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썸머워즈] - 사소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전쟁.

쭈니-1 2009. 12. 8. 23:45

 

 


감독 : 호소다 마모루
더빙 : 카미키 류노스케
개봉 : 2009년 8월 13일
관람 : 2009년 8월 19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그대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재미있었는가?

직딩의 영원한 로망인 여름휴가가 결국 끝나버리고 여름휴가 기간동안 몰아치기로 봤던 영화 관람의 행복한 순간도 1년 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는 다시 늘어난 가지만 다시금 바쁜 일상생활 속에 제 영화 관람은 지지부진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이 영화만큼은 놓칠 수 없다는 집념으로 챙겨본 영화가 있으니 바로 [썸머워즈]입니다.
사실 [썸머워즈]를 기대할 수 있었던 계기는 2년 전 여름, 제 백수생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구직활동을 하고 남은 시간은 모조리 극장에서 영화보기에 투자했었던 저는 CGV 서포터즈라는 신분 덕분에 CGV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언제든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백수인 덕분에 시간적 제한과 CGV 서포터즈인 덕분에 금전적 제한이 모두 풀려버린 상황에서 전 마음껏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봤던 수많은 영화 중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긴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외엔 별로 관심이 없던 제게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시간이 남아서 보게 된 그저 한 편의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는 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평범한 청춘멜로에 SF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감수성 넘치는 영상과 스토리에 저는 매료되었던 것입니다.
[썸머워즈]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영화입니다. 그림체는 여전히 순정만화의 감수성이 묻어나지만 스토리는 SF적인 상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지 않았다면 이 불협화음이 느껴지는 조합에 '뭐야, 이건.'을 외쳤겠지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본 저로써는 '우와! 기대되는데.'라는 탄성을 지른 것입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재미있게 본 사람 손들어.


가상세계는 이미 우리의 현실에 들어와 있다.

10년 전, [공각기동대]라는 애니메이션을 봤을 때는 도대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저는 그 흔한 메일 계정 하나 없던 컴맹이었습니다. 무한한 네트워크의 세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저로써는 [공각기동대]는 그저 현실 불가능한 SF 애니메이션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저는 [공각기동대]의 시간적 공간인 2029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네트워크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무한한 인터넷의 공간,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네트워크의 세상입니다. [썸머워즈]는 그러한 현실적인 네트워크의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OZ라는 가상세계가 현실의 세계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편의와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영화 속의 설정은 지금 우리의 현재 모습과 비슷합니다.
사실 저 역시도 가상세계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실세계에서의 김동준이라는 제 실명보다는 쭈니라는 인터넷 가상공간 안에서의 닉네임이 더욱 편안하게 느껴지고, 현실세계에서는 하루 종일 회계장부를 들여다봐야하는 평범한 직딩에 불과하지만 가상세계 속에서는 8년 가까운 시간동안 꾸준히 나만의 가상공간에 영화 리뷰를 올리는 영화 이야기꾼이고, 네이버의 프로야구 판타지 게임인  마이리그 카페의 주인장이기도 합니다. 쭈니는 어느새 제 새로운 인격이 되었고, 인터넷에서의 활동은 제 새로운 생활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현실 속에 살고 있기에 [썸머워즈]의 이야기가 더욱 공감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썸머워즈]의 OZ는 지금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가상세계보다는 좀 더 발전한 면이 보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의 가상세계가 곧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욱 집중하며 영화를 관람할 수가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건 가상세계에서의 난 이렇게 멋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겐지의 여름방학은 특별했다.

[썸머워즈]의 주인공은 겐지(카미키 류노스케)라는 한 소년입니다. 그는 평소 짝사랑하던 선배 나츠키의 부탁으로 그녀의 시골집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나츠키의 약혼자 역할이라는 꿈만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화의 초반, 겐지와 나츠키의 이야기는 너무 틀에 박힌 뻔한 스토리에 불과합니다. 위중하신 할머니를 위해 위장 약혼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설정 자체가 3류 드라마나, 심심풀이 로맨틱코미디의 흔한 설정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최대한 [썸머워즈]를 평범한 일상의 모습으로 시작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을 말입니다. 뭐 짝사랑하는 여자의 위장 약혼자가 되는 것은 흔한 일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누구든 상상할 수 있는 흔한 설정이긴 하니까요.
그러한 평범하지만 행복한 일상이 어느 순간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현실의 세계가 아닌 가상의 세계에서의 위기이기에 어쩌면 일반인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 치부해버릴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가상의 세계가 붕괴되는 위기에 빠지지만 위기의식을 느끼는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한 쪽에선 가상세계의 운명을 건 힘겨운 싸움을 하지만 한 쪽에선 그들을 철없는 남자들로 치부하고 평범한 일상생활을 계속 해나갑니다.
저는 이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데, 만약 인터넷의 공간이 무너진다면 우리의 생활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타격은 현실 세계의 위기처럼 곧바로 우리들의 피부에 와 닿아 느껴지는 것이 아닌 아주 천천히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겠죠. 지금 당장 인터넷이 안 되도 우리들은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 외엔 없겠지만 인터넷의 불통은 점점 일상생활의 위기를 불러올 것입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평범한 일상과 대비되는 가상세계에서의 혈투를 보여주며 어느새 가상세계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우리들의 현실세계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인류의 운명을 건 싸움을 하고 있다.


사소해 보이는 위대한 전쟁... 썸머워즈...

사랑하는 나츠키와 그녀의 가족들, 더 나아가서는 인류를 지키기 위한 겐지의 위대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전쟁은 전쟁이라고 할 수가 없을 만큼 사소하게 보입니다.  죽으면 코인을 새로 넣어 되살리면 되는 격투 게임의 형식으로 시작된 이 영화의 전쟁은 재미있게도 고스톱으로 마무리됩니다. 인류와 사이버 세계의 명운을 건 전쟁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소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전쟁의 형식이 아닌 전쟁의 승패로 인하여 그들이 얻고, 잃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그것은 바로 가상세계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입니다.
사소해보이지만 겐지의 전쟁이 위대해 보이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을 되찾기 위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공간 속에서 악플로 인하여 상처를 입고,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하고, 급기야 자살까지 하는 이유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또 다른 내가 모욕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가상세계에 익숙해질수록 우린 가상세계의 또 다른 자아에게 독립적인 인격체를 부여합니다.
[썸머워즈]의 아바타는 바로 그러한 독립적인 인격체의 영화 속 묘사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되찾기 위한 전쟁이 아무리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저는 이 영화 속에서의 오락 형식의 전쟁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과도한 긴장감을 위해 클라이맥스를 과장했다면 평범한 일상과 가상세계의 조화를 표현하려 했던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괴리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겐지 일행의 전쟁으로 가상세계는 복귀되고 인류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선 아무도 그들의 활약상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단지 가상세계에서 그들의 활약이 전설처럼 전해지겠죠. 현실에서 영화를 보는 우리에겐 그렇기에 어쩌면 이 영화의 결말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상세계에서 글을 쓰는 저는 이 영화의 결말이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지금 저는 현실의 김동준이 아닌, 가상의 쭈니이기 때문이겠죠.


 

현실의 세계에서 겐지의 전쟁은 사소해 보이지만...

가상의 세계에서 자아를 되찾는 위대한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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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swith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참 재미있게 봤는데, 같은 감독이라니 썸머워즈도 기대되네요~
그런데 극장에서는 상영하는 곳이 드문 것 같아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극장 찾기가 힘들어서 결국 다운받아서 봤는데 썸머워즈도 다운 받아서 봐야겠네요^^
 2009/08/27   
쭈니 그렇죠. 한국영화나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라면 극장 찾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개봉이 1주일 지나면 더더욱...
이 영화의 경우는 다행히 집근처 극장에서 상영해서 볼 수 있었는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극장에 가서야 겨우 볼 수 있었습니다.
 2009/08/27   
이빨요정
극장에서 상영해주는곳이 너무 적어서 좀 기다려야 볼수있을거같습니다.
너무 기대되는 작품인데 말이지요.
 2009/08/30   
쭈니 그렇죠?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상영하는 곳이 적었는데 말이죠.
최소한 국내에 개봉하는 모든 영화들은 편안하게 집 근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2009/08/30   
Daywalker
가상공간의 훈남 쭈니님~~

전 지방이라 보기 힘들겠군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썸머워즈도 기대되는군요.
여튼 글참 잘 쓰십니다.
영화정보를 얻고자 할때 젤 먼저 오는 곳이 바로 여기인데 어찌 그리 스포일러 없이 핵심을 잘 집어내시는지~~
비법좀 -ㅅ-;;
 2009/09/01   
쭈니 훈남???
ㅋㅋㅋ
기분 좋군요. ^^
저 스포일러라고 욕 많이 먹는데...
제 글의 비결은 욕먹어도 꿋꿋하게 난 잘낫어라는 자아도취로 글을 쓰는 겁니다.
남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그냥 내 느낌 그대로 말입니다. (또 잘난척... ^^;)
 2009/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