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에릭 다넬, 톰 맥그래스
목소리 주연 : 벤 스틸러, 크리스 록, 데이빗 쉬머, 제이다 핀켓 스미스
개봉 : 2005년 7월 14일
관람 : 2005년 6월 28일
여름은 블럭버스터의 계절임과 동시에 공포 영화의 계절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가지, 제겐 애니메이션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1989년 [인어공주]의 예상외의 흥행 성공으로 애니메이션의 흥행 가능성을 깨달은 디즈니는 1991년 [미녀와 야수]를 시작으로 썸머시즌때마다 블럭버스터급 애니메이션을 개봉시켰었습니다. 그러나 [라이온 킹]으로 흥행의 최정점에 올랐던 디즈니의 셀 애니메이션은 [포카혼타스]를 시작으로 점차 흥행에서 쇠락의 길을 걸었으며, 그 와중에 등장한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강자 픽사가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겨울방학 시즌에 개봉시켜 엄청난 흥행의 성공을 거둠으로써 애니메이션은 여름이 아닌 겨울 시즌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여름만 되면 새로운 애니메이션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린답니다.
올 여름도 어김없이 기대되는 애니메이션들이 개봉되는데 드림웍스의 [마다가스카]를 필두로, [아이스 에이지]로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의 다크호스로 등장한 폭스의 [로봇], 영국산 애니메이션 [발리언트]등이 개봉할 예정입니다. (올 여름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볼 수 없나보군요.)
그 중 제 마음을 사로잡은 애니메이션은 단연 [마다가스카]입니다. 미국에서 5월 마지막주에 개봉되어 첫주에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에 밀려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지만 2주차엔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현재 1억 6천만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리며 승승장구중입니다. 물론 제가 [마다가스카]에 관심을 갖은 것은 이러한 흥행 결과 때문은 아닙니다. [마다가스카]의 제작자가 제가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끔 만든 장본인인 제프리 카젠버그이기 때문입니다.
제프리 카젠버그와 디즈니, 그리고 드림웍스의 삼각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더이상 하지 않겠습니다.(그 동안 너무 많이 했거든요. ^^;) 단지 저는 아직도 그의 비장한 선언을 기억합니다. 기필코 디즈니를 넘어서겠다고... 디즈니와 차별화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당시 언제나 엇비슷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서서히 지쳐갔던 저는 카젠버그의 그런 선언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이 개봉되기만을 기다리며 언제나 극장으로 향했었죠.
드림웍스의 첫번째 애니메이션인 [이집트의 왕자]는 비록 재미면에서는 디즈니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디즈니와 차별화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겠다던 카젠버그의 약속만은 제대로 지켜진 영화였습니다. 드림웍스의 최고의 애니메이션인 [슈렉]은 비로서 카젠버그의 약속이 완벽하게 이뤄진 영화입니다. 재미면에서 완벽하게 디즈니를 넘어섰으며, 디즈니와의 차별화마저도 성공했으니까요. 하지만 [샤크]에 이르러서 카젠버그는 조금씩 자신의 약속을 잊은 듯이 보입니다. [샤크]는 디즈니와 차별화된 독창적인 면보다는 디즈니보다 더욱 디즈니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으니 말입니다.
[샤크]의 그런 디즈니화는 제겐 꽤 커다란 실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2004년 여름, [슈렉 2]로 카젠버그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음을 확인했었는데, 겨우 6개월만인 2004년 겨울 [샤크]가 디즈니보다 더 디즈니스러운 애니메이션임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디즈니는 픽사를 통해 점점 디즈니스러움을 벗어나가고 있는데, 오히려 탈디즈니화를 외쳤던 드림웍스는 점점 디즈니스러움에 다가가고 있었던 겁니다.
[슈렉 2]와 [샤크]라는 상반된 애니메이션으로 드림웍스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던 저로써는 그렇기에 [마다가스카]는 영화의 재미를 떠나 꽤 관심이 가는 영화였습니다. 과연 드림웍스는 디즈니와의 차별화라는 약속을 앞으로도 지킬 것인지, 아니면 픽사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진 디즈니를 대신하여 디즈니스러움의 전통을 디즈니대신 이어나갈 것인지... [마다가스카]는 그 기로에 선 영화처럼 보였던 겁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마다가스카]는 완벽하게 디즈니스러운 애니메이션입니다. 물론 디즈니스럽다는 것이 재미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디즈니스럽다는 것은 영화가 충분히 재미있으며, 교훈적인 온 가족이 모여앉아 보기에 딱 알맞은 영화임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적인 재미를 떠나 디즈니스럽다는 것은 카젠버그의 약속이 이젠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약속이 밥먹듯이 깨어지는 요즘 흥행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약속 따위는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저는 제게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알게해준 카젠버그이기에 그의 약속이 지켜지기만을 바랬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바램이며, [마다가스카]를 바라보는 저만의 독특한 시선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마다가스카]는 어떤 면에서 디즈니스러운 것일까요?
첫번째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의인화된 동물이라는 점이 가장 대표적인 디즈니스러움일 겁니다. 동물은 어린 아이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일 가장 좋은 영화적 소재입니다. 디즈니의 가족 영화에서 동물들이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게다가 동물의 의인화는 어린 아이들의 환호를 얻어낼 최적의 소재인 셈입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거의 대부분 동물들이 의인화되어 표현됩니다.
드림웍스는 2002년 [스피릿]으로 그러한 디즈니의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냈던 적이 있습니다. [스피릿]은 스피릿이라는 이름의 야생마가 주인공이면서도 전혀 의인화되지 않았습니다. 스피릿은 사람의 말을 하긴 커녕 그냥 '히이잉'거리며 울부짓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스피릿]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언제나 의인화된 동물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봐왔던 저로써는 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카젠버그는 [스피릿]의 그 도전정신을 물거품으로 만들만큼 완벽한 의인화된 동물들을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를 만들어낸 겁니다. 물론 [스피릿]의 흥행 실패로 다시 그런 도전을 벌인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은 이해되지만 [마다가스카]를 보는내내 디즈니의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또다른 코믹 버전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두번째 너무나도 뻔한 영화의 교훈입니다. 물론 영화가 교훈적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교훈마저 얻고 온다면 썸머시즌 블럭버스터를 보고나서 '남는게 없어'라고 투덜거리는 관객들에겐 더할나위없이 좋은 선물이겠죠. 하지만 교과서적인 교훈은 오히려 영화를 진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디즈니의 교과서적인 교훈을 정면으로 비틀은 것이 바로 드림웍스의 대표 애니메이션 [슈렉]입니다. 디즈니가 언제나 내세웠던 동화의 교훈을 재치있게 패러디하며 아무도 예상치못한 새로운 재미를 안겨줬던 [슈렉]은 그렇기에 제겐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마다가스카]는 다시 디즈니적인 교과서적 교훈으로 돌아갑니다. 자유와 우정의 소중함이라는 [마다가스카]속 뻔한 교훈은 [슈렉]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달라 정말 이 영화가 드림웍스의 영화인지 의심이 들게 만듭니다.
다시한번 이야기하지만 여기에서 제가 언급한 [마다가스카]에 대한 불평불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분명 [마다가스카]는 영화를 보는내내 즐겁게 웃으며 부담없이 즐길만한 영화입니다. 동물원을 대도시인 뉴욕으로, 동물원의 동물들을 정신없이 바쁜 뉴요커처럼 설정한 것은 그 의도가 뻔히 보이지만 암튼 재미있었고, 야생의 세계에선 먹고 먹히는 관계인 얼룩말과 사자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설정하여 마다가스카라는 밀립에서 그 우정이 본능으로인하여 무너지는 상황을 보여주며 영화의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끌고간 것 역시 이 영화의 재미에 한 몫합니다. [샤크]의 갱스터 상어들을 연상케하는 특공대 펭귄들, [슈렉 2]의 장화신은 고양이보다 더 귀여운 모트의 그 커다란 눈동자 등 기발한 조연 캐릭터들도 관객들의 웃음 보따리를 자극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디즈니스러운 애니메이션은 꼭 드림웍스가 아니더라도 많습니다.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아이스 에이지]와 마찬가지로 분명 [로봇]도 디즈니스러운 애니메이션일테니 말입니다. 드림웍스만이라도 디즈니스럽지 않은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면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제 입장에선 다양한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디즈니다움의 유혹이 강한 것은 알지만 드림웍스만이라도 그 본능을 억누르기만을... [마다가스카]의 사자 알렉스(벤 스틸러)도 결국 야생의 본능을 억누르고 생선 초밥으로 그 배고픔을 해결하지 않았던가요. 드림웍스도 충분히 디즈니적 본능을 억누를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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