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어거스틴 디아즈 야네스
주연 : 빅토리아 아브릴, 필라 바르뎀, 페데리코 루삐
우리나라에서 스페인 영화를 만난다는 것은 그리 흔치않는 기회이다. 그렇기에 스페인 영화는 우리나라 관객에게 매우 낯설고 기이하다.(스페인의 대표적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보라.) 그러나 신인 어거스틴 디아즈 야네스 감독은 데뷔작 [글로리아 두케]를 통해 한 여성의 인생을 스릴러라는 장르에 접목시킴으로써 세계의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주인공 글로리아(빅토리아 아브릴)의 남편은 스페인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투우사였다. 그러나 사고로 그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리고 그녀는 갑자기 다가온 가난과 역경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간다.
관객이 글로리아를 처음 접하게되는 장소는 마약거래 현장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술에 잔뜩 취해 몸을 팔고 있었다. 한 멕스코인 마약거래상은 그녀를 보며 비웃는다. '예전엔 우라나라 여인들이 스페인 놈들 거시기를 빨았지만 이것보라구. 이제 스페인 계집애가 우리 거시기를 빨아대잖아' 그렇다. 관객에게 비친 글로리아는 인간 쓰레기 그 자체이다. 알콜 중독자이며 술값을 벌기위해 몸을 파는 여자. 그녀에게 우연히 기회가 찾아온다. 마약거래업자의 돈세탁 장소가 적힌 노트를 얻은 것이다. 그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돈세탁 장소를 털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어리숙한 그녀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미국에서 킬러 에두아르도(페데리코 루삐)가 도착한다.
야네스 감독은 갈데까지간 한 여성이 다시 역경을 딛고 인생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빠른 사건전개속에 그리고 있다. 그는 스릴러 장르를 택했지만 그것은 단지 재미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 영화를 스릴러라고하기엔 영화는 너무 글로리아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갑자기 불어닥친 역경속에서 한 나약한 여성이 진정으로 강한 여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페미니즘 영화이다.
그러한 나의 추측을 가장 잘 반영시켜주는 캐릭터가 바로 글로리아의 시어머니인 홀리아(필라 바르뎀)이다. 그녀는 방황하는 글로리아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에 진정 올바른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때 식물인간이 된 아들과 함께 자살을 결심한다. 그녀의 희생으로 글로리아는 진정 강한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킬러 에두아르도 역시 스릴러 영화속의 냉혹한 킬러와는 다르다. 살인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왔지만 살인을 할수록 사랑하는 딸의 병환은 깊어만 진다. 그는 딸의 병이 자신의 죄때문이라 생각하고 갈등한다.
이 영화가 스릴러가 아니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글로리아에게 비롯된다. 글로리아는 스릴러 영화속 주인공처럼 뛰어나지도 영리하지도 않다. 그녀가 돈세탁 장소인 모피점을 터는 장면은 이를 증명한다. 그녀는 단지 평범하고 나약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취직을 하기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철자하나 제대로 몰라 매번 떨어지고, 홀리아의 손님 접대용 대구를 사기위해 면접을 보러갔다가 오럴 섹스를 해주고 돈을 받는 장면등은 스페인에서 여자 혼자 일어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그렇기에 비밀노트를 얻은 여인이 등장하고 킬러가 등장하지만 오히려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의 반대편에 서있다.
야네스 감독은 신인으로써의 독창성을 최대한 살려 오락성과 영화 주제를 모두 살려냈으며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빅토리아 아브릴이라는 또 한명의 뛰어난 여배우를 만나게하는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1997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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