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업]-아이들은 웃고 즐기고, 어른들은 현대인의 자화상을 들여다 보게 된다

쭈니-1 2009. 12. 8. 23:41

 

 


감독 : 밥 피터슨, 피트 닥터
더빙 : 에드워드 애스너, 조단 나가이, 밥 피터슨, 크리스토퍼 플러머
개봉 : 2009년 7월 29일
관람 : 2009년 8월 1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쭈니, 진상 아저씨가 되다.

어느새 웅이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휴일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처음엔 극장이 답답하다며 극장에서 영화 보기를 꺼려하던 웅이도 점차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에 적응하여 제가 '영화 보라 가자.'라고 꼬드기면 흔쾌히 '그러죠. 뭐.'라며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 줍니다.
웅이와 함께 극장에 갈 땐 표를 한 장만 끊습니다. 영화비도 영화비지만 웅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하며(다른 영화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볼 땐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며 영화를 보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 있답니다.) 영화를 보는 재미가 꽤 솔솔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웅이와 함께 영화를 보면서 영화표는 단 한 장만 끊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비록 웅이의 덩치가 점점 커지면서 조금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요즘 워낙 영화 관람비가 비싸졌고, 웅이도 저와 따로 앉아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제 무릎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더욱 좋아하기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올해까지는 그냥 그렇게 볼 생각이었습니다. CGV 목동에선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가끔 가는 메가박스 목동에서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업]을 본 극장인 CGV 공항은 달랐습니다. 만 세 살이 되면 무조건 영화표를 사야지 입장이 가능하다며 상영관 입구에서 여직원이 저와 웅이를 막아서더군요. 전 너무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죄송합니다. CGV 목동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다음부터는 두 장 끊어서 보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여직원은 원리원칙을 들먹이며 '손님만 봐드릴 수는 없습니다.'라며 버티는 겁니다. 제 뒤로 사람들은 줄 서 있고, 웅이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서있고, 영화 시작 시간은 다 되어가고... 저도 오기가 생기더군요. 제가 잘못한 것은 알고 있지만 이대로 영화 못 보고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제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거의 5분 정도를 실랑이를 하자 여직원도 포기를 했는지 다음부터는 꼭 아이 것도 구매하라며 들여보내 주더군요.
아! 정말 쪽팔렸습니다. 하지만 당당하게 웅이에겐 '웅이가 이젠 아기가 아니라서 아빠 무릎에서 영화를 보면 안 된대. 다음부턴 꼭 웅이 영화표도 사자.'라고 상황 설명을 해주고 황급히 극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저도 '왜 저러냐? 나이 먹어서...'라고 욕했던 진상 아저씨가 되어 가나봅니다.  


 

그래, 늙으면 전부 진상이 되어 가는 것이란다.


웅이의 첫 번째 픽사 애니메이션 극장 관람기.

사실 웅이와 [업]을 보기로 하면서 약간 걱정했습니다. 왜냐하면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분명 어린 아이들도 보고 즐길만한 애니메이션이지만 어른들에게도 재미를 안겨주는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웅이와 극장에서 본 애니메이션들은 철저하게 어린이 눈높이에만 맞춘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많았지만 픽사 애니메이션은 그러한 애니메이션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애니메이션이기에 과연 웅이가 지금까지 봤던 애니메이션보다 높은 차원을 지닌 픽사 애니메이션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웅이에게 [업]은 첫 번째 픽사 애니메이션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비디오로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 주식회사] 등등 픽사의 걸작 애니메이션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웅이는 [카]를 제외하고는 그들 애니메이션에 집중하지 못하더군요. 극장이 아닌 집에서 봤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다른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볼 때보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업]도 웅이보다는 제가 보고 싶었고, 어린아이들로 극장이 가득 채워질 것이 분명한데 어른 혼자 극장에 가기 좀 그래서 웅이를 꼬드겼던 것인데... 그래도 저만큼이나 웅이도 [업]에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걱정은 단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수천 개의 알록달록한 풍선이 달린 칼(에드워드 애스너)의 집에 하늘에 떠오르는 장면에서 웅이는 '우와~'하며 탄성을 지었고, 말 하는 개 더그(밥 피터슨)와 신비의 새가 등장하는 장면에선 너무나도 즐거워했습니다. 지금까지 웅이와의 극장 데이트는 대부분 웅이만 즐거워하고 저는 약간의 지루함을 참아야하는 불공평한 데이트였습니다. 그러나 [업]을 통해 저도, 웅이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 데이트가 완성되었으니 역시 픽사 애니메이션은 대단합니다.


 

웅이만 열광하는 영화 데이트에 이제 그만!!!


웅이는 이해 못한 칼의 슬픔과 깨달음.

영화의 초반은 완벽하게 어른들을 위한 장면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운명적인 사랑과, 예기치 못했던 삶의 아픔, 그리고 그 모든 고난을 사랑을 헤쳐 나가는 칼 부부의 모습은 영화 초반 짧은 오프닝 장면으로 스치듯 지나가지만 제가 보기엔 가슴이 찡할 정도로 감동스러웠습니다.
어린 시절 막연하게 꿈꿨던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은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 가면서 점점 잊힌 꿈이 되고, 어느새 은퇴를 하여 그 잊힌 꿈을 되새길 때는 함께 모험을 하기로 했던 사람은 기다려주지 않고 저 멀리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립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어쩌면 저것이 우리 현대인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이미 늙고 병들어서 이루고 싶어도 이룰 수가 없는 슬픈 자화상. 그렇기에 현실에선 불가능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통쾌한 칼의 모험에 저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웅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초반의 장면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칼이 왜 우는지, 칼의 모험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이들은 당연히 이해하기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게끔 [업]은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한 칼의 슬픔과 결심을 이해 못하더라도 칼의 모험은 어린아이들이 보기엔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고 신났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픽사 애니메이션을 구피와 함께, 혹은 혼자 봤었습니다.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 단지 다른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어른인 제가 봐도 재미있다.’ 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업]을 웅이와 함께 보고나니 픽사 애니메이션에는 '어른이 봐도 재미있다.'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영화의 깊은 내면에는 어른이 봐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삶의 깊은 성찰을 담아놓고, 그런 것들을 이해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영화의 겉모습은 신나고 재미있는 모험담으로 꾸며놓았던 것입니다. 비록 [업]이 지금까지 제가 봤던 최고의 픽사 애니메이션은 아니었지만(제게 최고의 픽사 애니메이션은 [월-E]였습니다.) 다른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픽사 애니메이션은 왜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칼의 모험은 신나는 것, 그 이상을 내포하고 있다.


집착을 버리는 그 순간이 바로 행복이다.
  
웅이가 보기에 [업]은 수천 개의 풍선을 집에 매달아서 남미로 신나는 모험을 떠나는 할아버지 칼과 어린 소년 러셀(조단 나가이)의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말하는 개들이 나오고, 알록달록 귀여운 신비의 새가 나오고, 악당인 찰스(크리스토퍼 플러머)가 나오며, 칼과 러셀이 찰스를 무찌르는 완벽한 해피엔딩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업]이 [월-E]와는 다르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가까워진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귀여운 동물 캐릭터, 극명한 선과 악의 대립, 그리고 해피엔딩... [업]이 조금은 뻔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게 되면 달라집니다. [업]은 삶의 모든 집착에 대한 현대인의 모습을 담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입니다. 우리들은 살면서 많은 것들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직장, 승진, 돈, 차, 집, 가구 등등 우리들이 집착하는 것들을 일일이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칼과 찰스도 우리들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그래도 자기 나름대로의 것들을 두고 집착을 합니다. 칼은 죽은 아내와의 약속에 대해서 집착을 하고, 찰스는 신비의 새에 대해서 집착을 합니다. 그러한 그들의 집착은 그들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그들을 고집불통의 늙은이 혹은 악당으로 만듭니다.
결국 집착을 먼저 벗어버린 칼은 고집불통의 늙은이에서 정의의 영웅으로 탈바꿈됩니다. 하지만 끝까지 집착을 벗어던지지 못한 찰스는 영화 속의 전형적인 악당으로 남게 됩니다. 바로 집착이 이 영화에서 선과 악을 구별 짓는 잣대이며 어른들을 위한 교훈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저는 얼마나 많은 집착에 사로 잡혀 살고 있는지 뒤돌아 봤습니다. 그러한 집착들은 이 각박한 도시의 삶 속에서 제가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었습니다. 그 집착을 위해 저는 끊임없이 일하고, 힘든 사회생활을 버텨냈기 때문입니다. 과연 저는 이 집착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영화 속의 칼의 나이가 되면 저도 집착을 벗어던질 수 있을지도... 그 때가 되기 전에는 구피를 위해서라도, 웅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삶의 집착을 부여잡고 치열하게 살아야겠죠? 영화 속에서 끝까지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찰스의 최후가 마냥 통쾌하지 못하고 안타까웠던 이유입니다.


 

집착을 버리지 못한 찰스의 심술궂은 표정과는 달리...

집착을 버린 칼의 표정은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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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
어? 뭐지? 이건..  2009/08/03   
액션영화광
쓰다가 실수로 비밀글로 안남기고, 그냥 누르셨나요?
ㅎㅎ
 2009/08/04   
Park
간만에 실수 작렬
 2009/08/04   
쭈니 ㅋㅋㅋ
그러게요... 제가 요즘 졸업논문쓰느라 정신이 없어서...
(무슨 졸업논문을 여름 휴가에 당일치기로 쓰냥~) ^^;
 2009/08/04   
액션영화광
저도 [업]보러 갔는데 시간대가 안맞아서 차우 봤어요. ㅋㅋ
이번주 주말에 [업]보려구요. 이번에도 실망 안 시키나 보네요. ㅎㅎ
 2009/08/05   
산와머니
즐거우면서도 지독하게 슬픈영화죠.
제 친구는 울면서 봤다는...
 2009/08/05   
쭈니 액션영화광님 : 네, 이번에도 역시 픽사 애니메이션 다웠습니다. 저도 오늘 [차우]보고 왔는데 영화 자체가 너무 장난스러웠다는... 오히려 [국가대표]가 재미있더군요. ^^
산와머니님 : 네 저도 찡했습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는... 대신 [국가대표]보며 울뻔 했다는... (이거 왠지 국가대표] 홍보대사같은... ^^;)
 2009/08/06   
ssook
디지털로 보려고 찾아보니 동네에선 더빙밖에 없더라구요.. 그래도 어색하지 않더라구요.. 이순재 할아버지의 연륜이 묻어나는 목소리....... 왜 애니메이션에 스타들이 많이 더빙을 하는데 그림과 목소리가 따로 노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속의 이순재 할아버지는 아주 잘 어울리더라구요.  2009/08/08   
쭈니 저도 자막으로 보고 싶지만 어느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은 더빙으로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
사실 영화를 보고나서 할아버지 목소리가 이순재인걸 알았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았다면 좀 더 재미있게 즐길 수도 있었을지도... ^^;
 2009/08/08   
루이스피구
앗~ 저도 이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오랜만에 들렀는데 쭈니님은 여전하십니다 넘 오랜만이네요 ㅎㅎ

참 저 블로그 주소 바뀌었습니다 설마 못찾아 오신건 아니죠? ㅜㅜ
http://figodeli.com
 2009/08/10   
쭈니 축구왕피구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닉넴이 루이스피구로 바뀌셨군요. ^^
반가운 마음에 새로운 블로그로 놀러가겠습니다. ^^
 2009/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