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이빗 린치
주연 : 빌 폴만, 패트리샤 아퀘트, 발타자 게티, 로버트 블레이크
데이빗 린치 감독하면 대부분의 영화광들은 컬트 영화를 생각하게 될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데이빗 린치 감독은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컬트 영화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고 컬트팬의 높은 지지를 얻게 되었다.
확실히 그의 영화는 다른 영화에 비해 기괴하고 어둡다. 섹스와 살인 그리고 환상과 강박관념이 뒤덮여있는 그의 영화는 편안하게 앉아서 즐기기엔 부적합하며 마치 악몽과도 같이 관객에게 다가온다.
난 결코 컬트 영화팬은 아니다. 그의 최고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블루 벨벳], [광란의 사랑]은 보았으나 이해하지 못했고, TV시리즈 [트윈픽스]는 보다가 포기하였다. 그의 장편 영화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매번 테잎을 꺼내보지만 마지막 순간에 다시 집어넣고 만다. 다시말해 난 한번도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로스트 하이웨이]는 조금 다르다. 극장판 [트윈픽스]이후 5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데이빗 린치 감독은 나같은 컬트 영화의 문외한들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결심한듯 하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여전히 섹스와 살인, 환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은 덜 낯설게 내게 다가왔다.
그 첫번째 요인은 바로 주연 배우들의 친숙함이다. 지금까지 데이빗 린치 감독은 카일 맥라클란이나 로라 던, 이사벨라 롯셀리니 그리고 니콜라스 케이지(지금은 스타가 되어 있지만 [광란의 사랑]출연 당시에는 컬트 영화에나 맞을듯한 기괴한 분위기를 풍겼었다.) 같은 비주류(최소한 우리 관객에게는.) 배우들을 캐스팅하였다. 그러나 [로스트 하이웨이]는 [인디펜던트 데이]에서 영웅적인 대통령 역활을 수행했던 빌 폴만과 너무나도 아름다운 패트리샤 아퀘트가 등장, 일단 관객을 편안하게 해준다.
두번째 요인은 섹스씬의 증가이다. 영화가 기괴한 분위기에 빠질만하면 패트리샤 아퀘트의 아름다운 누드씬이 등장하여 다시한번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세번째 요인은 스토리의 분할이다. 이 영화는 다행스럽게도 두가지의 스토리가 등장한다. 그 첫번째가 재즈 연주가 프레드(빌 폴만)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르네(패트리샤 아퀘트)의 이야기이다. 무미건조한 결혼 생활중 이상한 비디오가 그들의 집으로 배달되어오고 이내 르네는 시체가 되고 프레드는 는 살인번으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간수는 프레드 대신 자동차 정비공 피트(발타자 게티)가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피트를 풀어준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갑자기 친숙한 갱스터 영화가 된다. 피트는 단골 손님인 갱스터 에디의 정부 엘리스(머리색만 금발로 바꾼 패트리샤 아퀘트가 등장한다)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꾐에 넘어가 도피를 위한 살인을 저지른다.
여기까지 관객은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감옥에서 프레드와 피트가 바뀌었는지 르네와 앨리스는 동일 인물인지 피트가 사라지던 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은 잠시 잊어버린다면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역시 린치 감독은 관객을 편안하게 두지 않았다. 피트는 다시 프레드로 변하고 의문의 검은 옷의 사나이(로버트 블레이크)와 함께 에디를 살해한다. 영화의 첫부분에서 프레드는 인터폰을 통해 '딕 로렌트는 죽었다'라는 소릴 듣게 된다. 여기서 딕 로렌트는 에디를 지칭하는 것인데 마지막에 프레드는 에디를 살해한후 자신의 집 인터폰을 누르고 '딕 로렌트는 죽었다'라고 말한후 경팔에 쫓긴다.
그렇다면 영화 첫부분에 프레드가 들은 의문의 소리는 자신의 목소리란 말인가? 이와 비슷한 사건이 영화속에 또 있다. 르네와 함께 어떤 파티에 간 프레드는 검은 옷을 입은 이상한 남자와 만나게 된다. 그 남자는 프레드에게 '사실 난 지금 당신의 집에 있소'라며 프레드에게 집에 전화해보라고 시킨다. 의문에 쌓인 프레드는 집에 전화를 해보고 깜짝 놀란다. 바로 자신의 앞에 서있는 검은 옷의 남자가 전화를 받고는 '내가 당신 집에 있다고 했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듯 [로스트 하이웨이]는 시간 개념을 무너뜨린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다. 영화의 끝은 영화의 처음과 맞닿아 있다.
피트는 프레드가 발산하지 못한 욕정에 대한 또다른 피조물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프레드의 자아분열을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여기까지 이해하는데에도 데이빗 린치 감독의 인터뷰 기사가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상황에 대해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검은 옷의 남자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프레드의 또다른 자아인 피트가 과거를 가질 수 있으며, 앨리스는 존재는 환상인가? 만약 환상이 아니고 앨리스가 르네라면 르네는 살해된 것인가? 모든 의문은 풀리지 않고 영화는 끝이 난다.
하지만 [로스트 하이웨이]가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이기에 가능한 이 질문들은 나에게 묘한 여운을 남겼으며 난 최초로 컬트 영화에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난 이제 컬트 영화팬으로서의 첫 진입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1997년 8월 13일
IP Address : 218.49.8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