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윤종석
주연 : 김강우, 박시연, 조재현, 이원종
개봉 : 2009년 2월 5일
관람 : 2009년 2월 7일
등급 : 15세 이상
온 가족이 만족했던 행복한 나들이.
감기를 달고 사는 웅이를 기나긴 겨울동안 집안에 가뒀던 저와 구피는 큰 맘 먹고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신나는 상상 체험관(광고에 의하면) CGV 상암 스마트플렉스로 웅이를 데려갔습니다. 성인은 18,000원, 청소년은 14,000원이라는 웬만한 연극보다 비싼 관람료에 잠시 놀라기도 했지만 구피가 스마트플렉스 2명 초대권을 단돈(?) 18,000원에 구해 와서 이 사치스러운 영화 관람이 성사된 것입니다.
문제는 스마트플렉스에선 3D입체안경을 써야 한다는 것. 안경을 쓴 저는 안경 위에 입체안경을 쓰면 머리가 아파 입체안경을 써야하는 영화를 그리 선호하지 않습니다. 스마트플렉스에 입장할 수 있는 초대권은 단 두 장. 저희 세 가족이 모두 들어 갈 수는 없는 법. 결국 저는 구피 설득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결국 스마트플렉스에는 구피와 웅이가 입장을 하고, 잠시 동안 자유의 시간을 얻은 저는 혼자 [마린보이]를 봤습니다. 아마도 구피가 그런 선택을 내린 데에는 주말 내내 [마린보이]보러 가자고 조를 것이 분명한 제게 아예 혼자 [마린보이]를 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심신이 지친 일요일 저녁은 편안하게 드라마나 보며 쉬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웅이를 구피에게 맡기고 전 [마린보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전 제게 자유의 시간을 준 구피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영화를 본 후 홈플러스에서 구피는 고가(?)의 옷을 구입했으니 말입니다.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온 웅이 역시 대가를 지불해야 했는데 가까스로 감기에서 탈출하나 했지만 그날의 나들이로 인하여 다시 혹독한 감기에 걸려버렸답니다.
하지만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마린보이]를 본 저도,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봄옷을 산 구피도, 그토록 가고 싶었던 바깥나들이를 만끽한 웅이도 모두 행복했던 하루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물론 또 다시 웅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야하는 장모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옷 입어라. 웅이처럼 감기 든다.
새로운 소재의 한국형 스릴러를 개척하라.
한 때 우리영화는 코미디, 멜로에 치중되어 있었습니다. 간혹 액션이나 SF영화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제작비가 비교적 많이 들기에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아래 적은 편수만 제작되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가 기대를 걸었던 장르가 바로 스릴러입니다. 괜찮은 시나리오만 있다면 적은 제작비로도 충분히 멋진 스릴러영화를 만들 수 있기에 저는 한국형 스릴러영화가 우리영화의 돌파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제목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싸구려 스릴러영화들이 간간히 관객들에게 선보였다가 1999년 드디어 장윤현 감독이 [텔미썸딩], 2001년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으로 드디어 관객들에게 한국형 스릴러의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이후 [세븐 데이즈], [추격자]등 한국형 스릴러영화들은 점점 진화하여 이제는 어엿한 주류 장르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올해도 우리영화는 스릴러영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개봉한 [마린보이]를 필두로 주식시장을 소재로 한 [작전], 핸드폰을 소재로 한 [핸드폰] 등이 2009년 벽두부터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단 저는 2009년 한국형 스릴러영화의 첫 번째 주자인 [마린보이]를 만났습니다. [식객]에서 가능성을 보인 신예 김강우의 풋풋함,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이후로 오랜만에 악역을 맡은 조재현의 강력한 카리스마,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장점인 섹시함을 내세운 박시연의 팜므파탈 연기까지... [마린보이]는 꽤 괜찮은 주연 배우들을 긁어모았습니다. 여기에 우리에겐 생소한 마약을 소재로 삼음으로써 한국형 스릴러의 새로운 장르 개척의 길 위에 서있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린보이]의 장점은 바로 여기까지입니다.
몰랐어? 나 예전부터 '나쁜 남자'였어.
괜찮은 초반, 늘어지는 중반, 허무맹랑한 후반.
[마린보이]의 시작은 좋았습니다. 전직 국가대표 수영선수이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의 다이빙 명소인 팔라우 섬으로 떠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인 천수(김강우)는 도박 빚으로 인하여 마약계의 대부 강사장(조재현)의 제안을 무조건 따라야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천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죽거나, 강사장의 제안에 따라 일본에서 한국으로 마약을 운반하거나...
강사장과 천수의 은밀한 거래에 강사장과 미묘한 관계인 유리(박시연)와 강사장을 잡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김반장(이원종)이 끼어들며 사건은 점점 복잡해집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출발이 아주 좋았습니다. 마약을 둘러싸고 서로가 서로를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 빠진 천수의 처지는 전형적이긴 하지만 꽤 매력적인 스릴러의 요소입니다. 특히 박시연의 섹시함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데... 차라리 15세 관람가를 고집하지 말고, 연소자 관람불가로 하여 유리의 섹시한 팜므파탈적인 역할을 강조했다면 영화의 긴장감이 배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중반으로 접어들며 영화는 점점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천수가 일본에서 마약을 들어와야 하는 D-DAY는 올 생각을 않고 오히려 천수와 강사장, 유리의 김반장의 복잡한 관계만 점점 꼬여 놓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렇게 꼬여있는 캐릭터간의 관계는 클라이맥스마저도 바꿔 버립니다.
천수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마약을 들여오는 D-DAY 장면이 당연히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마린보이는 반드시 죽는다'며 광고에서부터 엄포를 놓았던 장면들은 온데 간데 없이 삭제되고 서로가 총을 겨누고, 치고받고 싸우는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이 후반부를 가득 채웁니다. 악당은 순정파가 되어있고, 팜므파탈은 청순가련형으로 탈바꿈된 이 허무맹랑한 후반부는 제게 한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청순가련형 팜므파탈? 하지만 그래도 박시연은 예뻤다.
내가 천수를 좋아할 수 없는 이유.
[마린보이]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천수입니다. 카리스마 있는 악당 강사장도, 청순한 팜므파탈 유리도 주인공인 천수를 돋보이게 만드는 조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수는 그리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었습니다. 영화 자체는 후반부가 아쉬웠지만 천수라는 캐릭터는 처음부터 아쉬웠습니다.
천수가 강사장의 게임에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도박입니다. 영화에선 팔로우 섬에 대한 천수의 동경이 그를 도박으로 내몰았다고 하지만 천수는 분명 최악의 선택을 한 셈이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천수가 강사장과 김반장의 고래 싸움에 어쩔 수 없이 끼게 된 불쌍한 새우라고해도 제겐 동정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수는 고래 싸움의 틈바구니 속에서 슬기롭게 빠져나가기 보다는 오히려 고래 싸움을 즐깁니다. 그리고는 급기야 스스로 고래가 되려고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에서(밝힐 수는 없지만...) 천수는 결국 고래가 되었고, 그 대가로 안락한 인생을 보장받습니다. 도박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엔 스스로 강사장 같은 고래가 되어 버린 천수를 어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악당에 불과합니다.
[마린보이]에 전체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100점 만점에 60점정도. 스릴러라고 하기엔 짜임새가 부족했고, 반전은 어설펐습니다. 클라이맥스여야 했던 장면은 사라졌고, 곁가지에 불과한 장면들은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 캐릭터마저도 맘에 안 드니 어쩌면 60점이라는 점수도 과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영화의 초반에 제게 안겨준 기대감과 박시연의 섹시함은 높이 사줄만합니다. 결국 그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것이었을지도... 2009년 한국형 스릴러영화의 출발이 그리 산뜻하지는 않네요.
내 착한 몸매 덕분에 10점은 플러스된 줄 알아.
열심히 치고받았는데 우린 플러스 점수 없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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