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5년 영화이야기

[트리플 X 2 : 넥스트 레벨] - 과연 빈 디젤을 넘을 수 있겠는가?

쭈니-1 2009. 12. 8. 18:07

 




감독 : 리 타마호리
주연 : 아이스 큐브, 사무엘 L. 잭슨, 윌렘 데포
개봉 : 2005년 4월 29일
관람 : 2005년 5월 1일

2002년 가을, 저는 [트리플 X]라는 이상한 제목의 액션 영화와 만났습니다. 빈 디젤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남미계 배우가 주연을 맡은 이 액션 영화는 그러나 영화를 보는내내 절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액션속에서 저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습니다. 분명 [트리플 X]는 잘 만들어진 액션 영화입니다. 반영웅적인 젠더 케이지의 캐릭터도 신선했고, 젠더 케이지를 연기한 빈 디젤의 카리스마도 압도적이었습니다. 액션과 함께 X 스포츠의 짜릿함을 맘껏 선사했던 [트리플 X]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또 하나의 액션 히어로를 데뷔시켰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2년이 훌쩍 흘렀고 예정된 계획대로 [트리플 X 2]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트리플 X 2]에는 빈 디젤이 없습니다. 그 대신 아이스 큐브라는 흑인 배우가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트리플 X 2]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과연 아이스 큐브는 빈 디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다시 3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죠. 2001년 [분노의 질주]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폴 워커가 폭주족으로 위장잠입하여 고급 차량 절도단을 일망타진하는 내용의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 영화입니다. 평범해보이는 이 액션 영화는 그러나 예상외의 흥행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것은 [분노의 질주]의 성공으로 스타덤에 오른 것은 주인공인 폴 워커가 아니고 영화속 악역에 가까웠던 빈 디젤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2년후 예정대로 속편이 만들어졌습니다. [패스트 앤 퓨리어스 2]가 바로 [분노의 질주]의 속편입니다. 이 속편에서 폴 워커는 여전히 주인공의 자리를 지켰지만 빈 디젤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제작비 3천 8백만달러로 미국에서만 1억 3천만달러를 벌어들인 [분노의 질주]에 비해, 전편의 두배가 넘는 8천만달러의 제작비를 쏟아부었지만 1억 2천만달러를 벌어들인 [패스트 앤 퓨리어스 2]는 실망스러운 흥행 결과만 안겨주었습니다.(국내 흥행성적은 거의 참패 수준이었답니다.)
그렇다면 빈 디젤이 없는 [트리플 X 2]는 과연 [패스트 앤 퓨리어스 2]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아이스 큐브를 새로운 액션 히어로로 등극시킬 것인가? 일단 미국에서의 개봉 첫주 흥행은 겨우 1천 3백만달러로 3위에 올랐다고합니다. 물론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빈 디젤을 넘기에는 아이스 큐브로는 역부족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리 타마호리 감독은 과연 뭘 믿고 아이스 큐브에게 새로운 트리플 X의 중책을 맡긴 걸까요?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아이스 큐브는 요즘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흑인 배우입니다. [프라이데이]나 [우리동네 이발소에 무슨 일이?]와 같은 흑인 코미디 영화로 입지를 굳힌 그는 최근작 [아직 멀었어요]를 메가히트시키며 미국에선 새로운 흑인 흥행 킹으로 등극한 배우입니다. 하지만 그의 흥행성은 아직은 흑인 코미디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문제는 다리우스 스톤이라는 캐릭터에서부터 나타납니다.
빈 디젤이 연기한 젠더 케이지의 특징은 반영웅입니다. 그는 어쩔수없이 영웅짓거리를 할뿐 전혀 영웅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의 특기는 위험천만한 X 스포츠이고, 죽음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함입니다.
그런데 아이스 큐브가 연기한 다리우스 스톤은 아닙니다. 그가 군인 출신이라는 점에서부터 케이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의 뒷골목 출신인 전형적인 아웃사이더 케이지에 비해 스톤은 특수부대 군인이라는 꽤 애국적이며 엘리트(?)적인 길을 걸어온 인물인 셈입니다. 스톤은 스스로 '나에겐 애국심따위는 없다'라고 말하지만 그의 행동은 어쩔수없이 국가를 위한 애국심에서 비롯되며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위해 임무를 수행했던 케이지와는 정반대의 영웅인 셈입니다.
아이스 큐브는 분명 새로운 트리플 X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보입니다. 빈 디젤에게 결코 뒤지지않는 근육질의 몸매는 물론이고, 랩하듯이 연기하던 이전 흑인 코미디와는 달리 무뚝뚝한 표정으로 카리스마를 내뿜으려는 노력도 가상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다리우스 스톤은 아이스 큐브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빈약합니다. 젠더 케이지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는 이전 헐리우드 영웅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면모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내용이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면서도 젠더 케이지라는 캐릭터만은 기억에 남아 있으며, 빈 디젤의 액션 연기에 호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리우스 스톤은 평범합니다. 특수부대 출신의 영웅이라는 그의 출생부터 평범함의 극치이며, 애국심에 가득찬 그의 영웅적인 면모 역시 너무 많은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지켜본 모습입니다.
거의 모든 액션 영화는 엇비슷합니다. 내용도 그렇고 액션도 그렇습니다. 물론 기술의 발달로 액션은 점점 강도가 높아지지만 그 높아지는 액션의 강도만큼 관객들의 눈높이도 높아지니 결국 영화가 끝나고나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액션씬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캐릭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2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다이하드]의 속편이 제작되고 있는 것은 존 맥클레인이라는 캐릭터가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007 시리즈]가 40년이 넘도록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 덕분입니다. 결국 오랫동안 기억될 액션가 되고 싶다면 매력적인 영웅 캐릭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트리플 X 2]는 그것을 실패했습니다. 젠더 케이지라는 전편의 매력적인 영웅 캐릭터 대신 영웅의 자리를 꿰차고 앉은 다리우스 스톤은 너무 평범해서 전혀 매력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코미디 배우에서 액션 배우로의 변신을 시도한 아이스 큐브는 가장 전형적인 액션 히어로로 변신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런 안전한 선택이 오히려 빈 디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이유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뭐 일단 다리우스 스톤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평범하니 [트리플 X 2]를 걸작 액션 영화의 범주안에 넣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영화를 보는 그 순간까지 짜증이 날 정도로 엉망인 액션 영화는 아닙니다. 한마디로 영화를 보고난후에는 곧 잊혀질 영화이지만 최소한 영화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액션의 쾌감을 꽤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겁니다.
전편이 그랬듯이 이 영화는 처음부터 숨쉴 틈을 주지 않고 액션을 쏟아 붓습니다.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쏟아지는 액션 덕분에 영화를 보는 그 순간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바로 리 타마호리 감독의 솜씨입니다. 리 타미호리 감독은 [007 어나더데이]에서 북한을 악의 소굴로 묘사한 이유로 국내 영화팬들에겐 그리 반가운 이름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헐리우드의 액션 감독으로 치부해버리기엔 아까운 인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의 감독 데뷔작이자 그의 출세작인 [전사의 후예]만 보더라도 그의 연출력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인이 지배하는 뉴질랜드 사회에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비참한 삶을 그린 [전사의 후예]는 몬트리올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를 석권한 문제작입니다. [전사의 후예]의 성공후 헐리우드로 건너간 그는 [머홀랜드 폴스], [디 엣지]등을 만듭니다. 솔직히 [전사의 후예]에 비해서 그리 잘만든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런데로 성공적인 헐리우드로의 안착이라고 할만합니다. 이후 [007 어나더데이]와 [트리플 X 2]를 통해 블럭버스터 전문 감독이 되어버렸지만 언젠가는 [전사의 후예]와 같은 걸작을 다시한번 만들어 낼 것입니다.
[트리플 X 2]는 리 타미호리 감독의 액션 영화적인 역량이 잘 드러납니다. 평화로운 목장과 최첨단 기지의 극단적인 풍경이 대비를 이루는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시작하여, 군함과 탱크를 동원한 액션씬은 물론이고, 백악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영화 후반의 액션은 분명 액션에 목마른 제게 갈증을 해소시켜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만약 아이스 큐브가 아닌 빈 디젤이 전편에 이어 주인공을 맡았다면... 그래서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 영웅인 다리우스 스톤 대신 반항적인 영웅 젠더 케이지가 여전히 트리플 X로 활동했다면 어쩌면 이 영화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걸작 액션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다리우스 스톤의 임무가 끝나고 기븐스(사무엘 L. 잭슨)는 새로운 트리플 X에 대한 언급을 합니다. 속편을 위한 당연한 수순이죠. 과연 다음엔 어떤 배우가 트리플 X를 연기할지 아직은 모르지만 빈 디젤을 뛰어넘을만한, 새로운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가, 젠더 케이지와 맞먹는 새로운 액션 히어로의 캐릭터를 완성해내야만 할 것입니다. [트리플 X]가 오랫동안 시리즈를 이어나가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