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다우트] - 나도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쭈니-1 2009. 12. 8. 23:11

 

 


감독 : 존 패트릭 샤인리
주연 :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에이미 아담스, 비올라 데이비스
개봉 : 2009년 2월 12일
관람 : 2009년 2월 19일
등급 : 15세 이상

극장이 선택해준 영화가 아닌 내가 선택한 영화를 보다.

10년 전만해도 보고 싶은 영화를 정한 후 그 영화가 상영하는 극장을 체크하고, 몇 일전에 극장 앞의 기나긴 줄을 서서 예매를 하고, 영화를 보는 당일에는 소풍을 가는 마음으로 아침부터 외출 준비를 해서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머나먼 길을 떠나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어려웠기에 고작 한 달에 한 편 영화 보기가 힘들었지만 그 영화는 영화의 재미 여부를 떠나 제겐 아주 특별한 영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아주 많이 편해 졌습니다. 동네에 멀티플렉스라는 것이 생기며 영화가 보고 싶으면 동네 슈퍼마켓을 가듯 편한 차림으로 갈 수도 있으며, 안방에 앉아 인터넷만 켜면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자리에 손쉽게 예매를 할 수도 잇습니다. 그렇게 편하게 영화를 보기에 영화를 보는 횟수도 늘어났고, 영화는 특별한 날의 주인공이 아닌 일반적인 소비 상품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언제부턴가 집에서 가까운 멀티플렉스 극장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들은 자연스럽게 보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제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극장이 선택해준 영화를 전 그냥 보는 것입니다.
제가 갑자기(솔직히 갑자기는 아니지만...) 옛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영화를 보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멀티플렉스 극장의 상영 영화 리스트를 보며 '에이, 볼 영화가 없잖아!'라는 푸념을 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볼 영화는 많습니다. 단지 집 근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중에는 볼 영화가 없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주 큰마음을 먹고 극장이 선택해준 영화가 아닌 내 자신이 선택한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영화는 [다우트]입니다. 우선 10년 전처럼 보고 싶은 영화를 먼저 선택한 후에 그 영화가 상영하는 극장을 체크하고 시간을 내서 극장으로 가서 직접 표를 끊었습니다. 아주 조금만 움직이면 되는 것인데 지금까지 그것이 하기 싫어서 볼 영화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투덜거렸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우두커니 앉아있지만 말고 움직이게나. 그러면 세상이 더 넓어 보일거야.


연기의 귀재들이 만났다.

제가 지난주의 기대작이었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아닌 [다우트]를 선택한 이유는 이 영화가 조만간 극장에서 간판이 내려 질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경우는 이번 주말에도 볼 수 있지만 [다우트]는 극장에서 간판이 내려지는 그 순간 비디오 시장이 죽어버린 현 시점에서는 불법 다운로드가 아니면 이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우트]는 1964년 브롱크스의 성 니콜라스 교구 학교를 배경으로 진보적인 플린 신부(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와 보수적인 교장 수녀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의 대립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비록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후보에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메릴 스트립이 여우주연상에,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남우조연상에, 에이미 아담스와 비올라 데이비스는 나란히 여우조연상의 후보에 오르며 주요 출연진 모두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오르는 진풍경을 연출하였습니다. 이러한 이 영화의 성과는 '연기의 귀재들에 의한 영화'라는 평론가들의 극찬으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다우트]를 선택하며 기대했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특히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벌이는 불꽃 튀기는 연기 대결을 잔뜩 기대하며 저는 생전 처음가보는 미로 스페이스라는 아주 작은 극장에 홀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대했던 불꽃 튀기는 연기 대결은 없었습니다.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연기는 조용하고 잔잔합니다.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의 대립 역시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격한 충돌이 아닌 아주 잔잔한 작은 충돌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 그들의 조용하고 잔잔한 연기는 제 마음 속에 아주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들의 목소리, 얼굴 표정, 그리고 작은 떨림만으로도 영화의 주제를 완벽하게 관객에게 전달한 셈입니다. 왜 그들이 연기의 귀재들인지 느끼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자, 이제 조용하지만 마음속에 커다란 파장을 줄 싸움을 시작하겠어요.


평범한 진실 게임 따위는 없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보수적인 교구 학교에서 새로운 개혁을 추진하는 신부와 그러한 새로움이 못마땅한 수녀가 충돌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충돌은 제임스 수녀(에이미 아담스)가 플린 신부와 교구 학교의 첫 흑인학생인 도널드와의 관계를 의심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플린 신부의 부정을 의심하고 스스로 확신하며 그를 학교에서 내쫓으려합니다.
이쯤되면 영화는 당연히 진실을 밝히는 플린 신부의 활약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에 플린 신부가 자신을 괴롭히던 오해와 모함을 이겨내고 승리를 거두는 뭐 이런 스토리 전개를 쉽게 연상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하지만 이 영화엔 그런 평범한 진실 게임 따위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둘러싼 진실에 이 영화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상이 이러하니 영화의 전개는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플린 신부를 굳게 믿었던 저는 그를 향한 오해가 점점 풀려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반대로 플린 신부에 대한 의심이 점점 커지기만 합니다. 저 역시 영화의 중반까지는 플린 신부의 무고함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후반부가 될 수록 그의 자상한 얼굴 뒤에 뭔가 숨기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은 점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의 충돌에서 당연히 저는 플린 신부의 편에 서서 시작했지만 점점 의심이 의심을 낳더니만 플린 신부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무런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 영화의 주제가 '진실'이 아닌 '의심'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알로이시스 수녀의 눈물에 동감하고 말았습니다.
진실은 무엇일까요? 플린 신부의 도널드에 대한 호의는 단지 학생을 생각하는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난 것일까요? 아니면 그의 동성애적 성향에 의한 음흉한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일까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저는 플린 신부에 대한 의심을 풀 수가 없었습니다. 알로이시스 수녀처럼 말입니다.  


 

신부님. 진실은 무엇인가요? 의심을 풀 수 있게 진실을 밝혀주세요.


이 영화에서 무서운 점은 제임스 수녀의 의심도, 알로이시스 수녀의 확신도 아니다.

영화가 끝나고 길을 나서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 시작은 제임스 수녀의 의심에서 시작됩니다. 그녀는 플린 신부가 도널드에게 무언가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그러한 의심을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이야기합니다.
제임스 수녀의 의심이 번진 곳은 알로이시스 수녀입니다. 평소 자유분방한 플린 신부가 못마땅했던 알로이시스 수녀는 제임스 수녀의 말에 플린 신부의 부정을 확신하기에 이릅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플린 신부의 부정을 밝혀내겠다며 플린 신부에게 선전 포고를 하고, 도널드의 어머니를 불러 플린 신부의 확실치 않은 부정을 폭로하는 모험까지 감행합니다.
문제는 제임스 수녀에서, 알로이시스 수녀로 옮겨 붙은 의심이 마지막에는 제게도 옮겨졌다는 점입니다. 영화를 볼 때는 몰랐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임스 수녀의 의심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녀의 입장에선 분명 그런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제임스 수녀의 근거 없는 의심이 무서웠다는 분도 계시지만 제가 그 입장이었다면 분명 저도 의심을 했을 것입니다.
알로이시스 수녀의 의심도 영화를 볼 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중엔 공감되었습니다. 분명 플린 신부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으며, 알로이시스 수녀로써는 점점 확신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갔습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분명 진실을 감추는 모습을 보이는 플린 신부의 태도는 분명 의심스러웠으니까요.
문제는 바로 제 자신입니다. 영화의 중반까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플린 신부의 편에 섰던 저 역시 영화의 후반부에 그가 의심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의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새삼 깨달은 것입니다. [다우트]가 대단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점입니다. 이 영화는 솔직히 영화적 재미에서는 낙제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연기의 달인들이 펼치는 조용한 연기 대결과 마지막에 여운이 남는 영화의 주제의식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강렬했습니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확신 가득했던 제 마음에도 의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고 싶네요.


 

모두들 플린 신부를 의심하게 만들었으니 이건 제 승리가 확실하죠?

대단하십니다. 알로이시스 수녀. 쭈니마저도 날 의심하게 만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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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영화광
이 영화는 연기가 대단하다는 말밖에 못들어서. 그냥 패스입니다.
이제 아카데미 시상식이 코앞이군요.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아쉬운게 하필 상대가 히스레저 라서 ㅎㅎ
 2009/02/20   
쭈니 그러게말입니다.
하필 히스 레저가 상대라서...
암튼 저도 히스 레저 응원하렵니다. ^^
 2009/02/20   
액션영화광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가 나왔더군요.
작품상- 슬럼독 밀리어네어 감독상-슬럼독 밀리어네어(대니 보일)
남우주연상-숀 펜(밀크) 여우주연상-케이트 윈슬렛(더 리더)
남우조연상-히스 레저(다크나이트) 여우조연상-페넬로페 크루즈(빅키 크리스....)
주요 수상부문입니다..
그리고 아쉬운건 다크나이트 입니다.

다크나이트 히스레저와 음향효과상 달랑 두개 받았더군요.
보수적인 아카데미 역시나 블록버스터라고 찬밥대우라도 하는건지...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8관왕을 했더군요.
얼마나 대단한지 볼것이고,

제가 제일 아쉬운건 시각효과상 부문입니다. 미술상, 분장상 등 [벤자민 버튼...]이 다 쓸어서 시각효과상 부문은 설마 했는데... [벤자민 버튼...]이 가져가네요.
시각효과상 만큼은 진짜 [아이먼맨] 기대했는데...
비쥬얼이 정말 뛰어났었는데...
[레슬러]의 미키 루크는 좀 의외였습니다.
 2009/02/23   
액션영화광
그리고 분장상에서 [헬보이2]가 받을 줄 알았는데, [벤자민 버튼...]의 브래드 피트 청년시절등의 무릎을 꿇었네요.
[벤자민 버튼...] 주요 부문 안준거 이걸로 줄려나...
 2009/02/23   
쭈니 어제 떠돌았던 아카데미 주요수상 문건의 내용이 비슷하게 맞았군요.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만 틀리고...
그나저나 점점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기대되고 있습니다. ^^
 2009/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