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펜트하우스 코끼리] - 이쯤되면 막 가자는거다.

쭈니-1 2009. 12. 8. 23:54

 

 


감독 : 정승구
주연 : 장혁, 조동혁, 이상우, 이민정, 황우슬혜
개봉 : 2009년 11월 5일
관람 : 2009년 11월 10일
등급 : 18세 이상

난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영화를 본다.

또 다시 구피와의 불화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제가 친구들과 남자들끼리만 1박 2일로 놀러가기로 약속하면서부터이고, 문제의 전개는 하필 그날 저희 어머니가 김장김치를 담그신다며 구피를 소환한 것이며, 문제의 절정은 여행경비로 7만원이라는 거액(?)의 회비가 들어간다는 소리를 듣고 구피가 격노한 것이었습니다.
구피는 시댁으로 김장김치를 담그러 가야하는 것도 짜증나는데, 남편이 도와주지는 않고 오히려 놀러가겠다고 선언한 것이 화가 났을 테고, 저는 어차피 놀러가기로 한 것을(게다가 구피는 흔쾌히 허락까지 했습니다.) 쿨하게 보내 주지 못하고 그깟(?) 7만원 때문에 남편의 기를 팍팍 꺾어버리며 한 달에 5백만 원 번다는 제 친구와 저를 비교하는 망발을 한 것에 화가 났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화가 난만큼 이번 문제는 쉽게 풀릴 것 같지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제가 잘못을 했기에 구피에게 먼저 잘못을 빌며 끝이 났지만 이번 문제의 경우 저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구피가 제게 먼저 사과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결혼 6년 6개월 동안 누가 잘못했던지 구피는 제게 먼저 사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암튼 가정이 편안해야 바깥일도 잘 풀린다고 했던가요? 구피와의 불화가 시작하자마자 저는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안 잡히며 하루 종일 짜증만 났습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당연히 구피와의 화해겠지만 그것이 안 될 경우 차선책으로는 재미난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 일이 바쁨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하루간의 연차휴가를 냈습니다.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뿐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영화로 제 머리 속을 정화시키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잘 생기고 돈 많은 너희 들은, 못 난 나와는 달리 이따위 고민은 없겠지?


잘 난 녀석들의 화려한 방황기?

첫 영화로 [펜트하우스 코끼리]를 선택한 이유는 잘 난 녀석들의 화려한 방황을 보며 대리만족이라도 해야겠다는 못 난 녀석의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 실패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오히려 스트레스가 커져서 터지기 일보직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제 기대와는 너무 다른 영화였습니다. 상업영화라고 하기엔 재미가 없었고, 그렇다고 비상업영화라고 하기엔 메시지가 없었습니다. 그냥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 막 나가는군.'이라는 생각만 들더군요.
일단 이 영화는 제 예상대로 잘난 녀석들의 방황기는 맞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난 녀석들이라고 해도 똑같은 인간일 텐데, 그들의 방황이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현우(장혁)가 대표적입니다. 5년간 사귄 애인에게 차이고 세상 다 산 녀석 마냥 온갖 찌질한 행동은 전부 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내내 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실연이라면 종류별로(자랑은 아니지만) 꽤 당해본 당사자이지만 현우는 너무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심하게 방황하더군요.
매번 새로운 파트너와 섹스를 하는 성형외과 전문의 민석(조동혁)과 12년 만에 성공한 외국계 금융 전문가가 되어 불연 나타난 진혁(이상우)도 매한가지입니다. 그들의 방황은 분명 화려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저들이 정녕 방황을 하고 있긴 한건지 의문이 듭니다.
현우의 방황을 관객에게 공감시키려면 애정결핍증상이 있는 현우의 과거와 주변 상황, 그리고 헤어진 그녀가 얼마나 현우에게 의지가 되었는지 보여줘야 하고, 민석의 방황을 이해시키려면 그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불행한지, 그래서 그가 다른 여자들과의 섹스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지 보여줘야 하며, 진혁의 방황을 이해시키려면 진혁이 민석의 아내인 수연(이민정)과 과거에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모든 것을 싹둑 잘라버립니다.    


 

그런데 우리 왜 이렇게 궁상떨고 있는 거냐?


러닝타임을 잘 활용해라.

[펜트하우스 코끼리]의 러닝타임은 놀랍게도 2시간 25분입니다. 이 정도의 러닝타임이라면 웬만한 상황설명은 충분히 하고도 남을 정도로 여유가 넘칠 것입니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2시간 안팎에서 러닝타임을 끊으려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축복을 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축복받은 러닝타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문제는 발생합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방황하는 세 명의 주인공은 있지만 그들이 방황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그저 '얘 네들은 럭셔리하게 방황하니 너희들은 보기나 해라.'라고 윽박지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별로 복잡하지도 않는 영화 속 캐릭터간의 관계도 설명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해력이 딸려서일지 몰라도 전 수연이 민석의 아내인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고, 수연이 현우의 동생인줄은 영화의 후반부에야 알았습니다. 그러한 수연의 존재는 세 명의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만큼 이 영화는 수연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제가 영화가 너무 재미없어서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졌었거나...)
문제는 수연뿐만이 아닙니다. 후반부에 불현듯 자살해버리는 혜미(장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인에 대한 예의 때문에 그 부분을 지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혜미의 자살은 이 영화가 얼마나 뜬금없는지 잘 나타내줍니다. 그녀가 과연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상처를 받긴 한 것일까요? 한 여배우의 자살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저 여배우의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장면을 통해 단순한 홍보를 노린 것은 아닐까요? (굳이 장자연의 자살 사건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최진실의 자살 사건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었을 테니까요.)


 

난 저 둘의 사랑이 왜 방황인 것인지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너무 막 나가지는 말자.

캐릭터들은 전혀 왜 저러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가운데 영화의 러닝타임은 자꾸만 길어만 집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가 캐릭터를 포기한 채 2시간 25분을 채운 것은 무엇일까요? 초반부에는 화려한 척 보이는 럭셔리 보이들의 전혀 공감 안 되는 방황이었고, 후반부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블랙 코미디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이 영화, 정말 막 나간다.'라고 느낀 것은 장선생(황우슬혜)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부터입니다. [미쓰 홍당무]를 통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로 제 이목을 끌었던 황우슬혜는 이 영화에서 정말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는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처음 그녀가 현우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장면에서 저는 이 영화가 혹시 곽재용 감독의 영화가 아닌지 의심했답니다. (곽재용 감독은 과거와 미래를 오고가는 이런 뜬금없는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장선생의 정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영화가 후반부에 들어가면 갑자기 스릴러 분위기가 튀어나오더니 아예 코믹스릴러로 장르를 변경시킵니다. 열심히 죽였는데 시체가 사라지는 이 황당한 사건은 코믹스릴러에 어울리는 장면이지 결코 나쁜 남자들의 방황에 어울리는 내용이 아닙니다. 도대체 정승구 감독은 무슨 생각을 하며 후반부를 찍은 것일까요?
최대한 이 영화에 대해서 좋게 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아무래도 저하고는 코드가 180도로 다른 영화인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며 이렇게 황당해 하기는 14년 전 김용태 감독의 [미지왕]과 여균동 감독의 [맨?]이라는 영화를 본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들 영화는 처음부터 '우리 막나가는 영화다.'라고 선포라도 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그러지 조차 않았으니 저로써는 더욱 황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 선생의 정체를 알려고 하지 말지어다.

우리가 이렇게 막 나갈지 몰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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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댓글을 달아야 할지 심히 걱정되어 이렇게 방황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2009/11/12   
쭈니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저와 의견이 달라도 그냥 솔직하게 써주시면 됩니다. ^^
 2009/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