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로저 미첼
주연 : 벤 에플렉, 사무엘 L. 잭슨, 시드니 폴락, 윌리엄 허트
개봉 : 2002년 11월 29일
사람은 살다보면 '내가 과연 올바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때가 있습니다. 뒤도 돌아보지않고 앞만 보고 달리다가 문득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이 걸어온 뒤를 돌아보게 되는 거죠.
[체인징 레인스]의 젊고 유망한 변호사 개빈 베넥(벤 에플렉)이 바로 그러합니다. 개빈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다가 도일 깁슨(사무엘 L. 잭슨)이라는 초라한 중년 흑인과의 접촉 사고로 단 하룻동안의 모든 일이 엉망으로 꼬여 버리고, 그 속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며 '내가 올바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여유를 되찾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체인징 레인스]는 대단한 영화입니다. 백인과 흑인, 젊고 부유한 남자와 늙고 가난한 남자, 힘이 있는 자와 힘이 없는 자의 대결이라는 아주 단순해 보이는 스릴러의 구조를 띄고 있으면서도 관객들에게 잠시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까지 안겨주니...
영화의 시작은 개빈과 도일이라는 두 캐릭터를 번갈아가며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이 두 캐릭터의 상반된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합니다. 멋지고 웅장한 콘서트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설을 하고 있는 개빈의 그 당당한 모습과 초라하고 어두컴컴한 알콜 중독자의 모임에서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털어놓고 있는 도일의 모습... 관객들은 처음부터 개빈의 성공한 인생과 도일의 패배자적인 인생을 서로 번갈아가며 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이유로 법원에 가는 길에 개빈의 실수로 접촉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개빈은 바쁘다는 이유로 사고처리를 정확하게 하지 않고 빗속에서 도일을 남겨둔채 떠나버립니다. '운이 나빴다 생각해요'라는 말만 남기고...
이제 관객들은 개빈과 도일이라는 두 캐릭터의 대결을 본격적으로 보게 됩니다. 개빈은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서류가 도일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에게 그 서류를 달라며 애원하지만 도일은 개빈때문에 아이들의 양육권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그의 애원을 차디차게 거절합니다. 이에 개빈은 도일의 신상정보를 알아내 그의 신용을 정지시키고, 도일은 개빈의 차에 고장을 일으킴으로써 그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이렇듯 작은 사건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큰 충돌로 이어지는 개빈과 도일의 다툼은 점차 관객들을 흥미진진한 하룻동안의 이 이상한 사건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관객이 누구의 편에 서야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도일의 편에 서자니 개빈은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개빈의 편에 서자니 도일의 상황이 딱해 보입니다.
스릴러 영화가 가져야 될 미덕은 관객과 캐릭터간의 감정이입이고, 관객들은 그 감정이입을 통해 영화가 제시한 수수께끼를 주인공과 함께 풀어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엔 감정이입을 할 캐릭터가 두명이나 있으며 그것도 서로 대립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때문에 관객들을 당황하게 합니다. 관객들은 개빈의 편에 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도일의 편에도 서지 못한채 그들의 문제가 원만하게 풀어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러한 것에 있습니다.
개빈의 편에 서지도, 도일의 편에 서지도 못한 관객들은 감정이입을 통한 영화속의 수수께끼를 풀기보다는 개빈과 도일이 처한 각기 다른 상황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알콜 중독으로 인하여 가족들이 떠나버리고 양육권마저 빼앗긴 도일은 판사에게 '아이들에겐 아빠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지만 판사는 이 초라한 흑인의 말을 무시해버립니다. 은행에 대출을 받아 멋진 집을 장만하여 아내의 마음을 돌려세우려 하지만 개빈의 의도되지 않은 방해로 인하여 은행의 대출도 물거품이 되고, 급기야는 아이들의 학교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 연행되기도 합니다.
관객들은 이 힘없는 아버지의 몸부림을 가슴아프게 지켜봐야 하며, 그가 개빈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내뱉는 분노를 이해하게 됩니다.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늙고 돈없는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가 원한 것은 단지 아이들의 떳떳한 아빠가 되는 일인데 아주 당연한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이러한 상황은 개빈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옳은 일을 하겠다는 신념으로 변호사가 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과 돈이라는 깊은 진흙탕속에 빠져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냥 단지 파일을 판사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이 순조로운 일이라는 것이 올바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그는 고민을 하고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낍니다.
그의 장인은 서류를 위조하라며 부추기고, 그의 아내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라며 설득합니다. 다른 선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든 말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개빈을 설득하는 그들의 꾀임속에서 개빈은 잠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한 힘없는 중년 흑인에게서 파일을 받기위해 그의 신용을 바닥내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 연행되게 만들면서 그가 느낀 것은 자신도 결국 아내와 장인과 같은 사악한 인간중의 하나라는 것이었을겁니다.
이제 개빈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 놓으려 합니다.
이제 관객들은 개빈과 도일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그 상황을 이해함으로써 영화 후반 개빈의 결정에 마음속으로 환호를 하게 됩니다. 다른 스릴러 영화에서 주인공이 수수께끼를 풀고 악당을 이겼을때의 쾌감이 이 영화에선 개빈이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 놓을때 느껴지는 겁니다.
자신의 거짓된 삶과 도일의 그 힘겨운 삶을 되돌리는 개빈의 그 시도는 마치 얽힌 실타래를 단숨에 풀듯이 너무 쉽게 보여지기도 하지만 그 만큼 쾌감도 크게 느껴집니다.
만약 개빈과 도일의 접촉 사고가 없었다면 개빈은 자신의 그 거짓된 인생을 끝내 알아채지 못한채 그렇게 겉만 번지르한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이며, 도일은 가족을 되찾는 일이 어쩌면 순조롭게 진행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과적으로 접촉사고가 개빈에게 안겨준 것은 인생의 뒤를 돌아보는 여유였지만 도일에겐 아주 어렵게 길을 돌아가게 만든 힘든 하루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개빈과 도일의 접촉 사고로 인하여 발생된 이 하룻동안의 특별한 시간들은 관객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스릴러를 맛볼 수 있게 만듭니다.
물론 관객과의 두뇌 싸움은 없었지만 관객들에게 캐릭터의 상황에 빠져들게끔 유도함으로써 스릴과 쾌감을 맛보게 만들었던 로저 미첼 감독의 역량은 역시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사무엘 L. 잭슨의 그 카리스마와 벤 에플렉의 그 멋진 연기... 암튼 제겐 올해 본 스릴러 영화중에서 [디 아더스] 이후로 가장 괜찮았던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