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5년 영화이야기

[웰컴투 동막골] - 내가 동막골에 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쭈니-1 2009. 12. 8. 18:21

 


감독 : 박광현
주연 : 정재영, 신하균, 강혜정,임하룡
개봉 : 2005년 8월 4일
관람 : 2005년 7월 20일

1950년 11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동막골이라는 문명과는 동떨어진 깊은 산골마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군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미군에게 쫓겨 달아나던 인민군 리수화(정재영)일행, 전쟁이 싫어 탈영한 국군 표현철(신하균)일행, 비행기 추락으로 말도 통하지 않는 이 이상한 마을에 갇혀버린 미군 스미스(스티브 태슐러)까지... 이제 그들은 동막골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거를 시작합니다.
[웰컴투 동막골]은 이상한 매력을 지닌 영화입니다. 한국전쟁이라는 우리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지옥과도 같은 시간적 배경 속에서, 순수함으로 뭉쳐진 그 시절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장 이상적인 천국과도 같은 동막골이라는 마을을 영화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영화는 시간적 배경은 지옥인데 공간적 배경이 천국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들이 충돌하며 관객들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웃음과 감동을 안겨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웰컴투 동막골]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울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했으면서도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를 띄우게 하는 힘. 다른 코미디 영화처럼 아주 대놓고 관객들에게 웃으라고 윽박지르는 식의 억지 웃음이 아닌,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박장대소를 하게 되는 아주 자연스러운 웃음을 이 영화는 선사하는 겁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곧 다가올 엄청난 비극을 예상하면서도 동막골 사람들의 순수함에 동화되어 마냥 행복하게 웃게 됩니다. 그리고 예정대로 다가온 마지막 비극에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던 제게 이 영화는 말합니다. 웃으라고... 이 엄청난 비극마저도 행복한 웃음으로 만드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영화가 바로 [웰컴투 동막골]입니다.


 



이 영화의 웃음의 원천지는 바로 순수함입니다. 총이 무엇인지, 수류탄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동막골의 순수한 사람들은 오랜만에 마을을 찾은 외지인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리수화 일행과 표현철 일행이 만나자마자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고함을 질러대도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왜그러는지 알지못합니다. 단지 다음날 아침이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일상 생활을 위해 밭으로 나갈 뿐입니다.
이러한 마을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순수함은 리수화 일행과 표현철 일행이 당혹스러워하는 것만큼 관객들에게도 웃음을 안겨줍니다. 사람의 몸따위는 산산조각으로 만들수 있는 그 무시무시한 전쟁 무기들이 마을 사람들에겐 그냥 이상한 막대기나 신기한 장난감으로 보였을테니, 당연히 무서워 벌벌 떨어야하는 장면에서 그들은 오히려 태연스럽게 사람좋은 웃음만을 지어 보이는 겁니다. 이러한 순수함이 전쟁의 긴박함 속에서 여유로움을 잃고 지내던 리수화 일행과 표현철 일행의 마음까지도 동화시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마저도 얼굴 한가득 웃음을 짓게 되는 겁니다.
간혹 영화들은 순수함을 무기로 관객들을 유혹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순수함들은 대부분 어린 아이들을 내세워 관객들이 잊고 살던 동심을 자극하는 정도로 마무리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순수함은 그러한 동심이 아닌 문명의 세계와 동떨어진... 어쩌면 우리 모두 문명의 세계에 물들이지 않았다면 지니고 있었을 그러한 순수함을 보여줌으로써 관객 자신의 모습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끔 만듭니다. 휴대폰을 지니고, 컴퓨터를 하루종일하며, TV에 빠져사는 지금 우리들은 모습은 과연 행복한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동막골 사람들의 생활이 더 행복하지 않은가? 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문명의 혜택을 받았기에 서로 죽이는 전쟁을 하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던 순수한 옛날 그 시절이 더욱 행복하지 않았을까라고... 이 영화의 순수함에 동화되어 저도 모르는 사이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습니다.


 



이 영화가 순수함을 관객에게 설파하는 영화라면 광녀 여일(강혜정)은 그러한 순수함을 극대화시키는 캐릭터입니다. 사실 처음엔 강혜정이 과연 여일역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여일은 순수한 동막골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그런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혜정은 아직 [올드보이]의 그 충격적인 이미지를 채 벗기 전이었으니...
그러나 그러한 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리수화와의 첫만남에서부터 그 엉뚱함으로인해 제 웃음보를 터뜨렸던 여일은 영화내내 순수함과 그로인한 웃음을 이어주는 주요 캐릭터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해냅니다. 그리고 물론 그 중심에는 근친상간을 하는 미도라는 캐릭터의 강인한 이미지를 완벽하게 벗어낸 강혜정이라는 배우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연기 인생은 [웰컴투 동막골]을 시작으로 활짝 열린 느낌입니다.
물론 정재영과 신하균, 임하룡의 연기도 전혀 군더더기가 없었습니다. 인민군의 그 강렬한 카리스마를 연기한 정재영은 카리스마가 순수함에 동화되는 순간을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게 연기함으로써 이 영화의 재미에 톡톡한 몫을 해냈으며, 신하균 역시 전쟁이 가져다준 마음의 상처로인해 쉽게 가슴을 열지 못하는 표현철 역에 이보다 더 적역은 없다싶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해냈습니다.
이렇게 배우들의 잘 조화된 연기는 영화의 마지막으로 치닫으며 제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영화의 중간중간 미군의 동막골 폭격을 예감하는 씬들을 넣어줌으로써 영화를 보는 저를 불안하게 하더니만 결국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던 그 비극의 장면이 영화의 후반에 펼쳐집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눈물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비오듯이 쏟아지는 폭탄의 세례속에서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그 순수함을 지켰다는 리수화, 표현철의 그 환희에 찬 표정은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오는 진정한 감동의 순간을 제게 선사합니다.


 



[웰컴투 동막골]을 연출한 박광현 감독(영화를 보기전에는 [퇴마록]의 박광춘 감독과 이름이 헷갈려 자칫 영화 자체를 포기할뻔 했습니다.)은 영화를 환상과 현실의 기묘한 조화로 만들어냈습니다. 수류탄이 옥수수 창고에 터져 옥수수들이 팝콘이 되어 비오듯이 떨어지는 장면은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표현하고자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동막골이라는 마을을 통해, 동족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죽고 죽였던 전쟁의 아픔을 잠시라고 잊고 편히 쉬라고 말하는 이 영화의 순수함은 전쟁 영화를 흑과 백의 단순한 논리로 마치 액션 영화 찍듯이 만들어내는 다른 전쟁 영화와 너무나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에 더욱더 돋보입니다. 결국 나쁜 것은 전쟁 그 자체일뿐, 이유도 모르는채 그 전쟁에 뛰어든 남 혹은 북의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이 영화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처참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천국과도 같은 동막골에서 잠시라도 진정한 행복을 맛본 영화속 캐릭터들의 그 마지막 행복한 표정처럼 각막한 세상에서 단 2시간만이라도 완벽한 천국을 맛본 저 역시도 그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저를 동막골로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동막골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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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허니
웰컴투동막골.. 쭈니님의 마음을 그렇게 격앙되게 할정도로 무지 잼나고 감동깊은영화인가보죠? ^^ 꼭봐야겠네.. 포스터로 봤을땐 아.. 한편의 희극6.25영화인가보네.. 시시하겟다..이런생각이었는데..ㅋㅋ 좋은영화평감사요..  2005/08/01   
규허니
근데 마지막사진에..임하룡씨아닌가.. ?? 저양반도 영화찍나..
개그맨들이나 가수들이 영화찍으면 항상생기는 의문..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영화배우가없나?? 이참에 나도 조연전문배우로 나서봐..말어...
 2005/08/01   
쭈니 네 꼭 보세요. 가슴 훈훈한 영화랍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원래 연극이랍니다. 임하룡은 연극에 출연한것이 계기가 되어 영화에도 출연한것이고요. 그런데 꽤 잘해요. 기대이상으로... ^^  2005/08/01   
주노
오늘 <웰컴 투 동막골>과 <친절한 금자씨>를 연달아 봤는데요...
아이처럼 막 살라는 의미의 동막골에 상주하는 사람들은 안경 낀김선생을 빼고는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문명의 혜택도 누리지 못한 채 살죠....
하지만 영화 후반에 스미스가 말했듯이...저렇게 사는 게 행복이다...긴 여운을 남기네요.
마지막 장면에서 폭격 유도를 준비하던 정재영 씨가 언급했듯이 남북 연합군이 되어 미군이라는 침범 세력과 맞서 싸우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말 한 마디 안 통하는 스미스와 마음으로 통하죠...이런 점에서 용공 영화라는 비난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듯 하네요..ㅋㅋ
마지막으로 임하룡 씨는 <범죄의 재구성>에 등장하여 조연으로의 역할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고 늘 웃음을 선사하더군요..
'저 여자 머리에 꽃 꽂았습니다'<--이 대사가 왜 그리 웃기던지..ㅋㅋ
아무튼 오랜만에 훈훈한 감동이 있는 영화를 본 하루였습니다~
 2005/08/05   
쭈니 저 역시도 이 영화가 용공영화라고 우기시는 분들을 보면 참 가슴이 아픕니다. 한국전쟁의 상처와 그이후 계속된 쇄뇌교육의 결과랄까... 전쟁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생각하지 않고 공산당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의 그들... 어서빨리 그러한 상처에서 치유되어야할텐데... 그러지않는한 통일이 된다고해도 위험한 불씨는 계속 남아있게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2005/08/05   
ssook
처음부터 인상적이었어요.....오프닝에 먹물이 번지는...수묵화 한점 보는 듯해서 기분이 좋더라구요......음악감독이 일본인이어서는 아닐테지만 중간중간에 일본 애니를 보는듯한 소품들이 있던데.....-대표적으로 말하자면 호박등이 죽 놓여있는 길같은....왠지 미야자키 애니에서 본 듯한 느낌인데...ㅋㅋ거기서 나온 멧돼지와의 격투씬 있잖어요...얼마전에 [스윙걸즈]라는 영화를 봤는데......ㅋㅋ 거기서 다시 재연 돼더라구요...  2006/04/03   
쭈니 사실 그 멧돼지씬은 이 영화가 [스윙걸즈]의 한장면을 따라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겁니다. 그 덕분에 저는 일본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윙걸즈]를 꽤 재미있게 봤답니다.
그나저나 이 영화에서 일본 애니의 흔적을 발견하시다니... ssook님... 놀랍습니다. ^^
 2006/04/03   
애니메이션 적 소재가 가득했던 영화였지요 ^^
아무튼.. 즐겁게 볼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스윙걸즈는 조금 실망이더군요
갑자기 실력이 느는 부분의 설명이 없었다는건..
결정타 였습니다 ^^;;
 2006/05/08   
쭈니 뭐 어쩔수없겠죠.
그런 장면까지 잡았다면 영화가 아닌 미니 시리즈로 제작되어야 했을지도...
그래서 영화가 더욱 어려운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내에 관객을 이해시켜야하니... ^^
 2006/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