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써로게이트] - 흥미로운 문제제기만으로도 혹평하기에는 아까운 영화.

쭈니-1 2009. 12. 8. 23:52

 

 


감독 : 조나단 모스토우
주연 : 브루스 윌리스, 라다 미첼
개봉 : 2009년 10월 1일
관람 : 2009년 10월 20일
등급 : 15세 이상

브루스 윌리스의 카리스마는 아직 내겐 유효하다.

제가 [다이하드]를 본 것은 아마도 중학교 3학년 때였을 것입니다.(아니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지...) 당시 [다이하드]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다이하드] 이전까지는 액션 히어로라면 당연히 [람보], [코만도]처럼 근육질의 초인적인 영웅이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다이하드]의 맥클레인 형사는 단번에 그런 편견을 무너뜨렸습니다. 죽도록 고생하며 가까스로 악당들을 처치하는 그의 활약상을 보며 저는 짜릿함을 느꼈습니다.
[다이하드] 이후 브루스 윌리스는 제겐 영원한 액션 히어로였습니다. 물론 [다이하드]를 넘어서는 히트작이 아직 없으며, 그나마 2000년대 들어서는 그 명성에 걸 맞는 히트작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써로게이트]도 8천만 달러라는 거대한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미국 내 흥행수입은 고작 3천7백만 달러에 불과했으며 전 세계 흥행수입을 전부 합해도 아직 6천만 달러를 넘지 못하는 흥행부진을 겪고 있습니다. 브루스 윌리스로써는 굴욕적인 흥행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나라에서 개봉한지 무려 3주 가까이 지나버린 [써로게이트]를 선택하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비록 이 영화가 흥행실패작이라고는 하지만 전 이미 브루스 윌리스의 흥행실패작인 [호스티지], [식스틴 블럭]을 재미있게 본 전력이 있으며(공교롭게도 [써로게이트], [호스티스], [식스틴 블럭]의 미국 내 흥행수입은 전부 3천만 달러 대에 머물렀습니다.), 남들이 재미없다고 해도 혼자 재미있었던 영화가 꽤 있었기에 [써로게이트] 역시 기대를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 브루스 윌리스의 영화라면 눈 감고 봐도 재미있더라.


[블루문 특급]을 기억한다면 영화의 초반 흥미로웠을 것이다.

혹시 [블루문 특급]이라는 외화 시리즈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브루스 윌리스와 시빌 셰퍼드가 주연을 맡았던 탐정물로써, 미국에선 ABC방송에서 1985년에서부터 1989년까지 방영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방영했던 인기 외화 시리즈였습니다. 브루스 윌리스에겐 [다이하드] 이전에 이미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이었던 셈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유머감각이 있는 매력적인 바람둥이 탐정 데이비드 에디슨을 연기했는데 그러한 데이비드 에디슨이라는 캐릭터는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 형사와 교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갑자기 20년 전 외화 시리즈인 [블루문 특급]을 언급하는 이유는 영화의 초반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한 그리어라는 캐릭터에서 [블루문 특급]시절 젊은 브루스 윌리스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브루스 윌리스도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거의 빡빡 대머리 중년 아저씨가 되어 버렸지만 [써로게이트]에서는 머리숱이 풍성한 미끈한 브루스 윌리스가 활약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리어는 데이비드 에디슨과 존 맥클레인처럼 유머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젊은 그리어는 진짜 그리어의 대행자로써 사이보그에 불과했지만 브루스 윌리스의 팬인 제 입장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아마도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 역시 그러한 효과를 노리지 않았을까요? 저처럼 [다이하드]에 매료된 채 20년째 브루스 윌리스의 팬임을 자처하고 있는 올드팬을 위해서 아주 특별한 팬 서비스였던 셈입니다. [써로게이트]는 그러한 팬 서비스 덕분에 아주 좋은 인상을 제게 심어주며 시작하였습니다.  


 

나도 이렇게 젊었던 시절이 있었단다.


그것은 진정한 유토피아인가?

[써로게이트]는 가까운 미래가 배경입니다. 인간들은 안전한 방 안에 처박혀 바깥 활동은 '써로게이트'라는 대행 로봇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써로게이트'와 인간의 뇌를 연결시켜 '써로게이트'의 활동을 간접 체험하는 것으로써 모든 사회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 과학자가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서 발명한 시스템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일반인들에게 사용됨으로써 모든 인간들은 '써로게이트'를 통해서만 움직이는 사이보그에 의한 사회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영화의 초반 그러한 미래의 모습은 유토피아에 가깝습니다. 밖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도 그냥 사고로 인하여 망가진 '써로게이트'만 바꾸면 다음날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고, 외모적인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외모의 '써로게이트'를 사용함으로써 자신감을 얻고, 운동신경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도 '써로게이트'의 힘을 빌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활동을 벌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토피아의 모습과 가까웠던 겉모습과는 달리 실상은 디스토피아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은 안전한 방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써로게이트'를 통해 서로 만나고 대화하지만 그것은 진짜 인간관계가 아닌 자신을 감춘 채 벌어지는 가짜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결국 '써로게이트'를 사용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서로에게 단절되어 버립니다.
그것은 과연 인간의 삶이 육체적인 것이 우선인가? 아니면 정신적인 것이 우선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맞닿아 있는데 이미 [매트릭스]가 그러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 적이 있기에 새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써로게이트]의 질문 역시 제겐 꽤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젊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써로게이트'를 이용하지 않을까?


흥미로운 문제지기, 뻔한 전개, 서두른 결말.

[써로게이트]의 문제제기는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비록 [매트릭스]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미래, 정말 저러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니 저라도 '써로게이트'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그리어의 고뇌를 보면 그러한 사회가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과연 '써로게이트'를 통한 만남을 진정한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써로게이트]는 그러한 흥미로운 문제제기와 함께 '써로게이트'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써로게이트' 사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무력 충돌과 '써로게이트'를 통한 의문의 살인사건을 통해 꽤 흥미진진한 SF스릴러로 만들어 졌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의 스릴러가 그다지 탄탄하게 구성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범인은 쉽게 노출이 되고, 그 범인의 동기는 물론 앞으로의 전개 상황도 쉽게 유추가 가능합니다. 게다가 뭐가 그리도 급했는지 결말을 아주 급하게 내려버립니다. 1시간 40분이라는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써로게이트'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SF스릴러를 연결짓기에는 턱 없이 짧은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써로게이트'라는 흥미로운 소재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브루스 윌리스의 영화라고 할지라도 제게 욕 꽤나 먹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릴러적인 요소들은 허술했고, 결말은 실망스러웠다고 해도 '만약 저런 미래가 정말로 온다면 난 과연?'이라는 생각을 제게 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낙제점을 주기엔 조금은 아까운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겨우 이거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문제였단 말이냐?

미안하다. 내가 너무 엉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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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
저라면 그냥 당당히 거리를 활보할듯..근데 생각해보면 애초에 저런 제도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을듯해요 ㄷㄷ  2009/10/31   
쭈니 요즘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라면 오히려 받아들이기 쉬울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휴대폰을 유행에 따라 수시로 바꾸는 시대에서 자신의 써로게이트를 수시로 바꾸는 시대... 기업은 엄청난 돈을 벌게 될테고, 기업의 로비로 정치계도 동참할 것입니다. ^^
 2009/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