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8년 영화이야기

[님은 먼곳에] -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쭈니-1 2009. 12. 8. 22:38

 

 


감독 : 이준익
주연 : 수애, 정진영, 엄태웅
개봉 : 2008년 7월 23일
관람 : 2008년 7월 28일
등급 : 15세 이상

가정이 평안해야 모든 것이 편안하다.

요즘 저는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습니다. 회사일은 복잡한 일들이 여러 개 겹치며 그렇지 않아도 더운 여름 날씨에 절 더욱 땀나게 합니다. 집에 돌아오면 일주일이 넘도록 화가 안 풀려있는 구피의 무표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와는 단 한마디도 안하겠다는 생각인지 굳게 입을 닫아버린 구피를 보면 저도 숨이 막혀 피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골방에 쭈그리고 앉아 잠들기 전까지 혼자 컴퓨터를 하는 것이 제 유일한 즐거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사정이 이러하니 하루 종일 모든 것이 무기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제 잘못으로 비롯된 일임을 알고는 있지만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전 모르겠습니다. 화난 구피에게 말을 걸어봤자 더욱 관계만 악화될 것임을 알고 있는 저로써는 구피가 스스로 화를 풀기만을 기다려야하는 처지이며, 회사일 역시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결해나가고 있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는 제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TV를 장악해버린 구피 때문에 TV근처에도 갈수 없는 저는 비디오나 DVD를 시청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극장에 가고 싶어도 화난 구피만 남겨두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가면 구피의 화가 더욱더 안 풀릴까봐 눈치만 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님은 먼곳에]가 개봉하였습니다. 이미 [님스 아일랜드]는 그렇게 구피 눈치만 보다가 놓쳐버린 저로써는 이 답답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님은 먼곳에]마저 못 보면 폭발할 것 같아 저녁에 홀로 보고 왔습니다. 영화를 보러 가겠다는 제게 구피는 '네가 영화를 보던, 말던 관심 없어.'라는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전 압니다. 그녀는 속으로 '어떻게 이 상황에서 혼자 영화를 보러 갈수가 있어?'라며 더욱더 화를 내고 있을 것임을...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답답증으로 쓰러질 것 같은 저부터 살고 봐야죠.


 

무릎 끓고 빌면 용서해 줄래?


그녀, 갈 곳이 없다.

순이(수애)는 갈 곳이 없습니다. 남편 상길(엄태웅)은 결혼 후 군대에 입대하였지만 매달 면회를 가는 순이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는 이미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어머니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결혼한 순이를 아내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어머니는 매달 순이를 상길에게 면회를 보냅니다. 순이가 임신을 하여 가문의 대를 잇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집에 있으면 임신을 하지 못한다며 시어머니의 무언의 구박이 기다리고 있으며, 남편에게 가면 그녀를 아내로, 여자로 인정하지 않는 상길의 차가운 표정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갈 곳이 생겼습니다. 군대에서 사고를 친 상길이 반강제로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된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베트남까지 쫓아가 상길의 씨를 받아오라고 강요합니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전쟁의 한복판으로 그녀는 가야합니다. 어차피 한국에 남아도 갈 곳이 없는 그녀는 의연하게 그곳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상길을 사랑해서도 아니고, 임신을 해서 가문의 대를 잇겠다는 투철한 의무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갈 곳이 없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베트남이 아니면 그녀는 더 이상 있을 곳이 없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베트남으로 떠납니다.
영화의 초반 순이는 정말 답답합니다. 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지만 고작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치열한 전쟁의 한복판으로 그녀를 몰아넣는 이 영화의 상황이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순이는 그에 반항을 하지 못합니다. 그저 고개를 떨군채 조용히 말합니다. '갈께요. 베트남에...'


 

베트남에 가면 될꺼 야냐... 젠장...


그녀로 인하여 그들은 순수해진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를 위한 위문공연의 가수 자격으로 순이는 베트남에 갑니다. 한 눈에 봐도 인간쓰레기인 매니저 정만(정진영)과 그의 밴드들과 함께 그녀는 그렇게 낯선 땅에 도착합니다.
그녀는 노래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춤을 춰야 합니다. 그리고 옷을 벗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전쟁이라는 잔인한 악마가 휩쓸고 있는 베트남에서 그녀가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꼭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녀는 견뎌냅니다. 시골의 순박한 아줌마였던 그녀는 어느새 요염한 싱어가 되어 몸을 드러내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릅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있을 수 있는 곳은 베트남 밖에 없으며, 그곳에 있으려면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러한 잔인한 상황을 반항하지 못한 채 받아들입니다. 마치 베트남으로 쫓겨나다시피 했던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깁니다. 그녀는 단지 상황에 순종을 했을 뿐인데 그녀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돈이라면 자신의 부모도, 자식도 팔아넘길 것 같던 정만과 단지 돈을 벌기위해 베트남에 온 밴드 멤버들은 점차 그녀의 순수함에 물들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님은 먼곳에]의 전개는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와 [즐거운 인생]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더럽고, 치사한 이 세상을 순수하게 해주는 매개체로 이들 영화들은 음악을 선택합니다. 단, [님은 먼곳에]는 이전 영화들보다 더럽고, 치사한 세상이 더욱 스펙터클한 악마의 세상이 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지옥과도 같은 세상에 울려 퍼지는 음악의 힘은 더욱 커졌습니다.
영화의 초반 순이의 캐릭터에 답답함을 느꼈던 저 역시도 그러한 그녀의 음악에 매료되어 어느 순간 수애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불렀던 그 주옥같은 올드 팝송과 70년대 가요의 애절한 음율이 아픈 내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습니다.  


 

자! 우리 모두 순수해집시다.


전쟁으로 그녀는 타락되어 간다.

그런데 여기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지옥과도 같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순이의 노래는 인간 쓰레기였던 정만과 그녀의 주위 사람들을 순수하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순수했던 그녀는 점점 타락해져 갔습니다.
옷을 벗고, 웃음을 팔고, 몸을 팝니다. 단지 남편이 주둔해있는 그곳에 가기 위해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집니다. 마치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듯이 그녀는 스스로 타락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녀가 베트남에 온 것은 갈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니에게 쫓겨나고, 친정아버지에게 마저 버림받은 그녀는 베트남 밖에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베트남에 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는 필사적으로 상길에게 가려고 합니다. 전쟁의 총탄도 그녀를 막을 수 없으며, 그녀의 순수함을 해치는 타락도 그녀는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단지 상길에게 가기위해... 도대체 사랑하지도 않는 상길에게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 무엇을 어쩌겠다고...
그러한 의문점은 영화의 마지막에 풀립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갑자기 눈물이 울컥했습니다. 그녀도 여자였던 것입니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던, 남편에게 여자로써 인정을 받고 싶었던. 어쩌면 이 영화의 제목이 그 해답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어쩌면 그녀는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주기 위해 그를 찾아 그 험난한 길을 간 것은 아닐까요? 비록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를 해주기 위해... 지금이 아니면 평생 할 수 없음을 예감했기에...


 

뭐?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고 베트남에 갔다는 말이야?


이 영화가 좋은 이유.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님은 먼곳에]도 제가 결코 좋아하지 않는 소재를 가지고 절 감동시키는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수애는 애초부터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아니었습니다. 전 그렇게 얍실하게 생긴 스타일의 배우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수애는 절 반하게 만들었습니다. 순수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순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자유자재로 제 감정선을 건드리는 그녀의 연기는 작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전쟁도 제가 좋아하지 않는 영화 소재중 하나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재미있게 본 전쟁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가 거의 유일할 정도입니다. 제가 전쟁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독한 흑백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전쟁에서 좋은 편과 나쁜 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군, 아군 모두 전쟁이라는 악마에 홀린 희생자들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쟁 영화들은 흑과 백으로 나누는 것 밖에 할 줄 모릅니다. 특히 할리우드 전쟁 영화가 그렇죠.
그러면 면에서 [님은 먼곳에]는 비록 장르가 전쟁 영화는 아니지만 단순한 흑백 논리로 전쟁에 대한 치졸한 시선을 갖지 않아 좋았습니다. '당신들에게 평화란 무엇이냐?'라고 묻는 베트콩들의 물음은 그들 역시 전쟁의 희생자임을 보여줍니다.
가슴을 촉촉이 울려주는 수애의 노래와 마지막 여운이 깊게 남는 마지막 장면도 좋았습니다. 원래 '님은 먼곳에'라는 노래를 좋아하긴 했지만 수애가 부르니 더욱 애처롭더군요. 그리고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상길과 순이의 재회씬은 이 영화의 백미... 암튼 전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영화를 본 셈입니다.


 

전쟁에서 흑과 백은 없다. 모두 피해자이고, 희생자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라면 앞으로도 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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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영화광
이게 얼마만입니까 쭈니님 일단 죄송하다고 말해야겠군요 ㅎㅎ 제가 기말고사에다가 인터넷도 안되는 바람에 한 3-4개월 정도 못들어온것같습니다...기말고사때는 몰라 컴터 할려다 계속 걸리고 그래도 영화는 독서실간다고 빠져나와서 봤습니다... 기말고사가 약 3주전에 끝났는데 그땐 인터넷이 안되서 ㅠㅠ 죄송합니다 이제 꼬박꼬박 들어올게여 쭈니님(설마 잊으신건 아니시겠죠????) 그사이에 본영화가 기억나는대로 '아이언맨,스피드레이서,해프닝,쿵푸팬더,좋은놈나쁜놈이상한놈,미이라3,) 를 봤는데

최근개봉작인 미이라3는 어제 봤는데 그냥 즐기기에 좋은 블록버스터입니다...(1,2편과는 은근 다름) 저한테는 너무 재밌던데 ㅎㅎ

님은 먼곳에 보고싶지만 시간이 ㄱ- 시간되면 극장에서 봐야지... 꼭 이준익 감독영화는 저희 친구들이 모두 안봐서(그녀석들은 이런거 안좋아하고 액션 같이 재밌는 것만 ㅠ)
그래서 이준익 감독작품인 '왕의남자,라디오스타,즐거운 인생'다 저 혼자 극장에서 보고 ㅠㅠ 이번에도 그래야 하나 ㅠㅠ

그리고 앞으로 자주 들러 글 남길게요 ㅎㅎ
 2008/08/01   
쭈니 액션영화광님의 귀환이시군요.
무지 반갑습니다. ^^
저도 이 영화 혼자 봤습니다.
아마 친구분들과 함께 본다면 지루해하실지도...
확실히 오락영화와 비교해선 지루한 부분도 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즐거운 인생]보다 스케일은 커졌지만 흥겨운 부분이 없어진 영화라고나 할까요.
암튼 혼자 보기... 추천합니다. ^^
 2008/08/01   
이빨요정
그래도 이준익 감독영화는 어렵지 않아서 좋습니다.
상업적인 영화라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여름에는 지나치게 어려운 영화는 좀 꺼려집니다.
 2008/08/02   
쭈니 여름엔 그래서 단순한 블럭버스터가 흥행하는 것이겠죠.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름엔 머리쓰는 스릴러도 잘 안보게 되는 것 같은... ^^
 2008/08/02   
소라빵
액션영화광님 오랜만이세요~^^;;
'오~수지큐, 오~수지큐, 오~수지큐~ 베이베 알라뷰 오~수지큐'
이 노래가 머리속에서 사라지질않습니다...
이 영화본지 조금 됬는데... 쭈니님의 영화평을 기다리고 있었죠..^^;;
요즘따라 한국영화 악평들이 많습니다만..'놈놈놈' '님은먼곳에' 등
전 다 잘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 [님은먼곳에]가 왜 욕먹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에휴.... 우리나라 사람들은 왤케 스토리에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놈놈놈] 스토리가 조금 유치하다지만.. 액션에 코미디?섞인 오락영화인데 말이지요..
어째뜬 오늘도 즐거운 영화평 잘 봤습니다^^
 2008/08/02   
액션영화광
님은먼곳에 제작비가 100억원이라네요 ㅠㅠ 아까 님은먼곳에 역시 혼자보고왔는데(이준익감독영화 혼자본 4번째영화) 재미있었네요... 순이(수애)의 연기도 좋았고 정진영씨는 이준익감독영화의 맨날 출연하시네요... 뭐 저야 좋지만 ㅎㅎ
솔직히 님은먼곳에 스토리도 좋고 이준익씨의 연출력도 빛을 바랬는데 지금 약간 고전중이네요 좀 더 선전해주면 좋겠네요 ㅎㅎ
[놈놈놈],[님은먼곳에] 우리나라 한국영화 모두 다 잘되었으면 좋겠네요
'다음주에 개봉하는 [다크 나이트]도 ㅋㅋ'
 2008/08/02   
쭈니 우리나라 관객들이 스토리를 중시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러한 이율 [놈놈놈]은 스토리의 부재로 욕을 먹고 있는 듯이 보이며, [님은 먼곳에]는 순이의 행동에 대한 이해 부족이 관객에게 욕을 하게끔 만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방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보고 왔는데 이 영화 역시 스토리의 부재로 꽤 욕을 먹을 듯이 보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경우는 스토리의 부재를 특수효과와 볼거리로 채워주는데 아직 우리 영화는 그런 면이 부족한 셈이죠.
암튼 저 역시 이들 영화를 재미있게 본 입장에서 좀 더 한국영화가 선전해주고, 관객들에게도 좋은 입소문이 많이 났으면 좋겠네요.
 2008/08/03   
에효.. 글쎄요.. 그렇게 해서 남편을 구했다..??  2009/01/02   
쭈니 아뇨... 남편을 구하지는 못했죠. 단지 자기 자신을 찾지 않았을까요? 남편에게 갇혀 지내던 그 수많은 나날들 속에서... 그녀의 자아여행이 아니었을까하는...  2009/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