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곽경택, 안권태
주연 : 한석규, 차승원, 송영창
개봉 : 2008년 7월 30일
관람 : 2008년 8월 3일
등급 : 15세 이상
여름휴가의 첫 영화
해마다 여름휴가가 되면 저는 꼭 계획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가족 여행과 극장에서 영화보기 계획입니다. 가족 여행 계획은 아직 자가용이 없는 뚜벅이 신세인 관계로 잘 성사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별로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극장에서 영화 보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휴가를 맞이하며 전 최소한 3편 이상의 영화를 봐야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휴가가 끝난 지금에 와서 뒤 돌아보니 제가 본 영화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스페이스 침스]뿐입니다. 그나마 [스페이스 침스]는 웅이를 위해 그냥 본 영화이니 제가 보고 싶어서 본 영화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뿐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결코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고,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여름휴가 기간 중 극장에서 영화보기 계획은 항상 이렇게 어긋나는 것일까요?
하지만 이번 휴가 기간 중 유이하게 본 영화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제 기대감을 채워주기엔 역부족인 영화였습니다. 차라리 이 영화가 제 기대감을 채워줬다면 계획대로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재미난 영화를 봤다는 뿌듯함이 남아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으니 아쉬움은 더욱 컸습니다.
암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제목과는 다르게 '눈'도 '이'도 없는 저 개인적으로는 참 한심한 영화였습니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는 특별히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지만 그의 남성 영화에 대한 열정이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많이 빗나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비켜, 나 영화 보러 가야해!!!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했다.
복수는 참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주인공이 잔인한 악당을 향해 복수를 하는 과정을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박찬욱 감독의 이른바 복수 3부작이 불리는 영화들처럼 복수의 쾌감보다는 복수의 허무함을 더욱 강조한 영화들도 있지만 상업 영화에서의 복수는 쾌감을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기본적으로 복수에 대한 영화입니다. 돈밖에 모르는 잔인한 사업가 김현태(송영창)에게 아버지를 잃은 안현민(차승원)은 5년 동안 차근차근 복수를 준비합니다. 김현태가 운영하는 신용금고의 현금 수송 차량과 밀수입 금괴를 탈취합니다. 하지만 모든 복수가 그러하듯 현금과 금괴는 복수의 시작일 뿐입니다. 안현민이 바라는 것은 김현태의 철저한 몰락 혹은 죽음일 것입니다. 그깟 현금과 금괴 따위가 아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것은 당한만큼 돌려준다는 그야말로 복수극을 다룬 영화로써는 최고의 제목입니다. 그렇다면 이 제목을 영화의 스토리에 고스란히 접목을 시킨다면 안현민의 김현태에 대한 복수극은 죽음입니다. 안현민의 아버지는 분신자살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김현태 역시 불에 타서 죽어야 영화의 제목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현민에게는 그런 의지도, 그런 능력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안현민의 복수가 완성되는 시점에서 복수에 대한 쾌감이 느껴지는 대신 영화에 대한 실망감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현민의 김현태에 대한 미지근한 복수극에 대한 실망은 이 영화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그 외에도 상업 영화로써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많은 부분이 부족했습니다.
복수? 난 그런 것 몰라, 그냥 폼만 잡을래.
누구를 향한 복수인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제게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복수의 대상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안현민과 백성찬(한석규)입니다.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안현민과 백성찬의 대결에 포커스를 맞췄으며, 캐스팅 역시 차승원과 한석규라는 스타급 배우를 나란히 캐스팅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그들의 대결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안현민의 복수는 백성찬을 향해 있지 않습니다. 그는 김현태에게 복수를 하고 있으며 따라서 안현민과 백성찬의 대결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안현민의 복수의 대상은 김현태인데 그의 상대가 김현태가 아닌 백성찬이라는 것은 이 영화의 스토리 구조의 허술함을 보여줍니다. 복수극이라는 영화의 소재를 재미있게 꾸미려면 김현태의 비중을 높였어야 했습니다. 안현민과 백성찬의 대결 구조를 끌어내려면 안현민의 복수극의 한 가운데에 백성찬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복수극은 김빠진 맥주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발생합니다. 남자 대 남자의 대결 영화라면 곽경택 감독은 일가견이 있습니다. [친구]와 [태풍]에서 강렬한 남성 영화를 만들었으며, 그 외의 영화에서도 주로 남성다움을 중요시하는 영화를 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복수의 칼날이 잘 못 겨냥됨으로써 남자 대 남자의 대결이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아마도 마지막 반전에 대한 강박 때문일지도... 사실 마지막 반전이라는 것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는데 말이죠.
뭐야, 내가 안현민의 상대가 아닌 그냥 들러리란 말이야?
'눈'이 없으면 '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화끈한 복수극은 없었습니다. 한석규와 차승원이라는 스타급 배우를 캐스팅했으면서도 그들의 불꽃 튀는 대결은 용두사미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다른 재미를 찾기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한석규와 차승원의 이미지 변신은 실패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성공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착한 이미지의 한석규가 결코 선하다고 할 수는 없는 백성찬을 연기했지만 그의 연기 변신은 파격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냥 무난하다 정도...
차승원은 조금 더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미 [혈의 누]에서 차가운 스릴러 연기를, [국경의 남쪽]에서 눈물겨운 멜로 연기를 경험했던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서는 엘리트적인 범죄자 연기를 했습니다. 분명 그의 코믹 배우적인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혈의 누]나 [국경의 남쪽]에서처럼 그의 연기 변신이 눈에 띄지도 않았습니다.
요즘 영화들의 추세인 조연 배우들에 의한 영화적 재미도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이병준이 게이 연기를 하며 영화에서는 드문 웃음을 안겼지만 제가 보기엔 너무 오버였고, TV 일일 드라마인 '미우나 고우나'에서 강백호를 연기하며 아줌마 팬들을 다수 확보한 김지석이 안현민의 조직원으로 등장하지만 별다른 활약 없이 그냥 평범한 조연에 멈춥니다. 그 외 조연 연기자들은 누가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그 활약이 미비했습니다.
결국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영화의 재미 외에도 영화 외적인 재미중 단 한 가지도 살리지 못한 정말 재미없는 오락 영화였습니다. 오락 영화로써 재미를 찾으려 해도 찾기 어려운 이 영화는 제겐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영화였습니다.
내가 여자 가발까지 쓰고 나왔는데, 안 웃겨???
이 영화 재미 없댄다. 보러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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