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5년 영화이야기

[밀리언즈] - 착해져도 너무 착해진 것은 아닌지...

쭈니-1 2009. 12. 8. 18:06

 




감독 : 대니 보일
주연 : 알렉산더 나단 에텔, 루이스 오웬 맥깁본
개봉 : 2005년 5월 4일
관람 : 2005년 4월 26일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며칠전 어느 영화 카페에 제가 써놓은 글입니다. 약간의 오버가 섞여 있긴 하지만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닙니다. [쉘로우 그레이브]를 본 이후 대니 보일의 영화는 언제나 제게 가슴 떨리는 설레임을 안겨주었으니까요.
국내엔 그리 잘 알려진 영화는 아니지만 대니 보일의 데뷔작인 [쉘로우 그레이브]는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환생]과 더불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릴러 영화중의 하나입니다. 정체불명의 룸메이트가 거액의 돈을 남기고 죽자 세명의 친구들이 돈가방을 사이에 두고 암투를 벌인다는 이 영화는 이완 맥그리거, 케리 폭스, 크리스토퍼 에클레스톤 등 현재 영국의 영화계를 이끌어나가는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정말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대니 보일의 영화중 가장 성공한 [트레인 스포팅], 이완 맥그리거와 카메론 디아즈의 매력이 돋보이는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 대니 보일의 영화중 최악의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은 [비치], 그리고 섬뜩한 좀비 영화인 [28일후]까지... 그의 영화는 언제나 재기발랄하고, 스피드하며, 예측불허합니다. 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시각적인 황홀경을 경험하는 것이며, 상상력의 자극제를 맘껏 투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토록 대니 보일을 좋아하는 저는 [밀리언즈]라는 너무나도 낯설은 영화의 포스터에서 대니 보일의 이름을 발견하고 막연하게 [밀리언즈]를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치]의 실패후 영국으로 돌아온만큼 그의 영화적인 재능이 다시금 발휘될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저는 며칠전 보았던 장 삐에르 쥬네 감독의 [인게이지먼트]이후 또다시 유럽산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될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겁니다. 그렇게 [밀리언즈]와의 행복한 만남은 시작되었습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합니다. 예상했던대로 [밀리언즈]는 처음부터 빠른 편집으로 관객들의 시각을 자극시킵니다. 허허벌판에 멋들어진 집이 지어지는 광경을 빠른 화면속에 지켜보며 저는 '역시 대니 보일이군'이라는 탄성만 내질렀습니다. 스피드한 스토리 전개도 여전하고, 개성적인 캐릭터 구축도 '역시나'였습니다. 모든 것이 과연 대니 보일다웠습니다.
특히 어마어마한 돈가방을 우연한 기회에 얻게된 두 소년의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은 영화의 흥미를 더해주었습니다. 어른보다 더욱 어른스러운 형 안소니(루이스 오웬 맥깁본)는 돈의 위력을 십분발휘하며 멋들어지게 돈을 써대고, 이 돈가방은 하늘에서 착한 일을 하라고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믿는 동생 데미안(알렉산더 나단 에텔)은 엉뚱하게도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헤매며 돈을 나눠줍니다.
이쯤에서 제가 꼽는 대니 보일의 최고의 영화인 [쉘로우 그레이브]와 묘하게 곁쳐집니다. 각자의 개성은 다르지만 우정이 두터웠던 세명의 친구들이 뒤가 구린 돈가방을 얻게 되고 그 돈가방으로 인하여 점차 파멸해가는 상황을 그렸던 [쉘로우 그레이브]의 상황은 어린 소년이라는 대상만 바뀌었을뿐 모든 것이 그대로였던 겁니다.
특히 돈의 존재를 알게된 안소니와 데미안의 아버지가 자기 합리화를 하며 돈가방에 욕심을 내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쉘로우 그레이브]에서 가장 순진하고 착한 캐릭터였던 데이빗(크리스토퍼 에클레스톤)이 돈에 대한 집착으로인해 점차 미쳐가는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돈이라는 한낱 종이에 불과한 것이 이성적인 사람들을 비이성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쉘로우 그레이브]에서도 그랬고, [밀리언즈]에서도 섬뜩하게 그려지고 있었던 겁니다.
단지 너무 어리기에 돈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던 데미안만이 돈때문에 미쳐가는 가족들 틈에서 순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관객들을 웃음의 도가니속으로 몰고 갑니다. 바로 그것이 [쉘로우 그레이브]엔 없었던 거죠. [쉘로우 그레이브]엔 돈 때문에 미쳐가는 어른들만이 있었을 뿐이지만 [밀리언즈]에서는 그러한 어른들 틈에서 제 정신을 간직한 순진한 아이가 있었던 겁니다. 바로 그러한 데미안의 존재는 과격했던 대니 보일의 영화를 온 가족이 함께 즐길수 있는 가족 코미디로 탈바꿈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나 대니 보일의 영화를 좋아하던 제게 이러한 [밀리언즈]에서의 변신은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가 이토록 착한 영화를 만들줄이야...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에서조차 온 가족이 즐길만한 착한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어린 소년을 내세워 착하디 착한 가족 코미디를 만들어낸 겁니다.
[밀리언즈]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쉘로우 그레이브]의 천사표 버전입니다. 돈가방에 대한 암투만 있을뿐 결코 정상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았던 [쉘로우 그레이브]에 비해 [밀리언즈]는 영화의 후반부가 될수록 점차 관객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착한 결말로 치닫습니다. 대니 보일 영화의 장점이 현란한 편집과 개성적인 캐릭터, 그리고 예측불허한 스토리 전개라고 한다면 [밀리언즈]는 바로 예측불허한 스토리 전개를 착한 영화를 위해서 스스로 포기한 셈입니다.
돈가방을 노리며 데미안을 협박했던 강도가 별다른 기막힌 반전없이 순순히 경찰에 붙잡혔을때, 데미안이 돈더미를 불로 태워버리며 죽은 엄마를 만날때, 데미안의 가족들이 잘못을 깨우치고 다시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갈때, 이 착하디착한 결말은 충분히 다른 관객들에게 행복감을 안겨주지만 [쉘로우 그레이브]같은 영화를 원했던 저같은 관객들에겐 안타까움만을 남겼습니다.
어느덧 감독으로 데뷔한지 10년이 훌쩍 넘어버린 대니 보일 감독도 이젠 재기발랄한 영화를 포기하고 교훈적인 착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인지... 그런 착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많으니 대니 보일 감독만은 예전같은 영화를 만들어 줬으면 좋으련만... [밀리언즈]를 보고나오던 제 머리속에는 데미안이라는 꼬마의 그 착한 표정이 자꾸만 원망스러워 집니다. '넌 대니 보일 감독에게 어울리지 않아.'라고 투정을 부려보고 싶어지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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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천사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영화입니다.
개봉되는날 꼭 보러 갈 계획입니다.
 2005/05/03   
쭈니 착해졌다고는 해도 대니 보일의 영화이니 기대하셔도 좋을듯 합니다.  2005/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