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진
주연 : 이순재, 장동건, 고두심, 임하룡, 한채영
개봉 : 2009년 10월 22일
관람 : 2009년 10월 29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멜허코장(멜로는 허진호, 코미디는 장진)
저는 극장에서 영화보기를 즐기지만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최대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러 장르의 영화를 골고루 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저도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 보니 SF, 액션, 애니메이션, 스릴러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을 선호하지만 코미디, 드라마는 오히려 안방에서 비디오나 다른 매체로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예외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허진호 감독의 멜로영화와 장진 감독의 코미디영화입니다. 허진호 감독과 장진 감독은 각각 멜로영화와 코미디영화에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그들의 영화는 다른 멜로영화와 코미디영화와 차별화된 그들만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저는 허진호 감독과 장진 감독의 영화가 개봉하면 나중에 비디오로 출시될 때까지 참지 못하고 웬만하면 극장에서 챙겨보려고 노력합니다. 지난 20일 회사에 휴가를 내고 무려 세 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관람했을 때도 [호우시절]을 가장 먼저 챙겨 본 이유 역시 감독이 허진호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굿모닝 프레지던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주에 [시간여행자의 아내]와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등 기대작들이 대거 개봉했지만 그들 영화들을 제치고 [굿모닝 프레지던트]부터 챙겨 본 이유 역시 장진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영화에서 코미디를 만드는 감독은 많습니다. 한국영화의 주류 장르가 코미디라고 할 정도로 한국영화에서 코미디를 뺀다면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고 많은 코미디영화 중에서 장진 감독의 코미디영화는 다릅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다른 코미디영화와는 차별화된 장진식 코미디영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띈 반가운 영화였습니다.
장진식 코미디에 입장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하늘에서 240억이 떨어진다면??? 정답은 죽는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3명의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군사독재정권이 물러가고 영화의 소재가 자유로워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이 등장하는 영화는 꽤 있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 [효자동 이발사], [한반도], [피아노 치는 대통령] 등. 하지만 [피아노 치는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통령은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영화의 양념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장진 감독은 그렇게 민감하다면 민감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소재를 한 명도 아닌 무려 세 명이나 한 편의 영화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대통령도 그저 보통 사람일 뿐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첫 번째 대통령인 김정호(이순재)가 그러합니다. 어찌 보면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인상을 풍기는 그는 이제 퇴임이 몇 달 남지 않은 대통령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날벼락(?)같은 행운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바로 240억 원이라는 복권에 당첨된 것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돈에 당첨이 된 그는 고민에 빠집니다. 국민들에게는 복권에 당첨되면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상태이지만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정호가 복권 당첨금을 어떻게 탈 것인지 이리저리 고민하는 장면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듭니다. 비록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가졌고, 복권 당첨금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선포한 그이지만 그 역시 보통 사람인 이유로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김정호의 고민에 명쾌한 해답을 안겨준 이는 바로 청와대 요리장입니다. 그는 '하늘에서 갑자기 240억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김정호의 질문에 '그러면 그 돈에 깔려 죽겠죠.'라는 동문서답을 합니다. 하지만 그 동문서답은 김정호가 원했던 가장 현명한 해결책을 담고 있었습니다. 자고로 자신의 몫이 아닌 돈을 탐내는 자의 최후는 비참한 법입니다. 재임 기간 동안 온갖 비리로 퇴임 후 순탄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에 현혹되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청와대 요리장의 동문서답이 가장 필요한 것 같군요.
대통령도 복권에 당첨되면 당연히 기분 좋겠지?
국민을 사랑하기에 앞서 옆집 배고픈 아이부터 챙기라.
김정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이는 젊은 차지욱(장동건)입니다. 김정호의 에피소드가 많이 웃겼다면 차지욱의 에피소드는 속이 후련했습니다. 일본과 북한의 군사 도발에 단호하게 우리나라의 입장을 밝히고 혹시나 닥칠지도 모르는 전쟁의 위기를 슬기롭게 벗어나는 장면을 보면서 비록 영화지만 '참 멋있는 대통령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일본 대사를 불러놓고 당당하게 호통을 치는 장면을 보며 마음속으로 열심히 박수를 쳤답니다.
그런 차지욱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한 젊은 청년(박해일)이 차지욱에게 자신의 아버지에게 신장을 이식해 줄 것을 간절히 부탁한 것입니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이라는 신분 탓에 자신의 신장을 함부로 이식해 줄 수 없었던 차지철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청와대 요리장의 의도하지 않은 조언을 구합니다.
'국민을 사랑하기에 앞서 옆집 배고픈 아이부터 챙겨라.' 차지욱의 아버지가 그의 어린 시절 남겨준 말입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하다보면 그것이 하나 둘씩 모여 국민을 사랑하는 일인 셈입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무조건 큰 것만 바라보지 말고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바라보다보면 자연스럽게 큰 것도 보이게 되는 것이죠. 너무 큰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작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차지욱의 선택을 보며 우리나라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뒤돌아봅니다. 시장에서 떡볶이를 사먹고 시장 상인들과 악수를 나눈다고 해서 그것은 서민 정치가 아닌 것입니다. 정치는 쇼라고 생각하는 차지욱의 참모의 말과는 달리 정치는 진심임을 현실의 대통령들도 깨달았으면 좋겠네요.
시장에서 떡볶이를 사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국민들은 행복한 대통령을 원한다.
차지욱의 뒤를 이은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한경자(고두심)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그 남편은 어떨까? 라는 궁금증을 이 영화는 완벽하게 해소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여자만 내조를 하고 남자는 외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자에 비해 사회적 활동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누구의 남편이기 보다는 그냥 누구이기를 바라는 남자들의 특성상 대통령의 남편이라는 직분은 충분히 가정불화를 몰고 올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한경자의 남편인 최창면(임하룡)도 그러합니다. 비록 대통령의 남편으로써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아내를 외조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 역시 보통 사내였습니다. 친구들과 술 마시며 오랜만에 회포도 풀고 싶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마누라가 차려주는 술상을 대접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그의 돌출 행동은 번번이 대통령이라는 공직을 수행해야하는 한경자의 걸림돌이 되고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의 위기에 몰립니다.
대통령직을 훌륭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이혼을 하는 것이 옳을까요? 이번에도 한경자의 고민에 청와대 조리장은 조언을 해줍니다. 국민들은 행복한 대통령을 원한다고... 대통령이 행복해야 국민들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러한 조언은 이번에도 먹혀 들어갑니다. 저 역시 제가 행복하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잘 해주지 못합니다. 하물며 대통령 역시 자신이 행복해야 더욱 성심성의껏 국민을 위해 봉사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불행을 감내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웃긴 발상인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있고, 그것은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추구의 욕망은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우리가 꿈꾸는 보통의 대통령을 위해서...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대통령이라는 소재를 제외한다면 장진 코미디로는 좀 평범하다 싶은 영화입니다. 장진 감독의 초기작처럼 재기발랄함이 [거룩한 계보]에서부터 많이 퇴색되어서 [아들]에서는 너무 착한 코미디로 변하더니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도 [아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이 평범하다고 해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주제의식마저 평가절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복권 당첨으로 환호하는 대통령, 첫사랑으로 가슴앓이 하는 대통령, 이혼문제로 고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 영화는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비범한 사람이 아닌 그저 올바른 생각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영화를 보며 소리 내어 웃지만 그러한 웃음은 다른 코미디영화와 같은 일회성 웃음이 아닌 '정말 저런 인간적인 대통령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부러움이 담긴 의미 있는 웃음이었습니다. 그냥 평범하고 인간적인 대통령. 결코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데 저는 왜 그러한 제 바람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드는 것일까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장진 감독이 풀어낸 평범하고 인간적인 대통령에 대한 판타지 덕분에 2시간 동안 행복했습니다. 비록 영화이기에 가능한 대통령의 모습이라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그 행복한 판타지에서 깨어나야 했지만 최소한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현직 대통령이 제게 안겨주지 못한 행복을 2시간 동안이라도 만끽하게 해준 소중한 영화였습니다.
세 가지 에피소드를 하나로 엮어준 요리장 아저씨, 진짜 짱이었다.
장동건과 한채영의 키스씬은 이 영화의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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