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신정원
주연 : 엄태웅, 정유미, 장항선, 윤제문, 박혁권
개봉 : 2009년 7월 15일
관람 : 2009년 8월 5일
등급 : 12세 이상
[괴물]을 잇는 한국형 괴수영화?
네티즌들의 평이 워낙 좋아서 기대 작은 아니었지만 여름휴가의 첫 영화로 선택한 [국가대표]의 성공적인 관람이후 제가 선택한 영화는 [차우]였습니다. 제가 [차우]를 선택한 이유는 구피가 '[차우]를 본 사람들이 그러는데 재미있대.'라는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참 귀가 얇습니다. ^^;
암튼 [차우]를 보기 전에 제가 기대했던 것은 한국형 괴수영화의 표본이었던 [괴물]과 같은 영화였습니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와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지만,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해운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한국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영화엔 장르불문하고 코미디가 꼭 있어야 어울립니다.) 그런 한국형 괴수영화를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차우]는 어느 정도 한국형 괴수영화의 묘미를 보여주기는 했습니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코미디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우]의 경우는 오히려 코미디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문제였습니다. 제 아무리 코미디가 중시된다고는 하지만 장르가 괴수영화인 만큼 공포, 스릴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차우]엔 그러한 것들이 부족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영화가 괴수영화로 포장된 블랙 코미디, 혹은 컬트영화라고 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지 않은 입장에서 외형적으로 [차우]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괴수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그러한 평가가 이해되네요. 괴수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웃긴 [차우]는 괴수영화의 덕목인 공포, 스릴러 부분이 코미디에 비해서 현저하게 떨어지는 영화였습니다.
우리들이 이래봬도 엄청 웃긴 사람들이란다.
난 신정원 감독에게 낚인 것인가?
사람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기대하는 것을 만족시키면 재미있는 영화이고, 기대하는 것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재미없는 영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영화를 두고 사람들의 평가가 서로 틀린 것은 영화에 기대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전 [차우]에 한국형 괴수영화를 기대했고, 그 기대감은 영화를 보면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가 잘못되었기 보다는 제가 잘못된 기대를 가졌었는지도 모릅니다. [차우]의 신정원 감독의 전작이 [시실리 2km]이었음을 알았기에 [차우]도 [시실리 2km]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임을 미리 눈치 챘어야 했습니다.
[시실리 2km]는 공포영화로 포장된 코미디영화였습니다. 조직의 다이아몬드를 들고 튄 석태(권오중)와 석태를 뒤쫓는 양이(임창정) 일행의 시실리라는 동네에서의 무섭고도 섬뜩한 체험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인간들의 무서운 욕심과 억울하게 죽은 송이(임은경)의 원혼의 등장으로 제법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낸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시실리 2km]는 공포영화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허무맹랑한 웃음이 영화 전반을 떠받쳐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박해 보이는 마을 사람들이 다이아몬드에 눈이 먼 무서운 사람들로 돌변하고 무시무시한 처녀귀신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지만 영화는 무섭기 보다는 웃깁니다.
[차우]가 정확히 그러합니다. [시실리 2km]는 신정원 감독의 데뷔작이었기에 신인감독의 독특한 공포 코미디 영화라는 평가를 얻어냈지만, [차우]는 꽤 많은 돈이 투입된 영화이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득실대는 여름방학 시즌 한가운데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신정원 감독은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라도 좀 더 장르영화의 법칙에 충실한 괴수영화를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장르영화보다는 자신의 개성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에 대한 호불호는 [차우]에 한국형 괴수영화를 기대했느냐, 아니면 [시실리 2km]와 같은 독특한 코미디영화를 기대했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괴물이고, 뭐고 간에 우린 엉덩이 까고 웃기기나 하자고.
도대체 뭘 어떻게 웃겼는가?
[차우]의 코믹코드는 시골사람들의 순박함에서 시작합니다. 10 년째 범죄 없는 마을이었던 산골의 한적한 마을 삼매리. 그곳에서 묘지를 파헤치고 그 묘지의 시체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됩니다. 어찌 보면 상당히 진지해보여야 하는 이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냅니다. 경사진 묘 자리에서 경찰들은 계속 넘어지는 몸 개그를 선사하더니, 시체를 처음 본 경찰들은 토를 해대며 화장실코미디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처음엔 그런 장면들이 좋았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송강호의 몸 개그는 너무 딱딱해보이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영화의 소재에 강약조절을 담당하는 역할을 해냈었습니다. [차우] 역시 그러했습니다. 살인 멧돼지라는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소재에서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몸 개그는 공포와 웃음을 조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임에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반의 그런 제 생각은 중반이 가면 갈수록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의 광녀의 출연부터 조금 불안했는데... 그녀의 출연은 영화의 스토리라인과 전혀 상관이 없는 말 그대로 웃음만을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코미디를 위한 억지 설정은 영화 중반이 되면 될수록 점점 심해집니다.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인 손녀를 잃은 전직 포수 천일만(장항선)은 영화 중반부터는 손녀의 죽음에 대한 분노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있었고, 사냥감에게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치욕을 맛 본 전문사냥꾼 백포수(윤제문) 역시 자존심 회복을 위한 결의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약해져 보입니다. 논문을 위해 일행에 억지로 끼어든 변수련(정유미)의 위험한 일은 남자에게 떠맡기기 짓거리는 후반에 가면 갈수록 점점 짜증을 나게 만들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찾으러 산에 올랐다가 얼떨결에 일행에 참여하게 된 김순경(엄태웅), 담당 형사인 신형사(박혁권) 역시도 진지함 보다는 관객 웃기기에 더욱 열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그렇게 웃겨?
공포 스릴러와 코미디의 황금 비율을 찾아라.
후반부에 살인 멧돼지를 죽이는 임무가 김순경과 변수련에게 떠맡겨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부터 영화는 괴수영화의 본연의 임무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땐 이미 늦었습니다. 영화의 중반부터 공포를 서서히 몰고 가서 후반에 '빵'하고 터트려야 효과가 있었을 텐데... 중반부터 느슨하게 웃음을 줬던 이 영화는 아무리 후반에 가서 고삐를 바짝 쥐어틀어도 이미 관객에게 공포와 스릴을 안겨줄 동력을 잃은 후였던 것입니다.
살인 멧돼지가 김순경과 변수련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에서조차 공포감으로 두 눈을 질끈 감는 것보다 거대한 살인 멧돼지를 표현한 특수효과가 과연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오히려 제 두 눈을 더욱 크게 뜨게끔 만들었으니 이 영화의 공포 스릴러로써의 재미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굳이 설명 안 해도 아실 겁니다.
한국형 괴수영화... 분명 코미디는 좋은 양념이 될 수 있습니다. 아직 기술력이 부족한 우리 영화계의 현실에서 특수효과 하나만으로는 관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코미디가 양념이 아닌 주재료가 되어 버린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이미 우리 영화에 코미디 장르는 주류장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만연한 상태이기에 한국형 괴수영화로써의 코미디가 아닌, 코미디의 탈을 쓴 괴수영화라면 결코 제 개인적으로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이 영화가 괴수영화가 아닌 코미디영화라는 사실에 아주 쐐기를 박아 버립니다. 엔딩 자막이 올라가며 처참하게 죽은 천일만의 손녀가 갑자기 눈을 뜨고 관객에게 눈웃음을 보이는 장면이라던가, 백포수와 광녀의 장면 등은 신정원 감독이 혹여나 이 영화가 괴수영화라고 착각한 관객에게조차도 '[차우]는 코미디영화라니까.'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신정원 감독이 조금만 더 진지하게 만들어 줬다면, 그래서 코미디는 양념으로 사용되었다면... [차우]에게 한국형 괴수영화를 기대한 저로써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네요.
조각난 사람의 손이 나와도 웃기고...
김순경이 죽어라 살인 멧돼지한테 쫓겨도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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