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호우시절] - 좋은 인연은 만날 때를 알고 있어 사랑을 연결케 한다.

쭈니-1 2009. 12. 8. 23:51

 

 


감독 : 허진호
주연 : 정우성, 고원원
개봉 : 2009년 10월 8일
관람 : 2009년 10월 20일
등급 : 15세 이상

영화를 보기 위해 휴가를 내다.

10월 들어서 회사 일도 바빴고, 2009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플레이오프 패배로 잠시 동안 무기력증에 빠진 관계로 거의 한달 동안이나 극장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극장가의 가을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보지 못한 기대 작들이 너무 많더군요. 이럴 때를 대비한 제 비장의 무기는 바로 하루 간의 연차 휴가입니다.
당당하게 연차 휴가를 내고 구피에겐 오늘은 하루 종일 영화만 볼 것이니 건드리지 말라고 선전포고를 한 저는 이 황금 같은 하루의 라인업을 짜놓았습니다. 먼저 조조할인으로 볼 영화로는 [호우시절]이 낙점 되었습니다. [호우시절]을 가장 먼저 보기로 결정한 이유는 아무래도 [호우시절]이 닭살 커플들을 위한 멜로영화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영화를 봐야하는 저로써는 닭살 커플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고 그렇다면 가장 관객이 없는 아침 시간대에 영화를 본다면 닭살 커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치밀한 계산을 한 것입니다.
두 번째 영화로는 [써로게이트]가 낙점되었습니다. [호우시절]을 본 이 후 점심식사를 해야 하기에 상영 시작 시간에 초점을 맞추어 내린 결정이지만 점심식사 후에 아무래도 음식물 소화 차원에서 시원한 액션영화가 제격이라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영화는 [나는 비와 함께 간다]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영화 자체가 지루하고 잔인한 장면이 많다기에 아예 마지막 영화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아침부터 잔인한 영화를 보기는 싫고, 그렇다고 점심식사 후에 소화 안 되게 볼 수도 없으니 차라리 낮 시간대로 관람시간을 맞춘 것입니다. 이렇게 라인업을 정하고 예정된 순서대로 영화를 관람하였습니다.  


 

조조할인으로 영화를 본다고 해서 닭살 커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허진호의 멜로는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호우시절]은 우연히 중국 출장 중에 옛 첫 사랑의 여인을 만난 남자의 가슴 떨리는 며칠간의 행적을 담은 영화입니다.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완벽한 멜로영화이며, 영화의 포스터는 물론이고, 스틸, 예고편 등 이 영화의 정보를 담은 모든 것이 '[호우시절]은 단순한 멜로영화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허진호 감독의 멜로영화라면 [8월의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극장에서 직접 챙겨본 저로써는 [호우시절]이 그저 단순한 멜로영화는 아닐 것이라 의심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허진호 감독은 [봄날은 간다]에서 변해버린 사랑의 냉혹함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외출]에서는 사랑의 순수성을 부정하며 불륜도 사랑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행복]에서는 사랑과 그에 동반된 행복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너무나도 아프게 표현했었습니다. 그랬던 허진호 감독이 이제 와서 순수한 사랑을 이야기 할 것이라 전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저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호우시절]은 사랑의 이중성을 그렸던 그의 이전 영화들과는 달리 그의 데뷔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와 옴니버스영화인 [오감도]의 '나, 여기 있어요.'를 연상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중국에 출장 간 동하(정우성)와 중국인 관광 가이드 메이(고원원)는 정말 순수하게 사랑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변해버린 사랑의 냉혹함도, 사랑의 순수성을 부정하는 일도, 거짓된 사랑과 행복의 이중성도 없었습니다.
허진호 감독의 이전 영화들을 보며 까발려진 사랑의 아픔을 나름대로 즐기며 봤던 저로써는 [호우시절]은 그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 약간은 실망했지만 그래도 허진호 감독은 멜로영화 전문 감독답게 아련한 추억을 제게 선사했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사랑을 의심치 말라.


좋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함이 중요하다.

[호우시절]의 동하와 메이의 사랑에서 중요한 점은 그들의 인연이 처음이 아닌 두 번째라는 점입니다. 첫 번째 만남인 미국 유학중에 동하는 메이를 남몰래 짝사랑했고, 메이 역시 동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인연은 사랑으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이 영화는 좋은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동하와 메이의 두 번째 만남은 아주 우연히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 우연한 만남은 그들의 사랑에 불을 지핍니다. 마치 옛 친구를 만나듯이 시작한 첫 데이트를 시작으로 둘의 감정은 점점 사랑으로 변해가고 결국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역시 그들의 인연은 아직 좋은 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뒤돌아보면 제게도 참 많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인연들은 저와의 좋은 때가 아니었기에 그냥 스치듯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구피와는 좋은 때에 만난 인연이었기에 급속도로 사랑으로 번지고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때가 아닐 런지...
동하와 메이의 중국에서의 두 번째 만남이 비록 좋은 때는 아니었지만 동하는 그 인연을 소중히 하고 좋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함을 가졌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동하와 메이의 이별로 끝을 맺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은 둘의 사랑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해피엔딩입니다. 좋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함. 허진호 감독은 맺어질 듯 맺어질 듯하다가 결국 맺어지지 않는 동하와 메이의 사랑을 그리면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함을 살짝 훈수 둡니다. 과연 멜로영화의 거장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좋은 인연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


여전히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호우시절]의 또 다른 장점은 영상미에 있습니다. 허진호 감독이 사랑이라는 달콤한 이름 뒤에 숨겨진 어두운 내면을 그리는 데에 탁월한 실력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탁월한 영상미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이전 영화들이 아름다운 영상미와는 달리 씁쓸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면 [호우시절]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아름다운 영상과 완벽하게 어우러져 선보입니다.
시인 두보의 고향이며, 우리나라에선 매운 사천 요리로 유명한 중국의 사천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마치 '중국의 사천으로 놀러오세요.'라고 광고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평소라면 그런 관광 유도 영화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저게 관광지 홍보 동영상이야? 영화야?'라며 투덜댔을 테지만 [호우시절]에서는 그런 삐딱한 마음마저도 부드럽게 녹여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미와 풍경이 단지 아름다움을 위한 부수적인 것이 아닌 영화의 주제와도 정확하게 맞물린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제목인 '호우시절'은 두보의 시  구절의 한 대목이며, 사천이라는 곳은 두보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1년 전 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 아픔을 간직한 곳입니다. 그러한 사천의 역사로 인하여 동하와 메이의 인연은 좋은 때가 되기도 하지만 아직은 이른 안 좋은 때가 되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참 아름다운 곳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것은 메이라는 캐릭터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집니다. 허진호 감독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에만 멈추지 않고 영화의 배경과 캐릭터와도 배치시키며 아름다움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셈입니다.
비록 [호우시절]은 허진호 감독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해서 평범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과 스토리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허진호 감독은 멜로영화의 대가입니다. 그것 하나만은 확실하네요.


 

그들의 이별은 좋은 때를 기다리는 현명함이다.

허진호 감독님, 나중에 시간되시면 소주한잔 하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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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
아니, 놈놈놈의 정우성 님께서 멜로 영화를!! 이건 좀 기대가 되는군요 ㄷㄷ 멜로 영화는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재밌을라나.  2009/10/22   
쭈니 재미잇다기 보다는 잔잔합니다.
그리고 정우성이 그 번듯한 외모라면 어쩌면 멜로영화가 더 잘 어울릴지도... ^^
 2009/10/23   
ssook
8월의 크리스마스에선 남자가 죽어버렸고, 봄날은 간다에서는 사랑이 변해버렸고, 행복은 사랑해도 결코 행복하지 않았는데........이 영화만은 행복하게 끝난 것 같아서 흐믓합니다......... 그리고 정우성의 기럭지......제가 으뜸으로 치는 소모씨 못지 않던데요....그 이기적인 기럭지란!! ㅋㅋ  2009/10/30   
쭈니 이기적인 기럭지에 심히 공감...
더욱 열받는 것은 그가 저와 동갑이고, 저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었다는 사실(졸업은 안했지만...)
누군 이렇게 이기적인 기럭지를 자랑하는데... 전 왜 이런 걸까요??? ^^;
 2009/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