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주연 : 말론 브란도, 마리아 슈나이더
72년 제작되어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을 거장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았던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국내에서 23년간의 상영금지에서 해방되어 96년 드디어 개봉되며 관객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는 아탈리아에서도 흥행에 성공했으나 몇달뒤 상영금지당했으며 베르톨루치는 2달간 투옥되었고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5년간 투표권을 잃었다. 결국 88년에야 이 영화에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도대체 그 무엇이 이 영화를 논쟁의 중심에 놓이게 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바로 변태적인 성행위 장면이 문제되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자살한 아내를 둔 중년의 미국 남자 폴(말론 브란도)이 프랑스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명랑한 프랑스 처녀 잔(마리아 슈나이더)를 만나며 시작한다. 이름도 상대방의 그 무엇도 모르는 두 사람은 섹스를 하게 된다. 그 섹스 후 잔은 무엇에 중독된듯 폴의 아프트를 찾아오고 변태적인 섹스를 나누지만 폴은 잔에게 자신의 이름조차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 영화엔 마리아 슈나어더의 성기가 몇차례나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물론 비디오 출시작엔 안개같은 것이 교묘하게 그녀의 성기를 가린다.) 그것이 문제였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가위손을 한번 거치고 나면 간단했을텐데라는 의문이 든다. 또다른 문제 장면은 변태 성행위 장면인데 폴이 잔의 엉덩이에 버터를 바른 후 섹스를 하는 장면과 잔의 손가락을 자신의 항문에 넣는 장면등이 문제의 장면들이다. 물론 72년 당시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장면이었겠지만 지금보니 그렇게 심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20여년이 흐르며 영화의 대담성과 관객의 수준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이 영화의 쟁점이 되었던 에로티즘의 관점에서 벗어나 베르톨루치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주제를 이야기해보자.
폴의 아내는 자살을 했다. 영화엔 그녀가 왜 자살을 했는지 끝내 말해주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내를 잃은후 폴이 갖는 상실감일 것이다. 폴은 젊은 여성 잔과 섹스를 나누지만 자신의 이름이나 과거를 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에비해 잔은 폴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하려고하고 그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한다. 그와의 변태적인 성행위뒤에 언제나 '이젠 끝이야'라고 외치지만 항상 다시 폴을 찾아온다. 잔이 결혼을 앞두고 폴과 이별을 결심했을때 폴은 잔에게 닫아두었던 마음을 열게되고 오히려 이번엔 잔이 폴을 피한다. 그리고 폴은 잔에게 죽임을 당한다.
도대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어느 일간지에는 이 영화가 현대인의 고독과 자본주의 환경속의 인간 소외를 그린 영화라고 평하였다. 도대체 어떠한 부분이 그러한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폴의 행위는 이해가 되지 않으며 잔의 행동 역시 이상하기만 하다. 그녀는 마지막에 폴을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지금까지의 폴과의 관계는 잔의 적극적인 자세때문에 지속되지 않았던가? 그녀는 폴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으면서 비로서 폴이 마음을 열고 사랑을 고백하자 그에게 도망치고 죽이기까지 했다.
20년전 유럽의 어떠한 상황이 베르톨루치 감독에게 하여금 비정상적인 남녀의 비정상적 사랑행위에 관한 영화를 만들게끔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1997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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