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박영훈
주연 : 문근영, 박건형
개봉 : 2005년 4월 28일
관람 : 2005년 4월 21일
[댄서의 순정]이라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제목을 지닌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기사를 읽었을때 가장 먼저 제 눈에 들어온 이름은 바로 문근영이었습니다. 아직 스무살도채 되지 않은 어린 배우지만 [장화, 홍련], [어린 신부]의 흥행 성공과 함께 어느덧 스타급 여배우로 입지를 굳힌 그녀는 [댄서의 순정]이라는 너무나도 촌스러운 제목의 영화를 기대하게끔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실 [장화, 홍련]이 개봉되었을때만해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것은 문근영이 아닌 임수정이었습니다. 귀엽고 갸날프며 감싸안아주고 싶은 이미지에 불과했던 수연(문근영)에 비해, 강인하면서도 섬뜩한 광기를 내면 깊숙히 숨긴채 관객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수미(임수정)라는 캐릭터가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임수정은 그해 각종 국내 영화제의 신인여우상을 휩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먼저 스타의 자리에 오른 것은 문근영이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어린 여성에 대한 묘한 성적 상상력을 귀여운 팬시같은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한 완벽한 상업 영화 [어린 신부]는 문근영의 순수하면서도 귀여운 이미지를 이용하여 분명 논란이 될만한 영화의 소재를 재미있는 영화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문근영은 [어린 신부]에서 자신의 매력을 100% 발휘합니다. 도저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그 살인적인 귀여움은 [어린 신부]라는 그저그런 로맨틱 코미디마저도 사랑스러운 영화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어린 신부]의 김호준 감독은 차기작으로 [어린 신부]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미성년자 결혼 프로젝트 [제니, 주노]를 만들었지만 흥행에 실패한것을 보면 역시 [어린 신부]의 흥행 성공은 문근영의 힘임을 다시 한번 입증시켰다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댄서의 순정]은 [어린 신부]에서의 문근영의 귀여운 매력이 아직도 유효한지 확인할 수 있는 첫 영화입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댄서의 순정]에서도 문근영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솔직히 [댄서의 순정]이라는 영화 그 자체에는 절대로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근영이라는 배우에게만큼은 무한대의 점수를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댄서의 순정]을 문근영에게 바치는 관객들의 순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자! 문근영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지만 영화 그 자체만으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욕을 해도 시원치 않을 정도입니다. [댄서의 순정]이라는 너무 촌스러운 제목에서부터 박영훈 감독은 70,80년대의 멜로 영화를 표방하겠다는 야심을 감추지 않은 듯 보입니다. 뭐 사실 그런 의도는 좋았습니다. 너무 자극적인 영화들을 판을 치는 요즘 이런 순수한 영화는 신선한 충격이 될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의 순수함은 도가 지나칩니다. 30년전 멜로 영화를 보는 듯한 그 촌스러운 스토리 라인과 판에 박은 듯한 조연 캐릭터들은 영화를 보는내내 짜증을 자아냅니다.
[댄서의 순정]은 영화의 시작부터 나영새(박건형)를 막다른 길에 몰아넣고 그에게 장채린(문근영)이라는 짝을 새로 지워줍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스토리는 안봐도 뻔합니다. 영새는 채린에게 춤을 가르쳐주고 채린은 최고의 무용수가 되는 거죠. 저는 채린의 급부상과 함께 영새의 화려한 재기를 예상했지만 다행히도 박영훈 감독은 그 정도로 촌스러운 감독은 아니었나 봅니다. 최소한 영새의 재기로 영화를 끝내지 않은 것을 보면...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반딧불이 장면에 이르면 제가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발생합니다. 처음 채린이 반딧불이의 애벌레를 가지고 입국했을때부터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너무나도 완벽하게 반딧불이를 이용한 촌스러운 엔딩이 준비되어 있을줄이야... 아무리 70,80년대의 촌스러운 멜로 영화를 표방한 영화라고는 하지만 이쯤되면 두손, 두발 다들어버린 셈입니다.
이 영화의 촌스러움은 캐릭터 구축에서도 나타납니다. 영새와 채린의 캐릭터는 두 배우의 매력덕분에 촌스러움이 많이 가려져지만 그 외의 조연 캐릭터들은 요즘 영화답지 못합니다. 특히 무조건적인 악역인 정현수(윤찬)라는 캐릭터는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실 악역은 제 2의 주인공입니다. 악역이 있기에 주인공이 있는 것이고, 악역이 매력적이면 그만큼 주인공의 매력도 부각되는 거죠. 하지만 이 영화의 정현수라는 캐릭터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그가 왜 영새를 괴롭히는지, 그 수많은 쟁쟁한 여성 댄서를 놔두고 이제 겨우 춤을 배운지 3개월밖에 안된 채린을 왜 그렇게 영새에게 빼앗아야하는지 이 영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악역일뿐 성격따위는 전혀 존재 하지 않는 겁니다.
그 외의 다른 조연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의 양념 역할을 하는 영새의 후배 철용(김기수) 커플이 그렇습니다. 요즘 우리 영화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조연 캐릭터의 발전입니다. 오히려 주연 캐릭터보다도 더욱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이 영화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철용이라는 캐릭터는 도대체 왜 이 영화에 그가 존재해야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겨우 그가 해내는 일이라고는 영새와 그의 전 파트너 세영의 뻔한 사연을 채린과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것뿐입니다. 차라리 그따위 설명이 없는 것이 더 쿨할뻔 했는데도 말입니다.
영화의 초반 웃음을 주었던 위장결혼수사팀이 영화의 후반부에 뭔가 해낼줄 알았는데 흐지부지 사라지는 것도 이 영화의 아쉬운 점입니다. 최근 우리 영화중에서 이렇게 조연 캐릭터가 부실한 영화는 아마도 [여고생 시집가기]이후 처음인듯 합니다.
하지만 실망은 금물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온 제 입에는 불만보다는 웃음이 하나가득 남겨져 있었으니까요. 바로 그것이 스타 문근영의 힘입니다. 이성적으로 따지고 본다면 [댄서의 순정]은 [여고생 시집가기]에 필적할만한 실망스러운 영화지만 문근영의 그 귀여운 미소하나만으로도 영화는 만족스러우니 말입니다.
문근영은 처음 등장부터 어색한 연변 사투리를 씁니다. 혹시 더빙한것이 아닌지 의심이될 정도로 솔직히 문근영의 연변 사투리는 어색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엽습니다. 그 어색한 연변 사투리마저도... 문근영의 매력이 어느정도인지 간접적으로 설명되는 부분입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채린이 춤을 통해 점차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입니다. 춤이 너무나도 하고 싶어서 언니대신 한국행을 선택한 당돌한 소녀 채린. 그녀는 영새에게 춤을 배우며 점차 여성으로 성숙해갑니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귀여운 십대 배우로 남을 수 없는 문근영의 현재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변신인듯이 보입니다. 그녀도 언제까지나 귀여운 이미지만으로 남을 수는 없을테니 말입니다. 채린이 점차 멋들어진 춤을 출때 느껴지는 그 희열... 그것은 문근영이었기에 가능했었을 희열이 아니었나 생각되네요.
물론 박건형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왠지 송일국과 이훈의 이미지를 절반씩 닮은 듯한 그는 툭툭 내뱉듯이 던지는 그 한마디에 관객들을 웃게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근영의 귀여움과 더불어 박건형이라는 새로운 배우의 발견은 이 촌스러운 영화가 끝까지 재미있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박영훈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가 [댄서의 순정]을 통해서 잘한 것이라고는 문근영과 박건형을 캐스팅한 것 뿐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댄서의 순정]을 통해 문근영이라는 배우의 인기가 [어린 신부]에 의한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으며, 박건형이라는 꽤 괜찮은 신인 배우를 발견한 것 만으로도 의미있는 영화가 아닐런지 생각되네요. 영화가 배우 놀음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아주 처절하게 느꼈답니다. 박영훈 감독도 다음 영화에선 배우들에게 기댄 영화가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관객에게 만족감을 주는 그런 영화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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