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프로포즈] - 산드라 블록의 귀환만으로 2% 부족한 영화의 재미를 메우다.

쭈니-1 2009. 12. 8. 23:47

 

 


감독 : 앤 플레쳐
주연 : 산드라 블록, 라이언 레이놀즈
개봉 : 2009년 9월 3일
관람 : 2009년 9월 8일
등급 : 15세 이상

그날의 메인이벤트는 [프로포즈]였다.

동사무소의 치명적인 실수로 인하여 하루 동안의 휴가 아닌 휴가가 생겨버린 저는 꽤 진지하게 극장에서 볼 영화를 고르고 또 골랐습니다. 비록 첫 번째 영화로 [코코 샤넬]을 골랐지만 사실 그날 제가 유일하게 보고 싶었던 영화는 [프로포즈]였습니다. 잠이 덜 깬 아침 8시 40분에 [프로포즈]를 보는 것보다는 잠이 확실히 깬 11시 5분에 [프로포즈]를 보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코코 샤넬]을 먼저 본 것입니다.(한마디로 [코코 샤넬]은 땜빵이었습니다.)
제가 [프로포즈]를 기대한 것은 당연히 산드라 블록 때문입니다. 1994년 작인 [스피드]에서 산드라 블록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전 액션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라면 남성 캐릭터에 비해서 수동적이고 들러리, 혹은 눈요기 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스피드]에서 산드라 블록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예쁘지도, 심지어는 섹시하지도 않은 그녀는 능동적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다니며 키아누 리브스 못지않은 활약을 해냈습니다. 그 덕분에 [스피드 2]는 키아누 리브스가 빠졌어도 산드라 블록만으로도 영화 자체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결과적으로 [스피드 2]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하지만 산드라 블록의 매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엉뚱한 매력을 로맨틱 코미디에 접목시켰고 그 결과 탄생한 영화가 바로 [당신이 잠든 사이에]입니다. 당시 귀여운 이미지의 멕 라이언과 섹시한 이미지의 줄리아 로버츠가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자리를 놓고 다투던 시기였기에 그녀들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산드라 블록의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정말 색다른 로맨틱 코미디로 등극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 앞에선 장사가 없었습니다. 이미 멕 라이언은 조용히 사라졌고, 줄리아 로버츠도 예전과 같은 왕성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산드라 블록은 계속된 흥행실패로 오랜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에 [프로포즈]로 전미 흥행 대박을 터트린 것입니다. 90년대 그녀의 영화를 보며 환호했던 제 입장에서는 산드라 블록의 재기가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산드라 블록의 매력을 제대로 잡아내다.

'로맨틱 코미디만큼은 극장에서 혼자 보는 일은 하지 않겠다.'라는 철칙은 결국 산드라 블록의 화려한 재기 작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관객이 별로 없는 평일 오전이었기에 비교적 닭살 커플이 적은 분위기 속에서 [프로포즈]를 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프로포즈]는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발생합니다. 산드라 블록의 나이가 무려 40대 중반입니다. 우리나라였다면 주인공의 어머니 혹은 이모로 나오는 것이 마땅할 나이임에 분명합니다. 산드라 블록의 [프로포즈]이전의 마지막 로맨틱 코미디가 2002년 작인 [투 윅스 노틱스]임을 감안한다면(그래도 당시 산드라 블록은 30대였습니다.) [프로포즈]에서 산드라 블록의 캐스팅은 분명 모험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프로포즈]를 보니 산드라 블록의 캐스팅은 정말 절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영화의 캐스팅이 절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프로포즈]만의 남녀 상하관계의 역전이라는 특이한 상황 때문입니다. 대부분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녀 관계는 남성 캐릭터의 위치가 더 높거나(그래서 신데렐라 스토리가 가능했던 것이지요.) 혹은 동등했습니다. 하지만 [프로포즈]에서는 오히려 여성 캐릭터인 마가렛(산드라 블록)의 위치가 남성 캐릭터인 앤드류(라이언 레이놀즈)보다 높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로써는 상당히 이색적인 시도인 셈입니다.
물론 이러한 이색적인 시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산드라 블록 덕분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산드라 블록은 출세작인 [스피드]에서부터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예쁘지도, 섹시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수동적인 사건 해결보다는 능동적인 사건 해결에 익숙합니다. 그런 모든 조건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부하 직원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마녀 같은 직장 여상사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귀여운 마녀 보신 적 있으신가요?


남녀 역할의 전복만으로도 즐겁다.

이렇게 산드라 블록만으로도 [프로포즈]는 색다른 로맨틱 코미디의 위치를 확보합니다. 사실 남여의 위치가 바뀐 것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평범하기 그지없습니다. 각자의 목적을 위해서 계약 연애를 하던 커플이 점차 진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스토리 라인과 대가족이 등장하여 시끌벅적한 웃음을 유도하는 방식 등은 이미 여러 차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소개된 소재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계약 연애를 이끄는 것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색다르게 느껴진 것입니다.
게다가 산드라 블록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매력을 발산하려고 아주 작정한 듯이 보입니다. 매에게 귀여운 강아지를 갖다 바치며 내 핸드폰 내놓으라고 뛰어다니는 장면은 최근 본 코미디 영화 중에서도 최고로 웃긴 장면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앤드류의 할머니와 춤을 추며 주술을 외우는 장면 역시 4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산드라 블록의 귀여운 매력이 철철 넘쳐흘렀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진다면 이 영화의 재미는 딱 거기까지입니다. 남녀 역할을 전복시켰지만 스토리의 전개는 정석을 따라 흘러갔고, 산드라 블록의 매력은 철철 넘쳐흘렀지만 라이언 레이놀즈의 매력은 한참이나 부족했습니다. 너무나도 예상 가능한 라스트는 영화를 보면서 '좀 다른 방법으로 해피엔딩을 꾸며낼 수는 없을까?'라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분명 산드라 블록의 꺼져가던 매력이 다시 발휘된 것만으로도 [프로포즈]는 행복한 영화임에는 분명해 보이지만 굳이 극장에서 보는 것보다는 거실 쇼파에서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사랑하는 연인, 혹은 가족들과 낄낄거리며 보는 것이 딱 알맞는 영화로 보입니다.
이제 곧 산드라 블록의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 [올 어바웃 스티브]도 개봉한다고 하네요. [스피드]와 같은 여장부로써의 산드라 블록은 이제 보기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로맨틱 코미디에서의 관록의 여왕 산드라 블록의 귀환만으로 만족해야할 것 같습니다.


 

시끌벅적 대가족 코미디는 언제나 즐겁다.

산드라 블록에 비해 라이언 레이놀즈의 매력이 아쉽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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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
오오, 스피드에서의 여배우님이 산드라 블록 이셨군요. 흠흠. 스피드는 정말 재밌게 봤는데. 매트릭스가 아닌 키아누 리브스의 모습도 볼 수 있었고.. 근데 스피드 2는 재미가 없어서 흥행에 실패한걸까요? 1을 재밌게 봐서 2도 보고 싶었는데..  2009/09/12   
쭈니 2편은 정말 제가 봐도 안습인 영화였습니다.
제목이 명색이 [스피드 2]인데...
무대가 바다위 배라는...
배가 스피드를 내봤자 얼마나 낸다고...
암튼 포커스를 잘못 잡은 영화였습니다.
 2009/09/12   
Park
배가 스피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제서야 [스피드2]가 재미없는 이유를 알고 갑니다  2009/09/12   
쭈니 네, [스피드 2]는 포커스를 완전히 잘못 잡은 영화였더랬습니다.  2009/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