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9 : 나인] - 애들은 가라.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왔다.

쭈니-1 2009. 12. 8. 23:49

 

 


감독 : 쉐인 액커
더빙 : 일라이자 우드, 제니퍼 코넬리, 존 C. 라일리, 크리스토퍼 플러머, 마틴 랜도
개봉 : 2009년 9월 9일
관람 : 2009년 9월 16일
등급 : 12세 이상

비수기에 개봉하는 기대 작을 놓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대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그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맞짱을 뜨며, 혹은 틈새시장을 노리며 개봉하는 한국영화들 속에서 여름 극장가는 언제나 행복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기나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가을 극장가는 어느새 썰렁해집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인 영화광들에겐 괴로운 극장가 비수기의 시기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극장가의 비수기가 왔습니다. 대형 멀티플렉스에 가 봐도 여름방학시즌 동안에 흥행 성공했던 영화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새로 개봉하는 영화들도 기대 작이라고 하기엔 모자란 영화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운 좋게 시간이 나서 극장에 가도 막상 보고 싶은 영화가 없으니 시간대 맞는 영화로 아무 영화나 골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거의 대부분 영화가 재미없어서 하품만 연신 하게 되지요.
이렇게 암울한 극장가 비수기의 시기에 보고 싶은 영화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실제로 올해 9월 개봉한 영화들과 개봉 예정작들 중에서 추석시즌을 코앞에 둔 9월 마지막 주에 개봉작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제외하고는 제게 기대 작이라고 할만한 영화는 딱 한 편 밖에 없습니다. 바로 팀 버튼 감독이 제작을 맡은 애니메이션 [9 : 나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9 : 나인]을 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수기에 개봉한 보기 드문 기대 작이었기에 놓치기 싫었습니다. 비수기이긴 하지만 극장가엔 매주 꼬박꼬박 7~8편의 영화들이 개봉했다가 사라지기에 [9 : 나인] 역시 개봉 첫 주를 놓치면 보기 힘든 상황... 전 또 다시 개봉 첫 주의 마지막 날인 수요일 피곤함을 무릅쓰고 부랴부랴 극장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우쒸~ 요즘 기대되는 영화 한 편 보기 왜 이리 힘드냐?


팀 버튼, 티무어 베크맘베토브, 그리고 쉐인 액커.

정말 오랫동안 저는 1993년에 개봉한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팀 버튼 감독의 애니메이션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하긴 국내 개봉명이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니 관심 있게 이 영화의 감독 이름을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무심결에 팀 버튼 감독의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나중에 감독이 팀 버튼이 아닌 헨리 셀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배신감을 느꼈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을 잘 못 알고 있었다고 해서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재미없게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제게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었고, [유령신부]로 팀 버튼 감독은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감독을 착각함으로써 느낀 배신감을 12년 만에 해소시켜 줬으며, 헨리 셀릭 감독은 [코렐라인 : 비밀의 문]을 통해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단지 팀 버튼 덕분이 아님을 몸소 증명해 보여줬었습니다.
[9 : 나인]에서 문득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기억나는 것은 이번에도 감독인 쉐인 액커보다는 제작을 맡은 팀 버튼의 이름이 홍보에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9 : 나인]의 영화 정보를 자세히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얼떨결에 '감독이 팀 버튼 아냐?'라고 질문할 만 합니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9 : 나인]은 [크리스마스의 악몽]만큼이나 감독의 이름을 착각하더라도 그 영화적 재미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는 영화입니다.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팬을 다수 보유중인 팀 버튼과 러시아에서 [나이트 워치]의 성공이후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원티드]를 감독함으로써 단숨에 흥행감독으로 떠오른 티무어 베크맘베토브리난 쟁쟁한 이름들이 국내 포스터엔 감독인 쉐인 액커의 이름보다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9 : 나인]을 보고나니 언젠가는 쉐인 액커의 이름만으로도 영화를 기대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너무 실망 하지마. 다음 영화엔 네 이름이 포스터에 큼지막하게 자리 잡을 테니까.


또 다시 기계와의 전쟁. 하지만 이번엔 인간이 아닌 봉제 인형이다.

사실 [9 : 나인]의 스토리 라인은 단순하다 못해 식상해 보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들이 반란을 일으켜 인간과 전쟁을 벌인다는 이야기는 굳이 [터미네이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SF영화에서는 너무 흔한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9 : 나인]에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계에 맞서 싸우는 것이 인간이 아닌 봉제 인형이라는 점입니다.
봉제 인형이 기계에 맞서 싸운다는 설정이 특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멸종이라는 메시지가 그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SF영화들은 그 동안 수도 없이 인류의 위기를 그려왔었습니다. 기계가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혜성이 충돌하기도 하고, 외계 생명체가 침략을 하는 등 온갖 역경과 고난이 미래의 인간들을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SF 영화들이 가지고 있던 단 한가지의 주제는 바로 희망이었습니다. 우리 인류는 이 모든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라는 희망이 지금까지의 SF영화엔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9 : 나인]은 그러한 희망 자체를 처음부터 부숴버린 채 시작합니다. 인간을 말살시키는 독가스로 인하여 인류 전체가 목숨을 잃어버린 그 암울한 지구에서 과연 봉제 인형 따위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설사 기계를 무찌른다고 해도 인류가 멸망한 상황에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냐?’는 허무주의가 이 영화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희망을 짓밟으면서까지 굳이 봉제 인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보기엔 '아무리 미약한 존재라도 미래를 바꿀 수 있다.'라는 메시지와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라는 우리들의 방자함에 대한 통렬한 공격이 아닐까요?


 

봉제 인형의 힘을 보여주마.


아무리 미약한 존재라도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아무리 미약한 존재라도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2001년 12월 제가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를 본 후 쓴 영화 이야기의 제목입니다. 아직까지도 제 인생의 영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반지의 제왕]에서 제가 가장 주목한 것은 악의 군주 사우론의 절대 반지를 없애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신비한 엘프도, 용맹한 난쟁이도, 무한한 힘을 가진 마법사도, 이미 사우론을 이긴 적이 있는 인간도 아닌, 작고 보잘 것 없으며 겁 많은 호빗이었습니다. 호빗인 프로도와 샘은 수많은 역경을 딛고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런 면에서 [9 : 나인]은 [반지의 제왕]을 연상 하게합니다. 인간을 몰살시킨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기계에 맞서 싸우는 것이 고작 봉제 인형이라니... 그것도 동료 중에서 가장 나약해 보이는 9입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를 맡은 배우인 일라이자 우드가 9의 더빙을 맡은 것은 어쩌면 쉐인 워커의 이러한 치밀한 계산이 뒷받침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동료들의 희생으로 9은 기계 군단을 무찌릅니다. 이제 지구는 인간이 아닌 봉제 인형의 것인 셈이죠. 우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며 지구상의 동식물들을 멸종시키고, 결국은 지구를 황폐화 시켰습니다. 다른 SF영화들은 그런 인간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인간의 것이다.'라고 외쳤는데 쉐인 액커 감독은 그럴 생각이 없었나봅니다. '왜 꼭 지구는 인간의 것이어야 하지?'라는 그의 의문은 결국 인간의 마음을 가진 봉제 인형에게 지구를 맡김으로써 끝을 맺습니다.
그러한 여러 가지 면이 제게 [9 : 나인]을 좋아하게 만들었습니다. '미약한 존재라도 미래를 바꿀 수 있다.'라는 [반지의 제왕]을 연상하게 만드는 메시지와 '왜 지구의 주인이 꼭 인간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라는 도발적인 결론은 다른 어떤 SF영화보다도 극장을 나서는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미약한 봉제 인형에게 힘을 다오!!!

이제 지구는 우리의 것이니 아들, 딸 낳고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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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왠지 .. 이런 류의 애니메이션은 .. "아 .. 보고싶다 .." 라는 생각이 간절한데 ..
막상 극장에 갈 시간이 생기지가 않네요 ㅠ
 2009/09/19   
우드
봉제 인형이 신인류가 되는 세상.. 생각만 해도 흐뭇한듯(?)  2009/09/19   
쭈니 Park님 : 원래 사는게 그렇습니다. (^^;) 저도 아,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생기면 이상하게 시간이 안나더라고요. ^^;
우드님 : 봉제 인형이 신인류가 되면 우린??? 전 흐뭇하기보다는 좀 씁쓸하다는... ^^
 2009/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