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켄 크와피스
주연 : 기니퍼 굿윈, 저스틴 롱, 제니퍼 애니스톤, 벤 애플렉, 제니퍼 코넬리, 브래들리 쿠퍼, 스칼렛 요한슨, 케빈 코놀리, 드류 배리모어
개봉 : 2009년 2월 12일
관람 : 2009년 2월 10일
등급 : 15세 이상
몇 년 만의 영화 시사회인가?
2003년 12월... 저는 무작정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구피와 미리 상의를 했던 사항이지만 구피는 그렇게 무작정 회사를 관둘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나봅니다. 당시 구피는 제게 '부부간의 신뢰가 깨졌다.'며 큰 실망감을 드러냈었고, 실업자가 되어 버린 남편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앞으로 돈을 아끼기 위해서 영화를 보지 말자.'라고 선언을 했었습니다.
당시 구피의 선언은 제겐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영화는 제 유일한 삶의 활력소이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돌파구였기에 저는 어떻게 해서든 구피의 선언은 무효화시켜야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구피에게 제시했던 방법이 바로 시사회였습니다. 구피가 제게 영화를 못 보게 하는 의도가 영화 관람비 절감을 위해서라면 돈을 내지 않고 영화를 보면 되는 것이고 그 유일한 방법은 바로 시사회 참가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저는 참 부지런하게 공짜 영화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 결과 많게는 일주일에 세 편,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의 시사회에 당첨되었으며 새로운 직장에 취직하여 실업자 신세를 면한 이후에도 네이버 장르매니아로 활동하며 무려 2년 이상을 시사회에 매진하였습니다.
시사회라는 것이 남들보다 먼저 개봉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영화를 보기위한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2년 동안 제 손에 이끌려 시사회 참가를 하기위해 저녁마다 서울 곳곳을 헤매야했던 구피는 결국 '차라리 돈 내고 집 앞 극장에서 영화보자.'라며 제게 제안을 했고, 그 이후 전 영화 시사회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2006년 10월 [프레스티지] 이후 거의 2년 만의 시사회 참가였습니다. 그리고 소라빵, 쭈니세상님에 이어 소레흠님과의 세 번째 영화 데이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게 영화 데이트를 신청해주신 분들은 모두들 꽃미남들이시네요. 소레흠님은 요즘 [스타의 연인]에 출연중인 유지태를 닮으신 듯... 구피가 심각하게(?) 부러워하고 있답니다. ^^
뭐? 쭈니가 유지태하고 영화 데이트를 가졌다고? 부러워라.
남자들은 관심 있는 여자를 괴롭힌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여자들의 비극은 남자에 대한 잘 못된 인식에서부터라는 지지(기니퍼 굿윈)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그가 너를 괴롭히는 것은 너에게 관심이 있어서야.'라는 식의 위로는 사랑에 상처 입은 여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그러한 잘 못된 인식에 헛물만 켜는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내레이터인 지지입니다. 그녀는 괜찮은 남자와 사귀기 위해 안쓰러울 정도로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쉽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남자들의 의도를 오해하고 기대합니다. 그런 지지에게 알렉스(저스틴 롱)는 충고합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알렉스가 지지에게 '남자들이란?' 주제로 충고를 할 때마다 같은 남자의 입장인 전 유쾌하게 웃으면서도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전 제가 마음에 들었던 여자아이를 단 한 번도 괴롭힌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 마음이 들킬까 부끄러워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거리를 유지했었습니다. 그리고 알렉스의 말 대로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서 연락처를 받으면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먼저 연락을 시도했고, 그러지 않은 경우는 이 영화의 제목 그대로 그녀에게 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로맨틱코미디로써 적절한 관객들의 공감을 받은 셈입니다. 단지 미남, 미녀들의 연애질에 멈추지 않고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맞아.'라고 외칠 수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로맨틱코미디가 아닐까요? 자신에게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면 목매며 달려드는 지지라는 캐릭터가 조금 짜증이 나긴 했지만 그녀가 망가지며 몸소 보여주는 남자의 심리에 대한 공감대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도대체 남자면 무조건 OK인거야? 그러니까 네가 애인이 없는거야.
[러브 액츄얼리]의 [섹스 앤 더 시티] 버전
이 영화는 지지의 이야기 외에도 지지의 회사 동료인 베스(제니퍼 애니스퍼), 제닌(제니퍼 코넬리)의 이야기와 안나(스칼렛 요한슨)와 메리(드류 베리모어)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그들은 남자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베스의 동거남인 닐(벤 에플렉)은 제닌의 남편인 밴(브래들리 쿠퍼)와 절친한 친구 사이이며, 안나는 유부남인 밴과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 가길 원합니다. 지지의 맞선남이었던 코너(케빈 코놀리)는 안나에게 빠져 있다가 결국 메리와 연결되고, 코너의 친구인 알렉스는 코너 문제로 지지의 상담을 들어주다가 그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한 이 영화 속의 관계들은 로맨틱코미디의 걸작 [러브 액츄얼리]를 연상시킵니다. 수 많은 캐릭터들이 서로의 관계 속에서 각자의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훈훈하게 담은 [러브 액츄얼리]는 로맨틱코미디의 주인공을 두 명에서 여러 명으로 확장시킨 시초가 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가 [러브 액츄얼리]와 다른 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러브 액츄얼리]보다는 도시 감각적이며 여성의 시각이 부각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애초에 이 영화의 원작이 [섹스 앤 더 시티]의 작가의 그렉 버런트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섹스 앤 더 시티] 형식으로 풀어낸 [러브 액츄얼리]라고 해도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이렇듯 전혀 안 맞을 것 같던 [러브 액츄얼리]와 [섹스 앤 더 시티]의 만남은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 시너지 효과를 줍니다. 관객들은 여러 편의 영화에서 단독 주연을 맡아도 손색이 없는 할리우드 톱스타급 배우들을 한꺼번에 하나의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며, 케이블 TV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미국 도시 남녀들의 감각적인 러브 스토리를 맘껏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많은 스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니 정말 흐믓한걸.
사랑의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수많은 캐릭터들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조언을 하고, 오해를 하며 상처를 받습니다. 결국 이 영화의 장르가 로맨틱코미디이기에 누군가는 사랑을 쟁취할 것이며, 각각의 캐릭터들의 관계가 얽혀 있기에 사랑을 쟁취하는 자가 나온다면 사랑에 상처를 입는 자도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누가 승리하고, 누가 상처를 입을 까요?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적극적인 자가 사랑을 쟁취한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연애삽질의 대가였던 지지는 한심하다고 느낄 정도로 적극적인 자세를 펼친 끝에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사랑을 쟁취합니다. 그에 비해 가장 매력적이었던 밴과 안나, 그리고 제닌은 지지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맞이합니다.
여기에서 이 영화가 이 수 많은 캐릭터를 내세워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에는 공식도, 박사도 없다 라는 사실입니다. 사랑에 관해서는 박사임을 자처하던 알렉스의 굴욕이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잘 설명합니다. 그리고 밴과의 성공적인 결혼을 토대로 지지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제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상처는 견고하게 구축된 결혼이라는 연애의 종착점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사랑에는 결코 그에 맞는 공식 따위는 없습니다. 각각의 개성에 맞게 각각 다른 형식으로 진행되기에 공식이 있을리가 없습니다. 그러한 사랑의 공식은 오히려 그러한 공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나온 결과물이 아닐까요? 그와 마찬가지로 사랑의 박사 역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군가에게 사랑이 시작된다면 그것은 운명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저와 구피의 만남처럼)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누구보다도 많이 알아서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계산이겠죠.
비록 남자들끼리 뻘쭘하게 본 로맨틱코미디였지만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으며 많은 공감을 했던 영화였습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결코 풀리지 않은 사랑의 신비함. 그렇기에 이 영화 속의 캐릭터들에게도 결말은 없을 것입니다. 서로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사랑, 그들의 상처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던 닐과 베스 커플.
그들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밴과 제닌이 겪은 비극을 맞이할 것이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 서있는 코너와 안나.
사랑은 가끔 예상 밖의 순간에 운명처럼 다가온다.
IP Address : 211.227.13.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