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디스트릭트 9] - 3년 후에도 이 재미를 지켜낼 수 있기를...

쭈니-1 2009. 12. 8. 23:50

 

 


감독 : 네일 블룸캠프
주연 : 샬토 코플리
개봉 : 2009년 10월 15일
관람 : 2009년 10월 18일
등급 : 18세 이상

무기력증에는 정신이 바짝 드는 강한 영화가 필요하다.

며칠 전에 2009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가 끝이 났습니다. 지난 2년 동안 한국시리즈에서 맞대결을 벌였던 신흥 라이벌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즈가 이번엔 플레이오프에서 만나 KIA 타이거즈와 한국 시리즈를 벌이기 위해서 진검 승부를 벌였습니다. 82년 원년 OB 베어스부터 시작하여 무려 28년 간 베어스의 골수팬인 저는 열렬히 두산 베어스를 응원했습니다.
사실 올해 두산 베어스는 선발 투수진의 붕괴로 인하여 지난 2년과 비교해서 전력이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렇기에 4강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상당히 잘했다고 생각했기에 우승에 대한 미련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필 상대는 지난 2년간 두산 베어스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안겨줬던 SK 와이번즈였던겁니다. SK 와이번즈를 이길 전력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이 불굴의 정신으로 SK 와이번즈에게 지난 2년간의 복수를 해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제 바람이 통했는지 5전 3선승제에서 두산이 먼저 2승을 챙깁니다. 1승만 더 하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상황. 하지만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먼저 챙기고도 내리 4연패를 당해서 우승을 넘겨준 적이 있었기에 전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우려대로 두산은 내리 3연패를 당하고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SK 와이번즈에게 3년 연속 당한 것입니다.
두산 베어스의 패배가 확정되던 날 전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올해 두산은 전력이 상당히 약해진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패배를 당하는 순간 속이 정말 많이 쓰리더군요. 덕분에 저는 때 아닌 무기력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집에 오면 밥맛도 없고, 자꾸 맥주만 마시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증상의 특효약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영화입니다. 특히 강렬한 영화는 무기력증을 단 한 방에 치료해주죠. 제가 거의 한 달 만에 극장에 볼 영화로 [디스트릭트 9]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드디어 디스트릭트 9에 도착했다. 무기력증, 넌 이제 끝장이다.


시작은 [클로버필드]같았다.

일요일 저녁, 잔뜩 기대한 채로 [디스트릭트 9]를 봤습니다. 마치 TV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상하게 하는 인터뷰 화면들로 시작하는 이 영화를 보며 저는 문득 [클로버필드]가 생각났습니다. 정체불명의 거대 괴물이 맨해튼 시내를 무차별 공격한다는 다분히 SF적인 상상력을 지닌 [클로버필드]는 [디스트릭트 9]과 상당히 많이 닮은 영화입니다. 일단 저예산 SF영화라는 점이 그렇고 스타 감독이 제작을, 신인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도 비슷하며 전형적인 SF적인 소재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전형적이지 않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클로버필드]는 맨해튼 시내에 거대 괴물이 나타난다는 내용을 캠코더 화면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디스트릭트 9]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상공에 외계의 거대 비행체가 나타난다는 내용을 초반엔 인터뷰 화면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캠코더 화면과 인터뷰 화면은 영화가 마치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SF영화라는 것이 일단 현재에서는 허구의 사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영화를 보는 관객의 긴장감은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는 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클로버필드]와 [디스트릭트 9]은 그러한 SF영화의 단점을 캠코더 화면과 인터뷰 화면으로 해결한 셈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효과는 다른 한 편으로는 단점도 있습니다. [클로버필드]의 캠코더 화면은 영화를 보는 내내 어지러웠고, 너무 과도한 현실감 부여를 통해 SF영화 특유의 장르적 재미를 기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디스트릭트 9]이 [클로버필드]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지 저는 초조해하며 영화를 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디스트릭트 9]은 [클로버필드]와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더군요. 초반은 현실감을 부각시킨 다큐멘터리 화면이었지만 중반이 되면 될수록 영화의 규모를 키우며 SF영화 특유의 스펙터클한 재미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스트릭트 9]의 제작을 맡은 피터 잭슨은 [클로버필드]의 제작을 맡은 J.J. 에이브럼스보다는 한 수 위입니다.


 

우리 잠시 인터뷰 좀 할까? 아! 걱정은 말라고 금방 끝날 테니...


전형적인 듯 보이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디스트릭트 9]은 초반 인터뷰 화면이 끝나는 중반부터는 꽤 전형적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디스트릭트 9]의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의 숨겨진 음모와 그로인하여 희생당하는 한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는 결코 새롭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외계 생명체의 무기를 향한 정부와 외계인 관리국 MNU의 음모는 '저럴 줄 알았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오게 만들고, MNU의 직원이었지만 이제는 MNU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비커스(샬토 코플리)는 비록 나약해 보이기는 하지만 액션이나 SF장르 영화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전형적으로 보였던 [디스트릭트 9]은 후반이 되면 될수록 점점 과격하게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몸이 점점 외계 생명체로 변해가자 그것을 되돌리고 다시 가족의 폼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비커스는 용기를 냅니다. 비커스의 용기는 SF액션영화라고 하기엔 조금 느슨했던 이 영화의 분위기를 일순간에 180도로 바꾸고 시원시원하게 내달립니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영화의 후반부는 잠시도 한 눈을 팔 시간적 여유를 관객에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저예산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스펙터클한 재미마저 갖추며 블록버스터의 재미마저도 느껴지더군요. 영화를 보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와!'라는 감탄사가 전부였습니다.
이렇듯 [디스트릭트 9]이 전형적인 듯 보이지만 결코 전형적이지 않으면서 색다른 재미를 관객에게 부여할 수 있는 것은 고정관념에 대한 탈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부터 이런 장르의 영화는 결말이 정해져 있고 그 정해진 결말을 향해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그러니 모든 영화들이 전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디스트릭트 9]의 결말은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영화 자체가 전형적이지 않게 흘러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비커스는 비록 위험한 외계 생명체로부터 지구를 구하거나 MNU의 음모를 밝혀낸 영웅은 아니지만 자신을 희생해서 [디스트릭트 9]의 재미만큼은 지켜낸 셈입니다.


 

나, 비커스는 비록 영웅은 아니지만 [디스트릭트 9]의 재미만큼은 지켜내겠다.


3년 후에도 이 재미를 지켜낼 수 있기를...

[디스트릭트 9]은 단순한 SF영화로써의 재미뿐만 아니라 꽤 진지한 생각할 꺼리를 제게 제시하였습니다. 우선 외계 생명체를 대하는 인간들의 인식은 아직도 지구상에 만연하고 있는 인종차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가 제도적으로 인종차별을 인정했던 마지막 나라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무대로 하였다는 점에서 그러한 추측은 상당히 신빙성을 갖습니다.
그리고 '만약 지구에 외계 생명체가 온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E.T.]와 같은 순진한 동심과 [에일리언]과 같은 무조건적인 공포심, 그리고 [인디펜던트 데이]와 같은 적개심에서 벗어나 좀 더 현실적인 생각할 꺼리를 제시합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와 다른, 그리고 우리보다 우월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생명체에 대해서 얼마나 이성적인 대처를 할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3년 후를 기약하며 아쉬운 막을 내렸습니다. 과연 3년 후 비커스와의 약속을 외계 생명체는 지킬까요? 만약 지킨다면 [디스트릭트 9]의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제가 추측하건데 만약 속편이 나온다면 제목은 [디스트릭트 10]이 되지 않을 런지...) 과연 3년 후의 이야기에서도 [디스트릭트 9]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과 전형적이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재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만약 그러한 [디스트릭트 9]의 장점을 포기하고 전형적인 재미에 함몰되어 버린다면 아마도 이 영화의 속 편은 [인디펜던트 데이]와 비슷한 흔한 SF영화가 될 것이며, 그러지 않고 끝까지 지킨다면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스타일의 SF시리즈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이미 미국에서만 흥행성적 1억1천만 달러를 넘어서며 깜짝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디스트릭트 9]. 이 영화의 이 놀라운 재미와 성과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3년 후에 다시 올 테니 그때 보자.

부디 저 거대한 외계 비행체가 [인디펜던트 데이]꼴 나지는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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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가끔은 .. 예상치도 못한 영화가 .. 이렇게 대박재미를 안겨주죠 ㅠㅠ

기대하고 보러간 영화는 늘 ........................................
 2009/10/21   
이빨요정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가볍게 즐기러 간 영화가 이정도의 충격을 주다니........

위에 말씀하신데로 전형적이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영화인것같습니다.
기본 스토리는 헐리우드에서 많이 보던데로 거대 기업으로 부터 쫓기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풀어나가는 방식도 비슷하지만 느낌이 좀 달랐습니다.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B급 감성이 느껴졌지만 마냥 쌈마이 스럽지 않고 좀 고급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영화가 자본은 헐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졌지만 제작진들이 비헐리우드 사람들이라서 좀 달랐습니다.

"클로버 필드"와 비교하자면 연출자의 힘도 있겠지만 역시 제작자의 힘이 확실히 중요한것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지 않는 "J.J. 에이브럼스" 는 이야기의 강렬함 보다는 너무 기교로만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연출작인 "미션 임파서블3" "스타트렉" 에서도 그랬고 제작영화인 "클로버 필드" 에서도 그런 성향이 드러났었죠.
그럭저럭 괜찮게 봤던 영화지만 그런 스타일은 정말 별로 않좋아합니다.
보고 나면 남는게 없죠....

미션3편은 그냥 볼만했는데 "스타트렉"은 보고 나서 분노했습니다.
"스타트렉"본래의 매력을 전혀 느낄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새로움도 없었거든요.
그냥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만한거, 보고싶어하는거 그냥 그대로 만든느낌이 었습니다.
마치 하이틴 청소년물을 SF식으로 만든거같았죠.

피터잭슨이 약간 반골기질이 있고 초기에 잔혹한 영화들을 만들어서 그런지 그런 성향이 이 영화에도 드러나더군요.
물론 연출자의 힘도 컸습니다.
원래 게임인 "헤일로" 를 영화로 만들려다가 제작비문제때문에 포기하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속에서도 총이나 로봇을 보면 그런 흔적들이 보이더군요.
신인인데도 정말 훌룡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군요.

액션도 화끈했습니다.
X파일처럼 미스테리하게 전개해 나가면서 머리로 승부하는 영화인줄알았는데
간만에 과격하면서 스펙타클한 액션이 마구 쏟아지니 흥미진진했습니다.

역시 후반부의 로봇전투씬이 압권이었는데 긴장감이나
워낙에 살벌하고 애처로운 설정이어서 몰입이 않될수가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원래 이런식의 과격한 폭력장면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기힘든 것인데 마구 쏟아져 나오더군요.
요즘 이런식의 장면들은 주로 B급영화에서만 나오죠.
아니면 "쿠엔틴 타란티노"나 "로베르트 로드리게즈" 정도?
"디스트릭트9"은 저예산 영화지만 일단 B급영화같지가 않았고
영화를 진지한 드라마로 이끌어나갔기에 과격한 장면들이 난무할줄 몰랐기때문에 약간당황했었습니다.

현실에서의 폭력은 좋아하지 않지만 어차피 오락영화이고 잔혹한 표현들이 영화의 주제의식과 현실감, 긴장감을 표현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때문에 무리없이 볼수있었습니다.

마지막 엔딩은 헐리우드에서라면 배드엔딩이지만 마치 해피엔딩처럼 끝나서 좀 신선했습니다.
분위기가 어둡지 않고 밝으면서도 여운을 남기는것 같더군요.
보통은 주인공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데 이것은...............



결론적으로 HOT! 한 영화였습니다.

 2009/10/21   
쭈니 역시 hot한 영화이니 댓글도 동시에 2개나 달리는 군요. ^^
Park님 처럼 저도 예기치못한 재미를 안기는 영화에 더 큰 재미를 느낀답니다. 아무래도 기대를 했던 영화는 기대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빨요정님은 이번에도 기나긴 의견을 남기셨군요. 아주 짧은 영화평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만큰 짧지만 모든 것을 담은 댓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9/10/21   
우드
이것도 18세 이용가 저것도 18세 이용가. 난 뭘 보지?  2009/10/22   
쭈니 그러게요.
이 영화의 경우는 아마도 잔인한 장면들이 조금 잇어서 18금인가 봅니다.
 2009/10/23   
404page
결국 저는 늦은 한밤중에 역시나 먹지 말아야될 감자칩과 맥주를 마셔가면서.
이걸 봤습니다.
잠시 영화두꺼두고..먹으면서 보기 민망한것들을 참아가며..쩝...
에이...맥주맛 떨어졌다. ㅡ.ㅡ;;;
솔직히 재미는 무지하게 있었습니다. 다만 먹을거 앞에서 보기는 그랬어요.
3년뒤라는 기대감도 마음에 남겨두는 여운도 괜찮았구요.ㅎ
후속작이 기다려집니다. 과연 나올까요?
 2009/11/11   
쭈니 먹을거 앞에두고 보기엔 좀 그런 영화죠. ^^
이 영화의 속편은 100% 나올겁니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라면 모를까... 이렇게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안나올 이유가 없겠죠.
문제는 속편은 괜히 [인디펜던트 데이]와 같은 SF블록버스터로 만들어질까봐 그것이 겁날 따름입니다.
 2009/11/13   
소라빵
아....처음 영화시작부분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작할때 많은 리포트들로 시작하니.. 마치 진짜인듯 느껴졌어요..
영화 보는 내내 감탄사만 내뱉었네요... 진짜 대박영화인듯..
근데 이 영화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더군요..
영화 중간중간 설명안된게 너무 많았어요.....
특히 건물침투 부분에 대한 설명은 아예없고 그냥 장면장면만 넘어가는데...
액션은 좋았지만... 아쉽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에 그렇게 글로 장식하는것보다 외계인의 이주장면과..
주인공의 관한것들이 조금 더 나왔으면 했던.......
그래도 끝이 참 좋긴 하더군요....ㅎㅎ

이제 후속작만 기다려봅니다 ㅎㅎㅎㅎㅎ
 2009/11/22   
쭈니 소라빵님도 좋아할줄 알았습니다. ^^
저예산 영화로 만든 영화이면서도 참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디 속편도 1편의 정신을 이어받았으면 하는 마음만이 간절합니다. ^^
 2009/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