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5년 영화이야기

[분홍신] - 기분 나쁘게 무섭다.

쭈니-1 2009. 12. 8. 18:18

 




감독 : 김용균
주연 : 김혜수, 김성수, 박연아
개봉 : 2005년 6월 30일
관람 : 2005년 6월 30일

원래는 [씬시티]를 볼 예정이었습니다. 제가 액션 영화를 좋아하고, 특히 코믹스 원작의 영화라면 무조건 극장에서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서 [배트맨 비긴스]에 이어 [씬시티]도 개봉일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씬시티]의 개봉날 저는 어이없게도 [씬시티]가 아닌 [분홍신]을 보고 말았습니다.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 [분홍신]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구피의 한마디가 6월 30일의 극장 나들이를 [씬시티]에서 [분홍신]으로 바꿔버린 겁니다.
저는 공포 영화를 싫어합니다. 아니 공포 영화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름만 되면 공포 영화 한두편씩은 꼭 챙겨보는 편이니까요. 하지만 워낙에 겁도 많은 편이라서 공포 영화를 보고나면 꼭 며칠동안은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공포 영화를 한두편씩 챙겨보는 이유는 공포에 의한 알 수 없는 쾌감때문입니다. 아직까지 제게 최고의 공포 영화로 기억되는 [가위]도 그랬고, [장화, 홍련]도 그랬습니다. 정말로 무서웠지만 보는 그 순간의 쾌감은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쾌감이 그리워서 저는 잘 만든 공포 영화를 찾아 공포에 질린채 극장을 배회합니다.
올 여름엔 [하우스 오브 왁스]와 [아미티빌 호러]라는 액션 영화같은 헐리우드 공포 영화를 이미 두편이나 봐서 더이상 공포 영화는 안보고 여름을 넘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또다시 [분홍신]을 보기위해 극장을 찾은 겁니다. 구피가 보고 싶어했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솔직히 [장화, 홍련]을 보고 느꼈던 공포 영화의 쾌감을 [분홍신]에서 찾으려 했는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홍신]을 보고나서 저는 후회에 후회를 거듭해야 했습니다. 분명 [분홍신]은 무서워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눈을 감아버리는 바람에 웅웅거리는 한국 영화 특유의 조잡한 사운드와 맞물려 무슨 내용인지, 마지막 반전은 무엇인지 전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쾌감은 없었습니다. 단지 영화를 본후 며칠동안 기분이 나빴을 뿐입니다. 기분 나쁜 공포 영화... 그것이 [분홍신]에 대한 제 느낌입니다.


 



그 무엇이 어떤 공포 영화에는 쾌감을 느끼게하고, 어떤 공포 영화에는 불쾌감을 느끼게 한것 일까요? 솔직히 그것에 대한 경계선을 저는 정확히 정의내릴수는 없습니다. 그냥 공포 영화를 봤을 당시의 느낌입니다.
제가 공포 영화(특히 우리 공포 영화)를 좋아하게된 계기를 마련해준 [가위]만 하더라도 영화를 보는내내 너무 무서워서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위]를 본 후 저는 하지원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게되었으며, 안병기 감독의 두번째 영화인 [폰]도 개봉일을 기다리면서까지 극장으로 달려가 볼 정도로 팬이 되어버렸습니다.([분신사바]는 보지 않았습니다. 평이 워낙 나빠 안병기 감독에 대한 실망만 키울까봐 아예 보기를 포기해 버렸죠.)
[장화, 홍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로 인해 스타가 되어버린 문근영과 임수정, 제 2의 전성기를연 염정아의 입이 딱 벌어질 완벽한 연기는 물론이고, 마지막의 반전은 제겐 쾌감을 넘어 충격마저 안겨줄 정도였습니다. [장화, 홍련]은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될만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분홍신]은 아닙니다. 영화를 볼 당시에는 무서웠지만 보고나서는 괜히 봤다는 생각만 듭니다. 김혜수의 섬뜩한 연기는 [장화, 홍련]의 염정아를 넘어섰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완벽했으며, [와니와 준하]에서 순정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내걸고 푹 빠져들만큼 아름다운 영상을 선사했던 김용균 감독은 [분홍신]에서도 꽤 인상적인 영상을 만듬으로써 차기작에 기대를 걸어도 될만한 재목의 기질을 보여줬으나 이 영화의 공포는 쾌감을 주기에 부족합니다. 제게 있어서 공포 영화의 쾌감은 무서움이라는 감정과는 또다른 그 무엇인가 봅니다.


 



일단 공포 영화에서의 쾌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가위], [장화, 홍련]과 [분홍신]을 비교해보죠. 제가 [가위]를 좋아한 이유는 젊은 배우들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의 힘이 컸습니다. 하지원을 비롯하여, 김규리, 유준상, 유지태, 정준, 최정윤 등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배우들의 대거 등장은 당시 공포라는 비주류 장르에서 풋풋한 매력을 맘껏 발산하여 영화를 보는 제게도 그 풋풋한 에너지가 전달해 줬습니다.
그러한 점은 [장화, 홍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화, 홍련]의 힘은 물론 김지운 감독의 연출력의 힘도 컸지만 문근영과 임수정이라는 젊은 배우들의 발견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염정아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임수정이라는 배우의 매력이 흠뻑 빠져었습니다. 그리고 제 판단력을 흐리게할만큼 귀여웠던 문근영의 매력도 물론 대단했고요.
결국 제가 공포 영화를 보며 느끼는 쾌감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배우들의 에너지 넘치는 힘인듯 합니다. 그런데 [분홍신]에는 그러한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김혜수의 연기가 완벽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녀는 [쓰리]에서도, [얼굴없는 미녀]에서도 완벽했습니다. 예전의 생기발랄한 이미지를 싸그리 잊게 만든 김혜수의 공포 연기는 이젠 인기 배우에서 연기파 배우로 발돋음하려는 김혜수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쓰리]와 [얼굴없는 미녀], [분홍신]에는 한가지 특징이 있었으니 영화가 무서웠던 만큼 영화를 본 후에는 상당히 불쾌했다는 겁니다. 이들 영화는 김혜수라는 배우의 힘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며 그녀에 의해 모든 공포를 풀어냅니다. 그리고 우연인지 아니면 김혜수 스스로 그런 영화를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모두 한결같이 김혜수의 연기는 나른합니다. 그 기묘한 나른함은 영화를 무섭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배우의 에너지 넘치는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제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나른함이 제게 [분홍신]을 기분 나쁜 공포로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분홍신]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얼굴없는 미녀]의 경우는 영화를 본 후 기분은 나빴지만 잘만든 영화라는 느낌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분홍신]은 그러한 느낌마저 들지 않더군요. 그 이유는 이미 영화를 보신 분들이 지적했듯이 김성수의 부족한 연기력과 마지막 반전에 대한 과도한 집착때문입니다.
김성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라는 어이없는 영화에서 김서형과 함께 어이없는 연기의 극치를 보여줬던 그는 잠시 활동 무대를 TV로 옮겨 [유리화], [풀 하우스]같은 TV드라마를 통해 연기력을 쌓은 듯이 보이더니만 [분홍신]에서는 [맛잇는 섹스 그리고 사랑]의 어이없는 연기를 되풀이합니다. 공포 영화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면 그것은 문제가 큽니다. 그것도 배우의 연기 때문에 쏟아진 웃음이라면 그 배우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김성수는 바로 그렇습니다. 김혜수로 인하여 조성된 공포가 김성수로 인해 와해되는 현상이 [분홍신]에서는 반복됩니다. 공포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안델센의 동화를 바탕으로 분홍신에 얽힌 저주와 한을 담아낸 [분홍신]은 분명 그 기획 자체는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충분히 무서웠을 정도로 공포 영화로써의 실력은 발휘했지만 김용균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갑자기 욕심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장화, 홍련]과 같은 관객들을 그로기상태로 몰고갈 충격적인 반전을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증에서 비롯된 듯이 보입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지하철씬은 [분홍신]를 스토리가 모호한 영화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반전을 만들려면 그 반전을 단 한순간에 관객에게 이해시킬만한 능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김용균 감독은 반전만 준비했을뿐 관객을 이해시킬만한 능력은 갖추지 못한 셈이죠.
요즘도 저는 간혹 밤에 악몽을 꿉니다. 무서운 공포 영화를 본 후에 항상 이런답니다. 그만큼 [분홍신]은 제게 충분히 무서운 영화였습니다. 그 무서움이 쾌감으로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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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ook
저는 일년에 단 한편의 공포영화만 봅니다-그닥 공포영화는 좋아하지 않아서.....그리고 작년엔 이 [분홍신]을 선택했는데.....아....대단히 기분나쁠정도로 무서웠습니다... 다시는 보고싶지 않을정도로..내용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욕망이 살인을 부르는구나......하고 생각을 단념해버렸습니다.
 2006/04/03   
쭈니 저는 여름마다 공포영화를 많이 찾아본 편인데... 요즘은 왠지 보기 싫어진다는... 올 여름은 아마 공포 영화 안보고 넘어갈지도...  2006/04/03   
허클베리
음, 공포를 불러일으킨 영화라는 점에선 괜찮았는데,
크게 눈에 거슬렸던 장면 하나가 바로 쭈니님 리뷰의 3번째 컷 신이었지요. 지하철 안에서 김혜수가 혼란스러워하던 장면.
너무 길어서 지루함에 몸부림을 쳤었지요.
우리나라 공포영화 중 봐도 봐도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는 단연 <장화,홍련>이지요. 암요.
 2006/06/09   
쭈니 아~ 전 그 장면 결국 보지 못했다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죠... ^^;
 2006/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