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샘 멘데스
주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개봉 : 2009년 2월 19일
관람 : 2009년 3월 4일
등급 : 18세 이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부를 만나다.
3월의 시작과 동시에 보고 싶은 영화들이 대거 개봉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2월 개봉작 중에서도 극장에서 놓치기 아까운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아직 3월 개봉작들이 개봉하지 않은, 다시 말해 2월 개봉작들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3월 4일 수요일. 저는 무작정 2월에 놓친 영화 중 한 편을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후보작으로 우리 스릴러 [핸드폰], 할리우드 스릴러 [인터내셔널], 그리고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뽑혔습니다.
그야말로 고민 많이 했습니다. 그날을 놓치면 불법 다운로드가 아니면 볼 수 있는 기회가 없기에 저는 정말로 극장에서 놓치기 아쉬운 영화 한 편을 고르기 위해 후보작에 오른 세 편의 영화를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전문가 리뷰에서부터 네티즌의 영화평, 그리고 극장 시간표까지 포괄적으로 살펴본 결과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최종 낙점되었습니다.
물론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전문가 리뷰와 네티즌 영화평이 다른 두 영화와 비교에서 양호했고, 집 근처 극장에서 알맞은 시간에 상영하고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보고 싶었습니다. 전설인 로맨틱 블록버스터 [타이타닉]의 세기의 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앳된 모습을 벗어 던지고 진정한 연기자가 되어 10 여년 만에 부부로 만난 것도 흥미로웠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미국의 중산층의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개인적인 바람과 한몫 했습니다.
그렇게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봤습니다. 초반부터 저는 이 영화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으며, 어느새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감정이 이입되어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에게 섭섭해 하며 결국엔 프랭크처럼 깊은 좌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선택한 제 결정은 결과적으로 탁월했고, 구피와 함께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남자인 저는 프랭크의 편이 되었지만 여자인 구피는 에이프릴의 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영화를 보고나서 둘이 오랜만에 열띤 논쟁을 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분명 사랑한다. 하지만 결혼은 사랑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난 프랭크가 충분히 이해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제가 남자라서인지 몰라도 프랭크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지만 막상 결혼 후에는 가족 부양을 위해서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 적성에 맞지 않은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프랭크. 그에게 아내인 에이프릴이 제안을 합니다. 이곳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나자고. 프랑스에서 자신이 돈을 벌 테니 프랭크에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를 만끽하라고 말합니다. 과연 아내의 이러한 제안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남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요? 프랭크도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이프릴의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이기엔 불안요소가 너무 많았습니다.
과연 에이프릴이 고수익이 보장된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으로 1년은 놀고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 후에도 에이프릴이 취직을 하지 못하면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아니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어른이라서 그러한 역경을 잘 헤쳐 나갈 수도 있다고 하지만 자신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프랑스라는 낯선 땅에 적응해야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지만 프랭크는 그 모든 불안요소에도 불구하고 에이프릴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회사의 일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에이프릴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프랭크가 그러한 결정을 내리자 갑자기 상황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극한 감정싸움을 벌인 이유는 에이프릴이 그 바뀐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해합니다. 제게 그런 상황이 온다면 저 역시도 생각을 달리했을 것입니다.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바뀐 상황에 대한 프랭크와 에이프릴의 상반된 반응
바뀐 상황이라는 것은 프랭크와 에이프릴에게 동시에 발생됩니다.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던 프랭크는 어느 날 사장으로 부터 능력을 인정받고 파격적인 조건으로 새로운 부서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프랭크로써는 당연히 그 제안에 갈등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프랭크가 프랑스로 떠날 생각을 했던 것은 지긋지긋한 직장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그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았고, 새로운 일을 도전할 기회를 얻었으며, 더 많은 돈도 확보했습니다. 프랭크가 프랑스로 떠날 이유가 없어진 셈입니다.
에이프릴에게도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녀가 셋째 아이를 임신하게 된 것입니다. 셋째 아이를 임신한 상황에서 프랑스로 이민 가서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에이프릴도 알기에 그녀는 뱃속의 아기를 포기하려합니다.
프랭크는 바뀐 상황을 받아들여 결정을 번복하려하고, 에이프릴은 바뀐 상황을 제거함으로써 애써 내린 결정을 유지하려합니다. 이 두 사람이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프랭크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에이프릴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뱃속의 생명을 죽이려하는 극한 선택을 하는 에이프릴. 그만큼 에이프릴은 지금의 현실에서 도망을 가고 싶었던 것일 테지만 제 상식으로는 자신의 행복이 아기의 생명과 맞바꿀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임신한 채로 프랑스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아기를 낳고 상황이 안정되면 그때 프랑스에 가면 되는 것일 테니까요. 영화 속 이웃집 남자의 대사처럼 프랑스가 도망가지는 않습니다.
뒤 바뀐 상황에 대해서 그들의 시선은 각각 달랐다.
그들은 서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헤어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제가 에이프릴에게 짜증이 났던 것은 프랑스로의 이민은 전적으로 에이프릴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프랭크를 위한 선택이라고 강변합니다. 그러면서 프랭크가 너무 현실에 안주하려든다고 비난합니다. 왜 그녀는 솔직히 나를 위해서 프랑스로 이민가자고 프랭크에게 말하지 않았던 걸까요?
처음 에이프릴은 회사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프랭크에게 그런 회사에서 자신을 낭비하지 말고 프랑스에서 자신을 되찾으라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프랭크의 상황이 바뀌었고 프랭크는 자신의 일에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프랭크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와 반대로 에이프릴은 상황이 점점 악화됩니다. 그녀가 프랑스로 이민가려고 했던 까닭은 미국에서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집안 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프랑스에 가면 자신도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런데 셋째 아기를 임신한 것입니다. 그것은 곧 직장에 다닐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대적 상황은 1950년대였으니 말입니다.
과연 그녀가 솔직하게 자신도 일을 하고 싶고 프랑스에 가면 일을 할 수 있으니 프랭크의 일을 포기하면 안 되겠냐고 애원했으면 프랭크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아니, 만약 프랭크가 자신의 입장만 고수한다면 둘은 그냥 헤어지고 각자의 길을 가면 되는 것 아닐까요? 마지막 에이프릴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하여 저 역시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을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에이프릴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그에게 기회를 주지도 않은 채 비난만 했습니다.
제가 너무 프랭크의 입장에 서서 영화 이야기를 쓴 것일까요? 어쩔 수 없이 저 역시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프랭크였다면 프랭크가 했던 그 모든 행동들을 저 역시도 했을 것이며 그렇기에 저는 완벽하게 프랭크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여자였다면 어쩌면 에이프릴을 이해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남자인 것을...
그들의 행복한 미소를 이제는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된 마이클 샤논. 솔직히 그의 독설에 뜨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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