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라르고 윈치] -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내일이 기대된다.

쭈니-1 2009. 12. 8. 23:45

 

 


감독 : 제레미 살레
주연 : 토머 시슬리, 크리스틴 스코트 토마스, 미키 마뇰로비치, 멜라니 티에리
개봉 : 2009년 8월 20일
관람 : 2009년 8월 26일
등급 : 18세 이상

우린 왜 라르고한테 관대하지 못한 것일까?

듣보잡 감독이 연출했고, 듣보잡 배우가 주연을 맡은 [라르고 윈치].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 이 영화가 기대되었습니다. 보드기문 프랑스의 블록버스터 스릴러라는 점도 기대되었고, 거대 기업 총수의 암살로 인한 기업 경영권을 둘러싼 암투라는 기본 스토리 라인도 기대되었으며, 이 시리즈가 4부작으로 기획되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할 때 저는 곧장 극장으로 달려가지는 못했습니다. 역시 그 놈의 시간이 나지 않더군요. 그래도 이 영화만큼은 꼭 극장에서 보겠노라며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극장가에서 기본적인 흥행을 할 것이라는 제 예상과는 달리 [라르고 윈치]는 개봉 첫 주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10위에 오르는 처참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극장 관람을 뒤로 밀어두었던 절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 근처 극장들의 상영시간표를 뒤져보니 [라르고 윈치]의 상영은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기 전인 수요일이 마지막 날이더군요. 우리나라의 비디오, DVD 시장이 거의 사망 일보직전인 현 상황에서 [라르고 윈치]를 극장에서 놓치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결국 저는 어렵게 시간을 내서 [라르고 윈치]가 극장에서 내려지기 직전에 관람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극장으로 향하며 왜 [라르고 윈치]가 이렇게 듣보잡 영화 취급을 받으며 개봉 일주일 만에 극장에서 내려져야 하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물론 듣보잡 감독과 듣보잡 주연배우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며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프랑스 영화라는 점이 작용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 SF 블록버스터인 [20세기 소년]도 1편의 흥행 실패 후 2편은 국내에서 개봉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이러다간 국내 극장가에서는 한국영화 또는 미국영화만 볼 수 있는 끔찍한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좀 부족해도 날 벼랑으로 밀어버리지는 말아줘.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보다 무엇이 얼마나 부족한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결국 [라르고 윈치]는 우리나라에서의 흥행 실패는 이 영화가 프랑스 영화라는 점이 많이 작용된 듯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프랑스 스릴러영화로써의 [라르고 윈치]는 할리우드 스릴러영화들보다 얼마나 영화적인 재미가 부족한 것일까요?
일단 스타급 배우가 부족합니다. 만약 이 영화의 주인공인 라르고가 토머 시슬리라는 배우가 아닌 브래드 피트 같은 할리우드의 스타급 배우가 연기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이 영화의 감독이 아무리 듣보잡이고, 이 영화의 국적이 프랑스가 아닌 그 어떤 아프리카 외지의 영화일지라도 관객들은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질 것이며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0위라는 처참한 결과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 만큼 스타급 배우의 존재는 다른 나라에 개봉을 전제한다면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실 토머 시슬리라는 배우...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수염이 덥수룩할 땐 '좀 밉상이다.'싶었는데 막상 수염을 깎고 말끔한 얼굴을 하고나니 미묘한 매력(뱅상 까셀과 비슷한...)이 풍기더군요. 라르고라는 캐릭터 자체가 그러합니다. 라르고는 세계 5위의 다국적 기업의 후계자이지만 보스니아의 고아원 출신입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저항으로 엘리트의 길을 포기하고 누더기를 걸친 채 행선지도 없는 여행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거칠고 야성적이지만 품위와 냉철한 판단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라르고 윈치라는 캐릭터는 그렇기에 상당히 복잡하고 다면적입니다. 토머 시슬리는 그러한 라르고를 잘 연기합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잘 연기를 했다고 해도 관객들이 아예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면 아무린 쓸모가 없는 셈입니다. 어차피 이 영화가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었고, 프랑스 자국 내에서의 흥행수입으로는 제작비 충당이 불가능하여 전 세계 흥행수입을 노려야하는 영화라면 제레미 살레 감독은 자신이 생각한 라르고의 이미지에 맞는 배우보다는 관객이 기대하는 라르고의 이미지에 맞는 배우를 우선적으로 선택했어야한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내가 그렇게 매력 없나? 그래도 벗으면 한 몸매 하는데...


세련된 각색도 부족하더라.

[라르고 윈치]는  벨기에 출신의 작가, 장 반 암므의 16부작 대하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작의 방대한 양만큼 영화화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을 것입니다. 특히 이렇게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는 각색이 중요합니다. 원작에서 어느 부분을 생략하고 어느 부분을 강조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영화의 성패에 중요한 갈림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직 원작을 읽지는 못했지만 [라르고 윈치]는 그런 면에서 약간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너무 방대한 원작을 쫓아가려다보니 장면들이 대충 맛뵈기 식으로 넘어가는 장면들이 많았고, 캐릭터들도 자세한 설명 없이 일관성을 지니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서 라르고가 아버지인 네리오 윈치(미키 마뇰로비치)에게 반항하는 장면이 그러합니다. 이 영화에선 단지 자신이 고아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라르고가 네리오에게 자신의 고아원 파일을 달라고 하지만 네리오가 그냥 불태워 버렸다고 하자 그에 대한 분노로 반항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 이전에 네리오와 나르고는 상당히 많은 문제들로 서로 부딪혔을 것이며 고아원 파일 문제로 그 불만이 일시에 폭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제대로 영화엔 표현이 안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나르고와 네리오의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미스터리 한 캐릭터인 레아(멜라니 티에리)의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변심도 그렇고, 마지막 반전인 배후인물의 동기도 그렇고, 처음부터 캐릭터 구축에 힘을 쓰지 못한 까닭에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일관성이 부족하게만 보입니다. 고향 동창이 뜬금없이 나타나 라르고를 치료해주는 장면 등,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무관한 약간의 곁가지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캐릭터 구축에 좀 더 집중했다면 이 영화의 각색이 좀 더 세련되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첩보원 레아의 속마음을 알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영화가 좋다.

분명 주연배우의 매력은 아무래도 할리우드 스타급 배우의 매력보다 덜합니다. 방대한 원작을 세련되게 각색하지 못한 것인지 캐릭터 구축이 덜 된 느낌이었고, 불필요한 장면도 꽤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도 [라르고 윈치]가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과 스타 캐스팅으로 만들어 졌다면 액션의 스케일은 좀 더 커졌을 것이며, 캐릭터도 스타 캐스팅과 세련된 각색으로 매력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라르고 윈치]는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아쉽다는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좀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뭐랄까 할리우드 스릴러영화처럼 말끔하게 다듬어놓은 영화적인 재미가 아닌 덜 다듬어졌지만 그렇기에 앞으로 기대할 것이 많아 보이는 그런 매력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라르고는 아버지를 죽은 내부의 배신자를 밝혀내고 드디어 그룹의 왕좌에 오르지만 이제부터가 모험의 시작일 것입니다. 그가 이 거대 기업의 총수가 되기 위한 준비를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했는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 만큼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라르고의 감춰진 매력은 점점 빛을 발할 것이며, 이 영화 이전엔 듣보잡 배우에 불과했던 토머 시슬리 역시 라르고라는 캐릭터와 함께 점점 매력을 발산 할 것입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그 매력을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니만큼 [라르고 윈치]는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훨씬 많은 영화인 셈입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9월 개봉했던 [20세기 소년]이 우리나라에서의 흥행 참패이후 2009년 1월 개봉 예정이었던 [20세기 소년 2 : 마지막 희망]이 아직도 개봉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라르고 윈치]의 감춰진 매력은 어쩌면 더 이상 우리나라 관객에게 보여줄 기회가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20세기 소년 2 : 마지막 희망]의 개봉을 기다리는 마음만큼, [에반게리온 : 파]를 기다리는 마음만큼, 저는 [라르고 윈치]의 두 번째 영화도 기다리겠습니다.


 

아들아, 설마 내가 고아원 파일 태웠다고 사춘기도 지난 녀석이 그렇게 반항한건 아니지?

날 죽이진 말아줘. 2편에서도 한국 관객을 만나고 싶단 말이다.

IP Address : 211.227.13.185 

지나가던행인
라르고윈치!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영화!  2009/08/26   
쭈니 ㅋㅋㅋ
구피도 기대하더군요.
그런데 저 혼자 보고 와서 지금 삐쳤답니다. ^^
 2009/08/27   
xhfzmd
영어로 된 영화에만 익숙해져서 혀가 꼬이는 프랑스 영화는 약간 어색할 듯. ㅎㅎ  2009/09/06   
쭈니 ㅋㅋㅋ
뭐 어차피 영어나 불어나 못알아듣는 것은 마찬가지잖아요. ^^;
 2009/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