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커크 드 미코
더빙 : MC 몽, 신봉선
개봉 : 2008년 7월 17일
관람 : 2008년 8월 4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휴가의 첫 미션은 웅이 돌보기.
올해 여름휴가는 구피와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구피의 외갓집으로 여행갈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그래서 구피와 처남과 함께 휴가 일정을 맞췄습니다. 그런데 구피가 회사의 사정으로 휴가 일정을 어긋나는 바람에 원래 계획이었던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의 여행 일정은 조정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월요일, 구피는 회사에 나가버렸습니다. 저 혼자 맞이한 첫 번째 휴가 날입니다. 만약 웅이만 없었다면 혼자 극장에 가서 영화를 실컷 봤겠지만 구피가 출근하여 없는 집엔 웅이가 쿨쿨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 첫 번째 휴가일정은 혼자 웅이 돌보기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아빠 놀자'를 입에 달고 살아서 일명 놀자세진으로 불리는 웅이와 하루 종일 단 둘이 함께 있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놀아줘야하기 때문인데 남자 아이라서 그런지 노는 것이 좀 과격합니다. 그래서 집에 사놓은 '마징가 Z' DVD도 보여주고 비디오 대여점에서 애니메이션을 빌려와 보여주며 휴식시간을 얻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웅이에게 극장에 가서 영화보자고 졸랐습니다.
극장에서 영화 보기만큼 효과적으로 시간도 보내고 웅이와 손쉽게 놀아주는 방법도 드물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저는 영화 봐서 좋고, 웅이와 힘겹게 놀아주지 않아서 육체적으로도 편하고, 웅이도 극장 나들이가서 좋고, 극장 나들이가면 제가 맛난 아이스크림과 간식거리를 사주니 좋고, 저도 좋고, 웅이도 좋은 일석이조의 방법인 셈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과연 극장에서 웅이와 함께 볼 영화가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웅이에게 [스페이스 침스]를 보러가자고 졸랐지만 원숭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웅이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맛난 아이스크림 많이 사주겠다는 말로 웅이를 겨우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웅이야, 영화 보러 가자.
어린이용 애니메이션답다.
[스페이스 침스]는 딱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애니메이션입니다. 사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월.E]처럼 어른이 봐도 결코 유치함이 느껴지지 않는 애니메이션도 많지만 [스페이스 침스]는 전혀 어른들의 눈높이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저는 시종일관 지루했습니다. 스토리 전개도 뻔히 눈에 보입니다. 세계 최초의 우주 원숭이인 할아버지의 후광으로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 문제아 침팬지 햄3세(MC 몽)가 외계의 별에서의 모험을 통해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아주 약간의 웃음과 아주 약간의 닭살 돋는 로맨스가 곁들여지며 아주 전형적인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외계별에서의 모험은 상상력 부재가 느껴질 정도로 별다른 아이디어가 보이지 않았으며, 악당인 외계인 독재자 작토는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표현함으로써 영화의 긴장감을 의도적으로 없앴습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웅이와 함께 극장에 간 구피의 조카인 초등학교 4학년생 여자아이는 참 많이 웃으며 이 영화를 즐기더군요. 하지만 영화 취향이 저와 비슷한 웅이는 '재미있었어?'라는 제 질문에 '모르겠어.'라며 대답을 회피할 정도로 이 영화에 대해 중간 입장을 보였습니다. 저와 많은 영화를 보며 영화취향이 비슷해진 웅이로써는 [스페이스 침스]가 긴장감이 부족한 재미없는 영화였을지도...
내가 좀 우스꽝스럽긴 하지.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빈곤했던 적이 있었나?
디즈니가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이후 여름 극장가는 쟁쟁한 애니메이션의 경합장이 되었었습니다. 디즈니의 아성에 드림웍스를 비롯한 다른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디즈니는 그들의 거센 도전을 픽사와 손을 잡고 정면 돌파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가 되며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제겐 언제나 행복한 선택의 고민을 안겨줬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뭔가 허전합니다. 드림웍스의 히트작 [쿵푸 팬더]가 이미 관객몰이를 했고, 픽사의 신작 [월.E]가 이번 주 개봉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허전합니다.
[도라에몽 : 진구의 마계대모험 7인의 마법사], [스페이스 침스], 그리고 이번 주 개봉하는 [케로로 더 무비 : 케로로 VS 케로로 천공대결전]까지 어린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지만 웅이는 물론이고, 어른인 저 역시도 함께 즐길 애니메이션은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며 저도 웅이와 함께 재미있게 즐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욕심이 과한 것일까요? 전 어린이 눈높이에만 맞춘 애니메이션이 아닌 어린이와 어른의 눈높이를 동시에 만족시켜줄 그런 애니메이션이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똑똑한 영웅 침팬지들과...
멍청한 인간들의 코믹 모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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