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로버트 로드리게즈, 프랭크 밀러, 쿠엔틴 타란티노
주연 : 브루스 윌리스, 제시카 알바, 미키 루크, 클라이브 오웬
개봉 : 2005년 6월 30일
관람 : 2005년 7월 8일
[우주전쟁]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본 후 기분이 들떠서 이 기분을 또다른 재미있는 영화로 쭈욱 이어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대하고 있는 영화들은 몇 주 더 기다려야 개봉을 하기에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어도 보고 싶은 영화가 없더군요. 그때 제 눈에 띈 영화가 바로 [씬 시티]입니다.
6월 30일에 개봉한 영화를 7월 8일에 본다는 것은 제겐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저는 영화를 재미있게 볼려면 개봉 후 일주일 전에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개봉한 후 몇주가 지나서 보게된다면 알게 모르게 영화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를 듣고 보게 될것이며, 그런 정보들은 영화를 재미없게 만들기때문입니다. 예전에 인터넷 예매가 없을 당시에 상영 극장이 언제나 만원이어서 보지 못했다가 몇 개월 후에 보게되었던 [사랑과 영혼], [타이타닉]이 기대보다 별로 재미없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죠. 그래서 인터넷 예매와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언제든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게된 요즘은 보고 싶은 영화는 무조건 개봉 일주일 전에 봤으며, 어쩌다가 놓친 영화들은 차라리 비디오로 출시 후 보게 된겁니다.
[씬 시티]가 개봉되었던 지난주에 어쩌다보니 [씬 시티]가 아닌 [분홍신]을 보게 되어서(집앞 극장에선 [씬 시티]가 하지 않았거든요. ^^) 아쉽지만 [씬 시티]는 비디오로 보자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주전쟁]를 본 후 자꾸만 [씬 시티]에 대한 미련이 절 괴롭혔답니다. 그렇게 저는 [씬 시티]를 봤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본 후 극장을 나오며 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 이틀동안 맘에 드는 영화를 본 후 느끼는 그 짜릿한 쾌감... 정말 최고의 한주였답니다.
[씬 시티]의 첫 느낌은 굉장히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흑백과 원색의 화려한 조화는 마치 멋진 그림 엽서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로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아름다움의 뒤편엔 치명적인 잔인함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영화의 처음부터 복잡한 파티장을 빠져나와 흑백의 도시의 바라보는 붉은 옷의 아름다운 여인이 화면에 잡힙니다. 흑백의 화면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여인의 붉은 옷과 입술, 순간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가 끈적끈적한 멘트를 날립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뜨거운 눈빛, 영화는 마치 한편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이 두사람을 이끌어가려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여인은 쓰러집니다. 남자의 총에 맞은채...
[씬 시티]는 이런 식입니다. 흑백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흑백속의 원색의 화려한 칼라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아름다움을 잡아내는 영화의 캐릭터들은 잔인하기 짝이 없습니다. 3가지 에피소드 속에서 3가지 잔인한 액션극을 펼치는 이 영화는 관객에게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주겠다고 결심이라도 한듯이 시종일관 관객을 몰아세웁니다.
아름다움의 잔인함...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그 색다른 쾌감은 2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의 러닝타임동안 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니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데스페라도]의 춤추듯이 아름다운 액션씬으로 단숨에 제가 좋아하는 감독으로 등극하더니만, [스파이 키드 시리즈]로 몇 년간 유아틱한 영화에만 머물어 저를 실망시키더니, 결국 [씬 시티]로 아직 그가 액션 미학의 거장으로 건재함을 보여줬습니다.
[씬 시티]는 또다른 쾌감은 이 영화에 출연하는 수많은 헐리우드 스타급 배우들의 전혀 뜻밖에 모습을 보는 것에 있습니다. 제가 [씬 시티]를 처음부터 기대했던 것도 물론 화려한 배역진도 커다란 몫을 차지했지만 영화를 보는 그 순간 제가 예상했던 캐릭터를 맡은 배우는 고작 브루스 윌리스, 제시카 알바 뿐이었습니다.
로맨틱 가이 조쉬 하트넷이 냉혹한 킬러로 등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클로져]의 클라이브 오웬은 저렇게 터프했나 의심이 될 정도이며, 미키 루크에 이르러서는 과연 저 배우가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배우인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지경에 이르릅니다. 아마 영화를 보기전 마브라는 캐릭터가 마키 루크라는 사실을 듣지 않았다면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그런데 미키 루크는 어디에 나온거지?'라고 물을뻔 했습니다.
베네치오 델 토로의 능글맞은 악역도 너무 의외여서 유쾌했으며, 브리트니 머피(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안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마이클 매드슨, 마이클 클라크 던칸 등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튀어나오는 낯익은 배우들의 뜻밖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습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반지의 제왕]에서 귀여운 프로도를 연기한 일라이자 우드의 섬뜩한 연기가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실 그가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처음 안것은 영화 초반 출연진 이름이 나오는 부분에서입니다. '어! 우리의 프로도가 나오네' 저는 영화가 시작하자 선하디 선한 일라이자 우드를 찾느라 분주했고, 결국 제가 그토록 찾아헤맸건 일라이자 우드가 나오는 장면을 봤을땐 한동안 얼떨떨했답니다. 그에게 이런 섬뜩한 면이 있을 줄이야... 그가 연기한 캐빈이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속 수많은 잔인한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캐릭터로 지금도 일라이자 우드의 그 무표정한 얼굴만 생각해도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과연 헐리우드 스타들이 단지 번지르한 외모와 매스컴을 뜨겁게 달굴 스캔들만으로 스타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닌가 봅니다. 그 어떤 캐릭터를 맞겨도 완벽하게 그 캐릭터에 녹아드는 그들의 연기는 영화의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씬 시티]의 그 수많은 헐리우드 스타급 배우들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씬 시티]는 시각적인 쾌감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솔직히 이 영화는 3가지 에피소드를 하나의 영화에 풀어넣다보니 이야기의 짜임새는 부족한 편입니다.(제가 옴니버스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2시간 동안 풀어넣은 것도 아니고 무려 3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다보니 아무래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스토리의 짜임새를 포기하더라도 '최고'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입니다. 다른 영화에선 결코 느껴본 적이 없는 흑백과 원색의 조화로 인한 아름다움의 잔인함은 물론이고, 폭력 미학의 대가인 3명의 감독들이 연출한 덕분인지 근래 보기 드문 폭력적인 장면들의 거부할 수 없는 쾌감은 '영상 쾌감'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려 보입니다.
사랑하는 어린 소녀를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하는 늙은 형사의 마지막 평온한 눈빛, 하룻밤의 사랑을 알려준 창녀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를 실행하고 괴물같은 사내의 상처입은 얼굴, 창녀 구역의 평화를 되찾은 후 몰려드는 한 사나이의 만족스러운 미소, 하나하나의 에피소드와 캐릭터들은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이 '완벽'이라는 단어에 맞게 영화속에 하나로 버무려지며 제게 놀라움을 안겨줬습니다. 과연 언제쯤 또다시 이런 완벽한 영상 쾌감을 경험하게 될런지... 이 영화의 영상 쾌감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며 썸머시즌의 다음 기대작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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