영화와 애니메니션의 매력과 표현법은 분명히 다릅니다.
DC와 마블같은 서양의 만화적 시나리오들은 스크린으로 끌어와도 그 매력이 충분히 표현되게끔 되어잇는 반면 일본의 만화와 애니는 그렇지 않습니다. 만화적세계에서만 그 매력이 표현되게끔 되어있죠.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끌어다 입은 꼴이랄까.

저도 24일을 기다립니다. 블루레이급 홍보영상을 봤는데 소름이 돋더군요.
어릴때 남자들의 로망인 로봇과 어른이 된 뒤의 로망인 애마, 이 두가지 남자들의 평생의 로망들을 소재로 스크린에 담아냈으니 참~
특히 남자들은 보지 않을 수가 없죠. ㅎㅎ
 2009/06/20   
쭈니 모두들 24일만 손꼽아 기다리시는 군요.(하긴 저도 그렇습니다. ^^)
[블러드]의 원작이 애니가 아닌 소설이었군요.
그건 몰랐습니다.
하긴 영화가 아닌 다른 매체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암튼... 다른건 몰라도 꽤 괜찮은 캐릭터를 가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뱀파이어의 피를 가지고 잇으면서 뱀파이어를 끊임없이 죽여야하는 주인공.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생략되고 앞뒤없이 칼만 휘둘러대니...
미국의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그래도 주인공들의 고뇌를 담고 있습니다.(아닌 영화들도 있지만) 하지만 이 영화는... 쩝~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암튼 재미는 없었습니다.
 2009/06/21   
블랙쪼
영화가 재미 없더라도 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수 있다면...... 동감! 동감!
그래도 영화가 "자장가"가 되어 잠들게 된다면, 그 허탈감 ㅋㅋ 우울함~~
[4885]를 잊을수 있는 "거북이 달린다"를 봐서 이번주는 즐거웠네요...
추격자가 스릴러적 요소가 있다면, 거북이는 인간적/서민적?? 이란 느낌....
 2009/06/21   
쭈니 역시...
이번주엔 보고 싶은 영화가 없어서 [거북이 달린다]를 보려고 했는데...
아직 시간이 없어서... ^^;
 2009/06/21   
이빨요정
역시 일본만화는 영화화가 불가능한것일까요?

보는내내 정말 어색했습니다.
배우들이나 배경들 전부 뭔가 사이즈가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은 듯한 느낌......
드라마가 진부한것은 참겠지만 이건 좀 이상했습니다.
심오하거나 난해한 주제의식같은것을 바란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이건 좀......아무리 액션을 위한 오락영화라지만
뭔가 듬성듬성 넘어가 버린듯...

그렇다고 액션구성을 잘 짜거나 화려한 비주얼을 보여주지도 못한거같습니다.
저말 이도저도 아니게 끝나버린듯...
 2009/10/02   
쭈니 일본 만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 자체가 어색했다는 것에 심각하게 공감합니다. ^^  2009/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