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9년 영화이야기

[시간 여행자의 아내]-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의 재미를 살리지는 못했다.

쭈니-1 2009. 12. 8. 23:54

 

 


감독 : 로베르트 슈벤트케
주연 : 에릭 바나, 레이첼 맥아덤즈
개봉 : 2009년 10월 28일
관람 : 2009년 11월 1일
등급 : 12세 이상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다.

제겐 고등학교 시절부터 만난 친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만나 소주 한 잔 기울이는 소중한 녀석들이죠. 물론 가끔 그 녀석들이 귀찮을 때도 있습니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착한(?) 계획을 세운 제게 자꾸 소주 한 잔하자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내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그 때문에 구피와 말다툼을 하기도 여러 번이었으니까요.
지난 토요일 소주 한 잔 하자며 조르는 친구의 문자 메시지를 마냥 외면할 수가 없어서 원망의 눈빛을 보내는 구피를 남겨두고 친구들을 만나러 왕십리로 향했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찌질한 녀석들과 소주를 한 잔 걸치면서 우리들의 화려했던 20대 시절을 회상하고 현재의 고민들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못한 한 노총각 친구는 맞선녀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투정을 부리고, 늦게 결혼해서 이제 서야 와이프가 임신 중인 친구는 총각시절에는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빨래, 설거지, 청소 등을 입덧 중인 와이프를 대신해서 해야 한다며 투덜거립니다. 어떤 친구는 다니는 회사가 망해간다며 걱정하고, 어떤 친구는 와이프와 관계가 나빠져 이혼을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고민과 옛 추억이 뒤엉켜 우리들의 시간은 예전처럼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새벽까지 이어진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끝내고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집에 돌아온 저는 집에 돌아와서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어 버린 우리들 역시 직장, 육아, 이혼 문제 등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더군요. 어쩌면 30대 후반의 나이로 실직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평생 사랑하며 살겠다는 약속을 깨고 미움만 남은 채 이혼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산다는 것이 가끔 씁쓸합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 그거 5년도 채 가지 않는다.


[닥터 후 시즌 2] 에피소드 4 : 벽난로 속의 소녀

지하철 끊기기 전에 집에 들어오겠다는 약속은 까맣게 잊은 채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저는 구피의 눈 흘김을 받으며 방 한 구석에서 쭈그리고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 제 아내가 구피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돈도 많이 못 벌어 오고, 결혼 초창기엔 툭 하면 회사에 사표를 집어 던지고 대책 없이 집에서 놀았으며, 고집도 세고, 성격도 지랄 같아서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내 뜻을 굽히지도 않아 구피와 다툼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별 탈 없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구피와 저는 천생연분일지도... ^^;
일요일 저녁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본 것은 순전히 구피를 위해서(?)였습니다. 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보고 싶었지만 유난히도 시간 여행에 대한 소재의 영화를 좋아하는 구피는 청소를 하다가도 TV에서 [시간 여행자의 아내] 예고편이 나오면 청소를 잠시 멈추고 멍하니 TV를 바라볼 정도로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으니까요.
구피의 기대대로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초반부는 상당히 흥미진진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닥터 후 시즌 2] 중에서 4번째 에피소드인 '벽난로 속의 소녀'와 많이 비슷했습니다. '벽난로 속의 소녀'는 시간 여행자인 닥터(데이비드 테넌트)가 18세기 프랑스 소녀인 르네를 만나 과거와 미래를 오고가며 벌어지는 모험담을 담고 있습니다. 어린 르네는 아름다운 숙녀가 되어 루이 15세의 정부로서 베르사유 궁정을 실제로 통치했던 그 유명한 여인 마담 드 퐁파두르가 되지만 어린 시절 만난 닥터에 대한 연정을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에 품습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보면서 [닥터 후] 에피소드를 모두 통 털어서 가장 애잔하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 에피소드가 기억이 났다는 것만으로도 제게 이 영화의 초반은 엄청난 성공이었던 셈입니다.  


 

내가 10대 닥터인 데이비드 테넌트보다 몸이 조금 좋긴 하지.


[나비효과]

하지만 초반의 로맨틱한 분위기는 후반이 될수록 불안감으로 바뀝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시간 여행을 해야 하는 헨리(에릭 바나)는 기본적으로 시간 여행을 통제할 수 있고 그 어떤 위기도 태연스럽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전지전능한 닥터가 아니었기에 헨리의 시간 여행은 헨리와 클레어(레이첼 맥아덤스)의 사랑에 무언가 커다란 불행을 가져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불안감이 엄습하자 로맨틱했던 영화의 분위기는 어느새 스릴러의 모양새를 띄기 시작했으며, 시간 여행을 통해 현재를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불행해지기만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나비효과]와 점점 비슷해지고 있었습니다. 불행한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과거를 바꾸려했던 에반(애쉬튼 커처)은 모두가 만족하는 행복한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사실만을 확인한 채 사랑하는 카일리(에이미 스마트)를 위해서 죽는 것보다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도 그러했습니다. 헨리는 시간을 여행하는 자신의 특별한 처지를 이해해주는 단 한 명뿐인 여인 클레어와 행복한 결혼을 하지만 그 결혼은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예기치 않게 시간을 여행해야하는 까닭에 클레어는 언제나 홀로 남겨져 헨리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어 버리고, 두 사람의 아이도 시간을 여행하는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태아인 상태에서 시간을 이탈하여 클레어는 유산하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이제 곧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헨리는 평생 혼자 남겨질 클레어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냅니다.
그 순간 저는 헨리도 [나비효과]의 에반과 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답니다. 언제까지나 헨리를 기다려야하고, 사랑하는 헨리의 아기도 가질 수가 없으며, 어쩌면 헨리의 죽음으로 평생 혼자 남겨져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할 클레어를 위해 차라리 헨리는 클레어를 만나지 않음으로써 그녀에게 다른 선택을 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홀로 남겨질 클레어를 위한 길일지도 모르기에...


 

홀로 남겨질 클레어의 외로움은 누가 달래주나?


[더 재킷]

영화의 초반은 [닥터 후 시즌 2] 에피소드 4 '벽난로 속의 소녀'와 비슷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아직까지 [닥터 후 시즌 5]를 손꼽아 기다리는 제게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초반은 '재미있다.'라는 감정을 넘어 설렘을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중반은 [나비효과]와 닮았습니다. [나비효과]는 '2004년 최고의 스릴러'라고 제가 칭송했을 정도로 제게 크나큰 영화적 재미를 안겨준 영화였습니다. 정말 여기까지는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의 후반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영화의 중반까지 이어오던 재미는 후반에 가서 뜬금없는 마무리를 통해 어영부영 끝맺음을 짓습니다. 그러한 아쉬운 끝맺음은 애드리안 브로디,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스릴러 [더 재킷]과 닮아 있습니다.
[더 재킷] 역시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걸프전에서의 총상으로 충격성 기억 상실증에 빠진 잭(애로디안 브로디)은 경찰을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정신병원에 갇힙니다. 그곳에서 재킷을 입고 시체 안치실에 갇히는 비인간적인 치료를 받게 되는데 재킷을 입는 순간 잭은 미래로 시간 여행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이 이제 곧 죽게 된다는 사실과 함께 잭키(키이라 나이틀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조금 뜬금없습니다. 잭은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미래의 잭키와 행복한 생활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과거의 잭이 죽고 없어진 상황에서 미래의 잭이 존재가 가능할까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가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룰을 [더 재킷]은 과도한 해피엔딩을 위해 무리하게 깨뜨림으로써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가 지닌 재미를 오히려 잃어버렸습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더 재킷]처럼 룰을 깨뜨리지는 않았지만 헨리의 시간 여행이 뭔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믿었던 제게 허무함만 안겨줬습니다.(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미국 공화당 미워요. 정도...)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의 가장 큰 재미를 이 영화는 제게 안겨주지 못한 것입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 대한 제 전체적인 평은 완벽한 초반부와 멋진 중반부를 거쳐 너무나도 실망스런 후반부로 결론지어집니다. 정말 이 영화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사랑할 만반의 준비를 다했었는데 아쉽기 만합니다.


 

시간을 넘어선 그들의 만남은 그냥 우연일 뿐이란 말인가?

그래, 사랑이라도 열렬히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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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page
이성의 대한 환상은.. 2년 2개월이면. 완전히 사라진다죠.. 과연 반려자의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걸까요?  2009/11/04   
쭈니 저는 흠... 아직도 구피를 사랑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평생이 편안해집니다. ^^;)  2009/11/04   
우드
저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2년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아니, 믿고 싶지 않네요...
만약 정말 그렇다면 전 결혼을 아예 안하고 살려고..
 2009/11/06   
쭈니 이성에 대한 사랑은 유효기간이 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영원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 사랑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요??? ^^  2009/11/08   
404page
이런 댓글들이 나올꺼 같아서 걱정했었는데..ㅎㅎ
역시나군요.ㅎ
저내용은 과학자들이 결과로 나온거니까.. 나 자산의 환상(?)은 영원할수도 있다는 거겠죠?? 저는 사람을 좋아하면 무지하게 좋아하는 ㅌ ㅏ입이라.ㅎㅎ
 2009/11/10   
쭈니 ㅋㅋㅋ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라는거... 평균적인 것일테니... 어떤 사람에겐 평생일수 잇고, 어떤 사람에겐 단 하루일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404page님에겐 영원한 것일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2009/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