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야하는 아픔

쭈니-1 2009. 12. 8. 23:12

 

 


감독 : 데이빗 핀처
주연 :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개봉 : 2009년 2월 12일
관람 : 2009년 2월 28일
등급 : 12세 이상

나도 시간을 거꾸로 살았던 적이 있다.

군대 제대 후(엄밀히 말하면 방위 소집해제 후) 학교에 복학하려면 6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기에 저는 학비를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아르바이트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던 비디오방입니다. 제게 있어서 비디오방 아르바이트는 천국과도 같았습니다. 하루 종일 영화에 쌓여서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처음엔 아르바이트 시간이 오후 시간대였는데 사장님의 신임을 얻어서 페이가 센 새벽 타임대로 변경되었습니다. 새벽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가 제가 일했던 시간으로 남들이 잠들 때 전 일했고, 남들이 일할 때 저는 집에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그러한 생활을 6개월 정도 했었습니다.
처음엔 좋았습니다. 새벽 타임 때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기에 한가했고, 한가했기에 더욱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술 약속을 잡을 수 없었고, 우여곡절 끝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려면 잠을 포기해야 했기에 전 언제나 피곤했고, 언제나 잠이 모자랐습니다. 아마도 그때 부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잠돌이가 되어버린 이유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처음 읽었을 때 참 매혹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늙어갈 때 혼자 젊어지는 것은 멋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갈 때쯤 저는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벤자민(브래드 피트)의 아픔이 마음으로 느껴졌습니다. 저처럼 하루하루가 아닌, 일생 전체를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야 했던 벤자민 버튼. 그는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사는 동안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술 한 잔하고 여자 친구와 정상적인 데이트를 하고 싶었던 제 작은 소망처럼, 남들이 쉽게 누리고 사는 것을 그리워하며 일생을 보내야 하는 지극히 불행한 삶을 살다 갔습니다.


 

남들이 사랑하는 그 시간, 나도 남들처럼 사랑하고 싶다.


벤자민 버튼의 일생 속으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어찌 보면 참 영리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이제 죽을 시간을 기다리는 데이지(케이트 블란쳇)가 딸 캐롤라인(줄라아 오몬드)에게 벤자민의 일기를 읽어달라며 시작합니다. 80세 노인의 얼굴로 태어났다는 벤자민의 거짓말 같은 일기는 캐롤라인의 목소리가 벤자민의 목소리로 바뀌는 그 순간 벤자민의 특별한 일생이 스크린 속에 펼쳐집니다.
이 영화가 일기로 시작한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벤자민 버튼이 태어날 때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의 일대기를 흝어 지나가는 동안 관객들은 제 3자의 입장에서 그의 일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으로 그의 일생에 뛰어 드는 것입니다. 어느 특별한 순간이 아닌 한 남자의 일생 전체를 테마로 했기에 그러한 훔쳐보기의 쾌감은 영화에 대한 지루함을 감소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이 전적으로 벤자민의 일기에 기대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벤자민이 일기장에 적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벤자민에게 중요한 그의 일생의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러한 부분마저 완벽하게 해결합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데이지입니다. 벤자민이 일기에 기록할 수 없었던 부분은 데이지의 목소리에 의해서 스크린 속에 투영됩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본 후 '이 영화는 참 영리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바로 이러한 부분 때문입니다. 영화의 초반은 벤자민의 특별한 이야기가 그의 일기 형식으로 그려지고, 후반부에는 벤자민의 죽음을 데이지의 회상으로 그려집니다. 벤자민이 데이지를 떠나 남은 일생을 보내는 과정은 벤자민의 일기로도, 데이지의 회상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과감하게 삭제되었습니다. 이로써 관객들은 한 남자의 일기와 그를 사랑한 한 여자의 회상을 통해 벤자민 버튼의 일생을 완벽하게 훔쳐보는 기회를 얻은 셈입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그와 그녀의 너무나도 슬픈 사랑 이야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제게 특별했던 이유는 벤자민과 데이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벤자민의 일생은 별로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의 각본을 맡은 에릭 로스의 [포레스트 검프]와 비교했을 때 벤자민의 일생은 오히려 잔잔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벤자민의 일생에 데이지가 뛰어들며 모든 것은 바뀝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그의 특별함이 시리도록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사랑하기에 데이지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벤자민의 슬픈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데이지는 노인의 모습을 한 어린 벤자민에게 손을 내밀어준 아주 특별한 아이였습니다. 모두들 벤자민의 흉측한 외모를 이해하지 못할 때 어린 데이지는 순수한 눈으로 그를 이해하고 어루만져 줬습니다. 그러한 데이지가 숙녀가 되어 벤자민에게 다가가려할 때 벤자민은 데이지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것은 찬란한 젊음을 뽐내고 있던 그녀에 비해 벤자민은 아직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그가 데이지를 받아들인 것은 나이를 거꾸로 먹음으로써 찬란한 젊음을 간직한 청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찬란한 젊음을 가지게 된 벤자민은 비로서 데이지에게 다가갑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찬란한 순간을 데이지에게 바친 셈입니다. 하지만 벤자민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찬란한 순간은 금방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는 데이지에 비해 점점 나이가 어려지는 벤자민은 훌쩍 데이지의 곁을 떠납니다.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유행가의 한 소절이 이토록 마음에 와 닿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남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고, 남들처럼 어린 자식들의 성장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다는 그의 평범한 소망은 거꾸로 가는 그의 저주 같은 시간에 맞물려 허물어집니다.


 

찬란한 젊음을 간직한 벤자민과 데이지. 하지만 그들의 시간은 이후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노골적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장면이 없이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대단한 점은 또 있습니다. 그것은 관객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쥐어짜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80세의 외모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은 벤자민은 한번쯤 '왜 나만 남들과 다른 거야?'라며 울부짖을 법도 합니다. 뒤늦게 아버지가 찾아와 용서를 빌 때 울음을 터트리며 그 동안의 원망을 쏟아낼 수도 있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절규할 수도 있었고, 데이지의 곁을 떠나며 남자의 뜨거운 눈물을 보여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지 않습니다.
브래드 피트의 연기가 대단한 점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시간을 받아들이는 벤자민 버튼을 감정의 과잉 없이 연기를 해냈다는 점입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운명을 절규하며 원망하지 않습니다. 삶의 모든 아픔을 겪은 노인의 그 넉넉한 모습으로 어린 시절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잃은 아들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며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든 눈먼 시계공의 모습은 그렇기에 벤자민과 겹쳐집니다. 아들의 죽음에 울부짖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시계 만들기에 충실했던 그 시계공의 공허한 얼굴과 자신의 저주 받은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벤자민의 그 슬픈 표정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습니다.
이번 아카데미는 브래드 피트가 아닌 [밀크]의 숀 펜을 선택했습니다. 아직 [밀크]를 보지 못했기에 숀 펜과 브래드 피트의 연기를 비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어느 영화보다도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빛났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 잘난 얼굴을 뽐내지 않아도, 그 탄탄한 근육을 드러내지 않아도, 단지 그 깊은 주름과 눈빛만으로도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배우였다는 점은 제게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비록 아카데미는 놓쳤지만 특별한 사랑 이야기와 브래드 피트의 연기력에 놀라움을 느낀 영화였습니다.


 

노년의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 브래드 피트에게 찬사를...

얼굴만 잘생긴 배우인줄 알았는데, 연기도 잘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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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요정
정말 좋은 영화였습니다.  2009/03/02   
쭈니 그 짧은 한 마디로 표현이 가능한 영화네요. ^^  2009/03/03   
우드
보고 싶은데... 무지하게 보고 싶은데.. 고등학생이라는 어머니의 눈총때문에 주말에도 극장엔 못가는듯. 흑흑  2009/03/03   
쭈니 고등학생이라는 인생의 굴레에 계시군요. ^^
전 실업계고등학교를 다녀서 고등학교때에도 자유롭게 놀러다녔지만...
암튼 대학생이 되시면 재미난 영화 많이 보시게 될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
 2009/03/03   
쭈니세상
대학 새내기라... 영화를 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듯 함 ㅠㅠ...
우씨... 내 친구가 벤시 재밌다고... 입김을
 2009/03/03   
쭈니 우와! 대학새내기... 이거 기쁜 소식이네요.
축하합니다. ^^
 2009/03/03   
액션영화광
이건 이미 놓쳐버린듯 ㅠㅠ 개학하고 나니 영화볼 시간이 확 줄었네요.
방학땐 하루에 1편은 봤는데, 빨리 여름방학이 왔으면..
 2009/03/03   
쭈니 ㅋㅋㅋ
벌써 여름방학을 염원하시는 군요. 하긴 저도 그랬습니다. ^^;
놓친 영화에 너무 미련두지 마시고, 앞으로 개봉할 새로운 영화를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3월엔 정말 보고 싶은 영화가 많이도 개봉합니다. ^^
 2009/03/03   
투야
오랫만에 찾은 영화관에서 너무나 멋진 영화를 만나고 왔답니다.
영화를 보고 맘속에 와닿아 눈물이 나긴 참 오랫만이었답니다.
같이 본 지인들이 너무나 이영화의 매력에 빠지지 못한거 같아,,매우 안타까웠는데,,
역시,,쭈니님은 이영화를 제대로 보셨군요..^^

벤자민은,, 어쩜,, 남들과는 다른 시작이었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도,,
그리고 마침내 가지게 된 행복도 진심으로 받아들일수 있었던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이 감독이 벤자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것도 그런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답니다.

개인적으로 브래드피트라는 배우는 잘생기고 멋진 외모를 가진 배우라는 생각을
전면으로 바꿔준 영화였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멋있어지는 브래드피트도 좋았지만,,
마지막까지도,, 그의 호흡이,, 80세의 얼굴을 가진채 태어났던 그 아이에서
전혀 변하지 않았단걸 느끼며,, 벤자민을 제대로 이해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소재가 특이하다는것만 빼면 사실 자칫 잔잔하다못해 지루할수 있는 내용이었으나
그 잔잔함마저도 너무 좋았던 영화였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이란 여배우를 제대로 보긴 처음이었는데,, 참 매력적이더군요.
극 중간 발레는 라인이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는데 정말 라인이 멋진 배우였습니다.

한번더,, 보고 싶어지는 그런 영화에요...

참,,저희는 회사에서 두달에 한번 단체로 영화를 보여주는데,,
가끔,, 홈피에 와서 좋아하시는 영화를 여건상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쭈니님을 뵈면,,
참 저희 회사도 좋은데구나,,ㅋ 새삼 느낀답니다. ㅋ
 2009/03/06   
쭈니 정말 부럽습니다. 회사에서 두달에 한번 영화를 단체 관람하다니...
[벤자민 버튼...]은 정말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저도 다시한번 다시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그 모든 슬픔과 고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벤자민의 모습은.... 정말...
지금 구피와 함께 맥주 맥잔 마셨더니 기분이 알딸딸...
하지만 기분은 업 중이랍니다. ^^;
 2009/03/06   
김실장
쭈니님 반가워요...요즘 다른 사업한다고 컴퓨터 할시간도 없고ㅜㅜ
집에오면 골아떨어지고 해서 들어와보지도 못했네요...^^
수원에 사업준비중이라 수원 cgv에서 얼마전 보구왔습니다.
보구 난다음 단순한 제머리를 한참 굴리게 만들어준 영화네요 ㅋㅋ
전혀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급조한 터라 첨에 답답하게 봤는데 중반부 부터
재미있게 봤습니다. 자주 들러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네요. 가게 자리 오픈하고 자리 잡음
자주자주 들릴께요^^
 2009/03/20   
쭈니 오우 가게 오픈... 축하드립니다. 부디 사업이 잘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제 친구도 수원에서 정수 사업하는데...
가게 오픈하시면 글 남겨주세요.
혹시 압니까? 수원에 친구집 놀라갔다가 들를수 있을지도... ^^;
저도 요즘 회사일이 바빠서 영화는 자주 못보는 편입니다.
그래도 스트레스가 쌓일때마다 영화가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힘을 주니 이렇게 짬을 내서 보곤 합니다. ^^
 2009/03/20   
shineswith
쭈니님 영화평을 보고 보게 된 영화에요. 사실 워낙 유명한 영화라서 원작을 먼저 읽어봤는데 원작은 너무 짧고 시시해서 하품이 나올 정도더군요. 데이지와의 사랑도 실망스러웠구요.. 원작에서는 데이지의 늙어가는 모습에 벤자민의 사랑이 식었거든요. 영화가 훨씬 아름답고 멋졌어요~  2009/09/07   
쭈니 저도 이 영화의 원작인 단편소설을 대형 서점에서 서서 읽었습니다.
원작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의 단순한 이야기더군요.
그 이야기를 이렇게 긴 영화로 만드는 것을 보면 역시 할리우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09/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