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코코 샤넬] - 그래서 뭘 어쨌다고?

쭈니-1 2009. 12. 8. 23:47

 

 


감독 : 앤 폰테인
주연 : 오드리 토투, 알레산드로 니볼라, 브느와 폴블루드
개봉 : 2009년 8월 27일
관람 : 2009년 9월 8일
등급 : 15세 이상

엉성한 우리나라의 민방위 시스템에게 감사를...

며칠 전 구피가 제주도에 간 첫 날, 저는 소박한 자유를 누리고자 속옷 차림으로 거실에서 뒹굴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저희 집 초인종을 누르더군요. 시간은 밤 10시... 무방비 상태에서 흐트러져 있었기에 저는 옷을 부랴부랴 챙겨 입고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저희 집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아주머니는 제게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낮에 아무리 와도 사람이 없어서...'라는 말만 남기고 민방위 통지서를 제게 건네주고 황급히 가버리시더군요. 그렇게 해서 전 또 다시 나라의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민방위 훈련은 참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예비군 훈련은 군부대나 동네 동사무소에 모여 간단한 군사 훈련이라도 받지만 민방위 훈련은 구청 대강당에 모여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꾸벅꾸벅 조는 것이 전부이니까요. 암튼 저는 그런 부질없는 짓을 위해서 회사에 휴가를 냈습니다.
하지만 민방위 훈련장에 가기 위해서 집을 나서며 훈련 통지서를 가만히 보니 훈련 통지서엔 전반기 기본 교육을 받지 않는 이들을 위한 1차 보충교육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어! 전반기에 내가 훈련을 받지 않았던가?' 제 가방을 뒤져보니 5월 달에 받은 훈련 참가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동사무소에 전화를 해보니 착오였다며 민방위 훈련 안받아도 된다는 황당한 소리만 전해집니다. 결국 저는 예상하지 못한 하루간의 휴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남은 시간을 위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지난주, 이번 주 개봉작 중에서 기대 작이 없었기에 극장에서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는 없더군요. 결국 제가 선택한 영화는 [코코 샤넬]과 [프로포즈], 그리고 [왼편 마지막집] 이렇게 세 편이었습니다. 엉성한 우리나라의 민방위 시스템 덕분에 전 애초부터 극장에서 볼 생각이 없었던 세 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는 보너스를 얻은 것입니다.


 

차라리 민방위 훈련 날, 승마라도 하자! 전쟁을 대비해서 몸이라도 튼튼히 관리하게...


우리가 위인전을 읽는 이유...

[코코 샤넬]은 샤넬이라는 패션 브랜드로 전 세계 여성들의 로망이 된 가브리엘 샤넬(오드리 토투)의 이야기를 담은 전기영화입니다. 대개 전기영화의 경우는 두 가지로 종류가 나뉩니다. 하나는 위인전과 같이 뛰어난 위인의 일생을 다룸으로써 관객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인물의 일생을 다룸으로써 영화적인 재미를 획득하는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코코 샤넬]은 어떤 경우에 속할까요?
먼저 [코코 샤넬]이 여성에 대한 편견과 가난을 딛고 세계적인 패션 리더가 된 샤넬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담고 있다면 충분히 [코코 샤넬]은 위인전과 같은 영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코코 샤넬]은 그런 감동과 교훈을 담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니요!' 입니다. 우리가 위인전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위인전에 담긴 위인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얻고, 그들과 조금이라도 닮고자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코 샤넬]에서의 샤넬은 어떤가요? 가난한 부모님에게 버림을 받고 고아원에서 언니와 함께 외롭게 자라야했던 가브리엘 샤넬은 처음엔 가수를 꿈꾸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돈 많은 에티엔 발장(브느와 폴블루드)의 정부가 되어 상류 사회를 경험하게 됩니다. 뻔뻔함으로 발장의 집에서 빈대 붙는 것에 성공한 그녀는 보이 카펠(알레산드로 니볼라)과 사랑에 빠지고 다시 그의 정부가 되어 그의 도움으로 모자 가게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패션 브랜드 샤넬의 시작입니다.
분명 가브리엘 샤넬은 안정적인 발장의 정부로써의 삶을 뿌리치고 가식적인 유렵 귀족 사회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심플하고 편안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성공담은 감동적이거나 교훈적인 것과 거리가 멉니다. 돈도 명예도 없는 그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그녀는 몸을 팔아 성공을 했기 때문입니다.


 

백해무익한 담배 피는 장면만 보더라도 이 영화는 교훈적이지 않다.


그녀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는가?

뭐 모든 전기영화가 교훈적이고 감동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르헨티나의 국모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다룬 [에비타]의 경우는 교훈적이지 않지만 그녀의 격정적인 인생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가브리엘 샤넬의 인생은 얼마나 격정적이고 파란만장했을까요?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코코 샤넬]에서의 가브리엘 샤넬은 전혀 격정적인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다. 비록 어린 시절 그녀의 아버지가 언니와 함께 그녀를 고아원으로 보냈어도, 가수의 꿈을 꿨지만 이루지 못했어도, 발장의 저택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치열하게 지냈어도, 그녀의 인생은 다른 전기영화의 주인공에 비한다면 잔잔한 편입니다.
그녀가 사업가로써 성공을 하게 되는 것도 비교적 평탄한 편이었으며, 평생의 사랑을 결국 떠나보내는 장면 역시도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하게 영화 속에서 표현될 뿐입니다.
그녀는 분명 세계적인 패션 리더가 되기까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보이 카펠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돈도 명예도 없는 무일푼의 고아여성이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기엔 당시의 사회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것들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되었어야할 샤넬이 패션 디자이너로써 성공하는 모습을 애초부터 영화 속에서 표현할 생각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앤 폰테인 감독이 원한 샤넬의 모습은 원작 제목 그대로 '샤넬이 되기 전의 코코'였습니다. 만약 앤 폰테인 감독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왜 샤넬이 되기 전의 코코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꼭 묻고 싶습니다. 전혀 감동적이지도 않고, 파란만장하지도 않은 그 이야기를 하필 영화화한 이유가 정말 궁금하네요.


 

영화 속에서 그녀는 남자들과 노닥거리다가 성공할 뿐이다.


그래서 뭘 어쨌다고?

[코코 샤넬]은 분명 이전의 전기영화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감동적이거나, 교훈적이지 않으며, 격정적이거나 심지어는 재미있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여성인 앤 폰테인 감독은 다른 여성들이 그러하듯이 샤넬의 성공담에 관심을 가졌고, 그 성공담을 어떠한 미화도 없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표현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 이 영화는 너무나도 심심한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저도 압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읽어온 위인전이라는 것이 상당히 미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든 이들의 성공 뒤에 아름다운 노력과 열정만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너무 순진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전기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미화도 없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저는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재미있어야 합니다. 특히 대중을 위한 영화라면 더욱더 재미있어야 합니다. 여성이라면 너무나도 궁금한 샤넬의 성공담을 막상 영화로 만났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지루해 꾸벅꾸벅 졸던 제 앞줄의 여성 단체 관람객들은 영화가 끝난 후 극장을 나서며 '그래서 뭘 어쨌다고?'라며 투덜거렸습니다.
그녀들의 투덜거림에 저 역시 공감했습니다. 돈 많은 남자의 정부가 되어 그들의 돈으로 성공한 샤넬의 전혀 교훈적이지도, 감동적이지도, 격정적이지도 않은 인생을 2시간가량이나 투자하며 보려니 정말 곤혹이더군요. '샤넬이 되기 전의 코코의 이야기'는 애초에 영화의 소재로 부적합했으며 굳이 영화화해야 했다면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라도 좀 더 미화시키고, 좀 더 과장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 [코코 샤넬]에 대한 제 개인적인 결론입니다.


 

차라리 보이 카펠과의 사랑이라도 격정적으로 과장해서 표현하던가...

샤넬이 유명한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뭘 어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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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
샤넬 향수 어쩌구 저쩌구 하던게 .. 이건가?! 어쨋든 그다지 안 땡기는 영화.  2009/09/11   
쭈니 사실 저도 땡기진 않았지만 워낙 볼 영화가 없어 봤습니다.
하지만 역시네요.
 2009/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