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블랙] - 그녀를 바라보는 이 영화의 시선이 아름답다.

쭈니-1 2009. 12. 8. 23:46

 

 


감독 : 산제이 릴라 반살리
주연 : 아미타브 밧찬, 라니 무커르지
개봉 : 2009년 8월 27일
관람 : 2009년 9월 5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아내가 여행을 떠나면 'olleh'를 외쳐야 하는가?

요즘 KT의 'olleh' CF가 인기입니다. 특히 아이가 여름캠프에 가자 'wow'를 외치는 부모의 모습과 곧이어 아이와 아내가 함께 여름캠프에 가자 'olleh'를 외치는 남편의 모습은 CF를 보며 박장대소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지난주에 'olleh'를 외칠만한 상황이 생겼었습니다. 구피가 회사 워크샵으로 2박3일간 제주도에 간 것입니다. 전 장난삼아 'olleh'를 외쳤는데 구피는 그런 제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자기가 제주도에 간 사이에도 웅이와 단 하루도 빠짐없이 놀아주고 숙제도 봐주라는 특명을 안겨주고 갔습니다. 덕분에 저는 겉으로는 'olleh'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회사, 집의 반복된 생활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웅이와의 시간 이후엔 구피의 잔소리 없이 밤늦게까지 프로야구를 보며 속옷 차림으로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양치질 안하고 잠자리에 들기도 하는 등 소박한 자유를 즐겼습니다.
결국 구피가 2박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토요일,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영화를 보며 마지막 소박한 자유를 만끽한 후, 집에 들어와 그동안 어질러놓은 집 청소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고, 빨래도 하는 등 구피를 맞이할 준비를 철저하게 마쳤습니다.
그렇게 2박3일간의 소박한 자유를 만끽한 소감은??? 뭐 별거 없더군요. 오히려 토요일 오전부터 혼자 청소하느라 기운만 더 빠졌습니다. 제게 '나 없는 자유는 잘 만끽했어?'라고 묻는 구피에게 저는 '다음엔 웅이도 데려가.'라고 투덜거렸습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구피와 웅이가 한동안 제 곁에서 떠나 있는 다면 전 과연 진정으로 'olleh'를 외칠 수가 있을까요? 솔직히 자신은 없네요.


 

소박한 자유가 끝난 후 내 모습은 거의 폐인이 되어 있었다.


소박한 자유가 안겨준 소박한 영화

사실 2박 3일간 실컷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고 했습니다. 밤늦게까지 영화 본다고 해서 잔소리할 구피도 없으니 눈이 충혈 될 때까지 밤 새워 영화를 보며 자유를 만끽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2박 3일간 본 영화는 고작 [블랙] 한 편 뿐이었습니다.(전 왜 막상 멍석을 깔아주면 오히려 못 노는 것일까요?)
어느 학교 중딩, 고딩들이 단체 관람이 있는지 아침부터 시끌벅적한 CGV 목동에서 [블랙]을 봤습니다. 영화 시작하기 직전까지 왁자지껄 떠들더니 영화가 시작하자 이번엔 뭐가 그리도 바쁜지 왔다 갔다 하는 매너 없는 녀석들을 보며, 제발 단체 관람을 하려면 먼저 극장 예절부터 가르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하긴 저도 고딩 때 극장에서 영화를 단체 관람을 할 때 영화에 쉽게 집중하지는 못했었죠.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네요.)
암튼 조용히 감동적인 영화를 즐겨 보겠다는 애초의 제 계획과는 달리 조금은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블랙]을 봤습니다. 하지만 [블랙]은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도 꽤 진중한 메시지를 통해 절 영화 속으로 빠뜨리더군요. 인도영화라고는 지금까지 [밴디트 퀸]이 전부였던 제게 [블랙]은 결코 낯설지 않은 방식으로 가장 보편적인 감동을 선사하였습니다.
[블랙]이 인도영화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으면서도 좋은 흥행성적을 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밴디트 퀸]만 하더라도 어린 시절부터 갖은 모욕과 학대를 받던 한 여성이 의적이 된다는 격정적인 스토리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나라 관객들이 공감하기엔 무리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블랙]은 다릅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 여성과 그녀에게 글을 가르치려는 선생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룬 [블랙]은 상당히 소박한 영화이지만 우리나라 관객들도 그 감동에 동참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체관람 온 중딩, 고딩들이여! 밖에선 웃고 떠들어도 극장에선 좀 조용히 하자!!!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블랙]이 지닌 보편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같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동정하고, 혹은 배척하고, 귀찮아하고, 무관심하고, 이 모든 시선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어쩌면 서로 같습니다. 무작정 동정함으로써 그들을 안전한 울타리 안에 가두려 하고, 배척함으로써 그들을 남들과 떼어 놓아 울타리 안에 밀어 넣고, 귀찮아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음으로써 그들 스스로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게끔 합니다. 이 모든 시선의 공통점은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라는 인식입니다.
미셸(라니 무커르지) 역시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시선들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를 불쌍히 여긴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안전한 자신의 품속으로 가둬두려 합니다. 남들과 다른 그녀가 귀찮은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정신지체아 시설에 가둬 버리려 합니다. 미셸의 어머니도, 미셸의 아버지도 서로 다르지만 결국은 서로 같은 방법으로 미셸을 가둔 것입니다.
여기에 알코올 중독자에 괴짜인 사하라(아미타브 밧찬) 선생이 미셸을 가르치기 위해서 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우리들이 가진 일반적인 시선과 다른 시선으로 미셸을 대합니다. 미셸을 일반인들과 동등하게 바라보고, 그녀를 가두기보다는 그녀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내기위해 노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일반인들과 같은 예절교육을 받아야 하고, 언어를 배워야합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 말 할 수도 없기에 일반인들보다 힘들고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녀를 향한 사하라의 열정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블랙]을 보며 감동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입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이 영화의 시선은 미셸에게 동정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저 남들과 다르기에 몇 배는 더 노력해야하는 그녀의 모습을 담담히 쫓아가기만 합니다.


 

그녀를 바라보는 이 영화의 시선은 신선하다.


영화의 재미를 위한 약간의 장치들.

[블랙]이 미셸에 대한 담담한 시선은 그녀를 미화하려 하지 않은 점에서도 발견됩니다. 그녀는 때론 신경질 적이고, 때론 무례하며, 때론 고집이 셉니다. 미셸의 동생 약혼식에서 보여준 그녀의 신경질적인 모습은 그녀를 보통의 20대 여성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미셸에 대한 이 영화의 색다른 시선만으로는 영화의 재미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미셸에게 애초부터 동정심 가득한 시선을 보이지 않았기에 미셸에 의한 감동 쥐어짜기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던 이 영화는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 사하라에게 알츠하이머병을 안김으로써 오히려 미셸이 아닌 사하라에게 동정심을 유발합니다. 장애인인 미셸에게 동등한 시선을 보이던 영화가 오히려 그녀의 선생이던 정상인 사하라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임으로써 관객의 눈물을 얻어낸 것은 참 기발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로 인하여 빛이 없는 블랙의 세계에서 살아야 했던 미셸처럼 지극히 정상인이던 사하라 역시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하여 빛이 없는 블랙의 세계에 갇혀버립니다. 이제 사하라가 미셸을 빛의 세계에 인도했던 것처럼 미셸 역시 사하라를 빛의 세계에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상인이기에 장애인을 도와야 한다는 동정 섞인 시선에 대한 담담한 반전인 셈입니다.
기본적으로 [블랙]은 좋은 영화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조용히 꾸짖으며 그들과 우리는 서로 같고, 서로가 서로를 돕는 동등한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적절하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의 배치도 꽤 훌륭했습니다. 비록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눈이 휘둥그레지는 영화적인 재미는 없었지만 조용히 감성을 건드리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꽤 높이 살만해보입니다.


 

빛이 없는 블랙의 세계는 일반인인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

미셸을 바라보는 이 영화의 시선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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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동적일 것 같은 영화지만.. 시험이라는 괴물 앞엔 장사 없다...  2009/09/08   
쭈니 ㅋㅋㅋ
어쩔수없죠.
학창시절에 시험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니... ^^
 2009/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