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테라모토 유키오
더빙 : 문남숙, 김정아
개봉 : 2008년 7월 17일
관람 : 2008년 7월 20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쭈니와 구피의 신경전 제 2라운드
지난 토요일 제가 카페 매니저로 활동하는 '네이버판타지게임 시즌 2'의 정모가 있었습니다. 카페회원들은 대부분 한국 프로야구를 죽도록 사랑하는 2, 30대 남성 회원이기에 만나면 함께 프로야구를 보고, 술자리를 갖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우천으로 프로야구가 취소되어 저녁 일찌감치 프로야구 이야기를 안주삼아 질펀한 술판이 벌어졌습니다.
모처럼 만의 토요일, 남편은 카페 모임이 있다고 나가버리고 홀로 웅이를 봐야했던 구피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남편은 새벽에 얼큰하게 취해 집에 들어와서 술주정을 부렸으니...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푹 자고 일어난 저는 구피의 분위기가 화났을 때와 같다는 사실을 눈치 챘습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수습하려고해도 불같은 성격의 구피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저는 그냥 구피의 화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구피의 복수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술로 인하여 속이 쓰렸지만 구피는 웅이에게만 아침 식사를 차려줍니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쓰린 속을 달래줄만한 그 어떤 음식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장국 끓여달라고 요구할 처지가 못 되기에 결국 저는 쫄쫄 굶은 채 웅이를 데리고 영화 보러 가자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웅이에게 영화도 보여주고,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책방에 가서 공룡 책도 실컷 보고, 그렇게 술로 인하여 시작된 구피와의 신경전 2라운드 첫째 날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참... 아무리 미워도 밥은 주면서 미워하지... 치사하게 밥을 굶기냐... 구피야... (참고로 그날 저녁도 굶었습니다. T-T;)
저 멀리 날아가 버린 내 아침밥...
도대체 언제 적 도라에몽이냐.
몇 달 전 케이블 TV에서 '도라에몽'이 방영하는 것을 보고 전 정말 오래된 애니메이션을 재방영하는 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도라에몽'을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도라에몽' 캐릭터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도라에몽'이 몇 십 년이 지난 요즘에도 계속 새로운 이야기가 첨부되며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림 자체가 상당히 옛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런데 이렇게 극장판이 개봉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개봉하는 [도라에몽 : 진구의 마계대모험 7인의 마법사]가 2007년 일본에서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했으며, 무려 27번째 '도라에몽'의 극장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역시 캐릭터의 힘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웅이도 '도라에몽'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웅이가 가지고 있는 '도라에몽' 장난감이라고는 '도라에몽'이 보트에서 앉아있는 플라스틱 싸구려 장난감 하나밖에 없기에 웅이가 '도라에몽'이라는 캐릭터를 알고 있고, 그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암튼 웅이와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미리 예매를 하지 않았다면 매진으로 인하여 헛걸음질을 할 뻔했습니다. 그 정도로 극장 안은 어린 아이들과 부모님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으며, 아이들은 모두 '도라에몽'에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이 어린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토종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로보트 태권 V'는 너무 거대한 프로젝트가 되어 버려서 신작을 기다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이 시점에서 '도라에몽'과 버금가는 우리 캐릭터 '아기 공룡 둘리'가 부활해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희들 내가 몇 살 인줄 알아? 내 나이가 벌써 마흔 살이야. 다음부턴 도리에몽 아저씨라고 불러.
웅이曰 : 이건 우리가 볼 영화가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환호는 영화의 중반부에서 갑자기 울먹임으로 바뀝니다. 마계 대마왕이 등장하고 머리카락이 뱀으로 되어 있는 메두사가 나오자 여기저기에서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웅이도 '아빠 무서워'라며 제게 매달리더군요. 전 '영화일 뿐인데 뭐가 무서워?'라고 웅이를 달래줬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웅이의 무섭다는 소리를 3번이나 들어야 했습니다.
분명 어른의 눈으로 본다면 마계 대마왕과 메두사는 애니메이션의 흔한 악당 캐릭터일 뿐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은 아닌가봅니다. 영화가 끝나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과는 달리 웅이와 같은 유치원생 아이들의 눈에는 아직도 무서운 기색이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니...
웅이와 영화를 보고나면 항상 묻는 것이 있습니다. '웅이야, 영화 어땠어?' 웅이는 어린아이답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줍니다. 재미있어, 재미없어. 라고 아주 직설적으로... 그런데 이번 웅이의 반응은 좀 달랐습니다. '아빠, 이건 우리가 볼 영화가 아닌 것 같아.' 이 이야기는 다시 말해 [도라에몽 : 진구의 마계대모험 7인의 마법사]가 웅이와 같은 유치원생에겐 적합하지 못하다는 웅이의 평인 셈입니다.
과연 그 무엇이 웅이게 이러한 평을 이끌어 냈을까요? 물론 마계 대마왕과 메두사의 무서운 모습이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2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게다가 평행우주까지 복잡하게 얽힌 영화의 스토리 라인도 웅이에겐 이해불가였을 것입니다.
전 어땠냐고요? 어렸을 때조차도 '도라에몽'을 본 적 없는 저로써도 당연히 추억이 담기지 않은 이 애니메이션이 지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도라에몽 : 진구의 마계대모험 7인의 마법사]는 웅이에게도, 저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애니메이션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그렇게 무서워?
만세! 영화가 끝났다.
아빠, 난 무서웠어.
난 지루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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