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워낭소리] - 그렇게 한 세대가 가고, 새로운 세대가 온다.

쭈니-1 2009. 12. 8. 23:13

 

 


감독 : 이충렬
주연 : 최원균, 이삼순
개봉 : 2009년 1월 15일
관람 : 2009년 3월 1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부모님과 함께 본 첫 번째 영화.

20년 전 어머니와 함께 [접시꽃 당신]을 극장에서 봤었습니다. 그 영화를 볼 당시 어머니는 아버지와 싸우셨고, 집을 나서면서 무작정 제 손을 잡고 버스에 올라타셨습니다. 하지만 마땅히 가실 곳이 없으셨던 어머니는 하염없이 길을 걸으시다가 [접시꽃 당신]이 상영하던 극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제게 [접시꽃 당신]은 참 재미없는 영화였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내의 죽음을 앞둔 한 시인의 절절한 사랑을 담은 영화가 어린 제게 재미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영화가 너무 슬펐습니다.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쳐다보며 전 영화보다도 어머니의 눈물 때문에 [접시꽃 당신]을 보던 그 순간이 너무나도 슬펐습니다.
구피가 갑자기 [워낭소리]가 보고 싶다고 선언합니다. [워낭소리]가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큐멘터리영화에 알레르기성 거부감이 있는 전 [워낭소리]가 별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구피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까지 동원해서 [워낭소리] 원정대를 구성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하고는 20년 만에, 아버지하고는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대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대 사건의 가운데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다큐멘터리영화를 싫어하는 저와 [워낭소리]를 이해할리가 만무한 웅이였습니다. 저와 웅이는 한쪽 귀퉁이에 앉아 애꿎은 팝콘만 열심히 먹어댔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웅이에게 '이 영화 안 슬펐어?'라고 묻는 구피. 웅이는 [접시꽃 당신]을 보던 그때 제 심정 마냥 눈시울이 붉어진 구피의 표정을 보며 애써 '슬펐어.'라고 얼버무립니다. 그렇게 웅이에게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본 첫 번째 영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최원균 할아버지는 과연 단 한 편이라도 영화를 보신 적이 있으실까?


그 분들의 인생은 그랬었다.

저희 장인어른은 가끔 주5일제 근무에 대해서 쓴 소리를 하십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며 토요일에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장인어른에게 전 그냥 싱긋 웃음만 지어 보입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닙니다. 6.25 전쟁을 치루며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나라를 재건한 것은 그 분들의 피와 땀이 섞인 노력이었습니다. 노는 것, 쉬는 것은 바랄 사이도 없이 그 분들은 그저 먹고 살기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 세대를 사신 분들에게 주5일제는 분명 사치이고 낭비로 여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싶다고 해도 할 일이 없습니다. 일거리가 넘쳐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오히려 주5일제 근무를 하며 토, 일요일엔 소비를 해주는 것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됩니다. 예전처럼 쓰지 않고 무조건 모으기만 한다면 내수시장은 무너질 것이며, 수출시장이 막히면 우리 경제는 더 이상의 희망은 없어질 것입니다. 주5일제 근무는 일보다는 소비가 국가경제에 중요시되는 새로운 시대의 산물입니다.
[워낭소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며 들었던 것이 바로 그러한 생각입니다. 나이가 드시면 일을 멈추고 편안한 생활을 향유 할 만하지만 그 분들은 평생 일을 해왔고, 그것이 그 분들이 알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입니다. 그 분들의 자녀들이, 시내의 의사가 아무리 쉬시라고 권유를 해도 일 밖에 모르고 사시던 분들에게 그것은 죽으라는 소리로 밖에 안 들리셨을 것입니다.
그 분들의 인생을 보며 저는 느낍니다. 우리 세대는 어쩌면 그 분들이 일궈놓은 풍요를 즐기는 세대라고. 우리가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우리의 인생은 충분히 즐거워질 수 있지만 우리는 욕심을 결코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한 욕심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욕구니까요. 그저 하루 세끼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분들과는 달리 우리는 더 좋은 아파트를 원하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며 그렇게 끝없는 욕심 속에서 불행해하고 있습니다. 일만 하는 그 분들의 인생도 어쩌면 불쌍하지만 욕심만 부리는 우리들의 인생도 결코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쉬지 않고 일 하는 것. 이것이 그 분들이 아는 세상 모든 것이다.


그들은 사는 동안 최선을 다했다.

[워낭소리]가 이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어쩌면 늙은 소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소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몸이 부셔지는 그 순간까지 묵묵히 일만 하던 그 소는 할아버지가 시장에 내다 팔려는 그 순간 눈물을 흘립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많은 반응은 '소가 가장 불쌍하다.'입니다. 하지만 저는 늙은 소와 할아버지가 서로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
40살이라는 나이가 들어서도 묵묵히 일을 하던 소의 그 듬직한 모습과 한쪽 다리를 잘 쓰시지 못하지만 농사일을 멈추시지 않으셨던 할아버지의 고집은 분명 닮았습니다. 일밖에 모르고, 일만이 세상의 전부였던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어쩌면 소와도 같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일을 할 수 있고, 그로인하여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세대의 상징은 우직한 소가 아니었을까요?
그렇기에 저는 소가 죽는 그 마지막 순간 슬프지 않았습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언젠가는 돌아가실 것입니다. 늙은 소가 그러했듯이.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은 사는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했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겨울을 따뜻하게 나실 수 있도록 땔감을 많이 해놓은 늙은 소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든 일을 해냈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영화의 늙은 소보다, 농사일로 허리가 구부려진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최선을 다했고, 당장 죽음을 맞이하여도 여한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자신할 수 없기에 오히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했던 늙은 소의 죽음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한 늙은 소의 죽음은 결코 슬프지 않다.


그렇게 한 세대가 가고 있다.

늙은 소의 죽음으로 문득 들었던 생각은 이제 열심히 일만 하던 그 분들의 세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죽도록 일을 해서 살만한 나라로 일궈냈던 그 분들의 땀방울은 이제 지나간 한 세대의 추억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새로운 세대의 노력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제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비록 우리는 죽도록 열심히 일만 하지 않을 것이고, 하루 세끼 끼니만 채울 수 있다면 모든 욕심을 버릴 정도로 청렴하지도 않습니다.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치면서도, 비싼 외제 차, 외제 옷에 열광하고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것이 저를 포함한 새로운 세대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세대를 욕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며 우리 다음 세대에 결코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부족한 것도 많지만 아직 늦은 것도 아닙니다.
[워낭소리]를 보며 나오는 길, 웅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인 그들에게 저 해맑은 웃음을 지켜주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주5일제를 즐길 것이며, 일하는 만큼 노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한다면 [워낭소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만큼 우리도 우리 다음 세대에 결코 부끄럽지 않은 세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저는 열심히 일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영화를 보고, 열심히 영화 이야기를 씁니다. 그것이 제가 아는 모든 것이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요. 일도, 노는 것도 열심히 하는 새로운 세대. 저는 그것이 늙은 소의 죽음에 결코 부끄럽지 않을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세대는 가고 있다.

최선을 다한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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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레흠
감동적인 영화..........주르륵....ㅠ  2009/03/04   
쭈니 죄송.... 저는 의미는 있지만 감동적이진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저와 다큐멘터리영화는 정말 안맞나봅니다. ^^;
 2009/03/04   
우드
광고의 딸랑.. 딸랑... 하는 소리가 인상적이던데. 함 보러 갈까나 ㅋㅋ  2009/03/07   
쭈니 뭐 젊은 세대에겐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뜻깊은 영화이긴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재미는 별로... ^^  2009/03/08   
전.. 글쎄...
솔직히 하나도 슬프지 않았어요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는것이라는건 너무도 뻔한것이고...
특별할게 있을까 싶은..
모르겠어요.. 생각하면 슬플수도 애잔할수도..
그런데 이상하게 전.. 그닥...
친척분이 전에 소를팔러 가는데..
도축장 앞에서 소가 울어서 같이 울었다라는 말엔 눈물이 났는데..
내 감정이 매말랐나..
더 슬픈 영화를 다큐처럼 느끼며 많이 봐왔나..
아무튼 이상하게.. 전 그렇더라구요
 2009/03/10   
쭈니 네, 저도 하나도 안슬펐습니다.
그냥 이 영화가 이렇게 흥행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를 궁금해하며 영화를 봤을 뿐이죠.
윤님 감정이 매말랐다면 제 감정은 오아시스없는 사막처럼 매말랐겠군요. ^^;
암튼 뭔가 가공되지 않은 감동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개봉된 영화가 아닐지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할아버지, 할머니, 늙은 소의 인생이 슬프다면 저희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을 들어보면 대성통곡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009/03/10   
김실장
이런질문 드리긴 그렇지만 돈주고 볼만한 영화인가요?
솔직히 보신분들 대부분이 그저 그렇다라는 반응을 많이 보이셔서...^^
슬프다 감동적이다 이런 극단적인 표현을 쓰시지는 않고요...ㅜㅜ
지금 갈등중입니다.
 2009/03/20   
쭈니 제 개인적인 견해를 물으신다면 전 이 영화가 왜 이토록 돌풍을 일으키는지 전혀 이해가 안됩니다. 에전에 [집으로]라는 영화도 그랬었는데... 그래도 [집으로]는 조금 재미라도 있었습니다만... [워낭소리]는 재미보다는 의미에 촛점을 맞춰야할뿐입니다. 뭐 영화에서 의미를 찾는 분들이라면 모를까 어느정도의 재미를 원하시는 분이라면 이 영화 나중에 비디오 출시후 보셔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2009/03/20   
김실장
3일전 또다시 어둠의 경로를 이용해 봤습니다...ㅜㅜ
쭈니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은걸 무척이나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인간극장보다 못한 내용이네요.
나레이션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네 싶은데.
첨에 나오는 사투리 자막에 대화내용을 알수 있었지만
중반부부터 나오지 않는 자막에 할머니 할아버지 대화내용을 유추하면서 본거
생각하면 ^^ 저두 경상도 출신이지만 당췌 알수가 없는 ㅋㅋㅋ
예고편보다 못한거 같았습니다...
 2009/06/20   
쭈니 그러셨군요.
뭐 저야 워낙 다큐멘터리 영화와 맞지 않아서... 그런데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것을 보며 참 어리둥절했습니다.
 2009/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