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7년 영화이야기

[인베이젼] - 평범한 SF스릴러밖에 되지 못한 이유는?

쭈니-1 2009. 12. 8. 20:25

 

 



감독 : 올리버 히르비겔
주연 : 니콜 키드먼, 다니엘 크레이그
개봉 : 2007년 9월 20일
관람 : 2007년 9월 20일
등급 : 15세 이상

구피가 변했다.

추석 연휴가 5일이나 되지만 오히려 그 긴 연휴동안 영화를 못 볼 것이 분명하기에 저는 연휴가 시작되기 전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미리 보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영화들이 개봉하는 목요일, 구피에게 전화해서 오늘 늦겠다고 통보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구피는 빨리 들어오라며 영화를 향한 제 굳은 열의를 반박에 꺾어버리더군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이번 주 개봉 영화는 보기 틀렸구나하고 체념을 한 그 순간 구피는 다짜고짜 '우리 영화 보러 갈래?'라고 묻습니다. 구피가 영화 보기를 제안한 시간은 거의 밤 9시였고, 그 시간에 영화를 본다면 피곤함 때문에 분명 다음날 출근에 문제가 생기기에 구피는 절대로 평일 늦게 영화 보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제게 먼저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구피의 의외의 제안에 저는 반신반의하며 여러 번 '진짜?'라고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너무 좋아 옷 챙겨 입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늦은 밤에 구피와 극장으로 향했고 하필 그날 본 영화가 사람들이 외계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하나둘씩 변해간다는 내용의 SF스릴러 [인베이젼]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혹시 구피도?'라며 말도 안 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구피의 한마디 덕분에 구피가 순순히 영화를 보러간 이유가 자명해지며 의심은 벗겨졌답니다. 그 한마디가 뭐였냐고요? 그것은...
'이번 추석 때 부침개 열심히 부쳐줄 꺼지?'였답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시댁에 가서도 누워서 빈둥거리지 말고 일을 도와달라는 사전 포섭인 셈이죠. 역시 명절이 무섭긴 무섭나봅니다. 구피도 저렇게 변하게 만드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남성 여러분 명절 때 술만 마시지 말고 여성분들 좀 도와줍시다. (전 이번 추석 때 마음만 열심히 구피를 도와줬답니다. 미안하다 구피야! ^^;)


 

 


벌써 네 번째 영화이다.

[인베이젼]을 보기 전 간단한 줄거리를 구피에게 이야기해줬더니 구피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내용인데...'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구피가 그런 반응을 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 [인베이젼]은 잭 피니의 SF 소설 [신체 강탈자](The Body Snatchers)의 네 번째 버전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영화는 1956년 돈 시겔 감독의 [신체 강탈자의 침입]이며, 두 번째 영화는 1978년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외계의 침입자], 세 번째 영화는 1993년 아벨 페라라 감독의 [바디 에이리언]입니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수많은 SF 영화와 만화 등에서 비슷한 소재를 수없이 사용했기에 '신체 강탈'이라는 소재는 더 이상 새로운 소재를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연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은 무슨 의도로 새로울 것이 없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들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무슨 이유로 톱스타인 니콜 키드만과 다니엘 크레이그는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에 선뜻 출연한 것일까요?
이러한 것들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역시 원작과 전작들을 살펴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과연 [신체 강탈자]의 그 무엇이 네 번이나 영화화될 정도로 매력적이었나? 앞의 영화들은 [신체 강탈자]를 통해 어떤 메시지의 영화를 만들어 냈나?
돈 시겔 감독의 [신체 강탈자의 침입]은 조용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냉전이 한창이었던 1950년대 미국에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반영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50년대 미국사회를 멍들게 하였던 매카시즘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외계의 침입자]는 전작의 조용한 마을에서 벗어나 샌프란시스코라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도시화되어가면서 규범지어지고 획일적으로 변해가는 사회의 공포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벨 페라라 감독의 [바디 에이리언]은 평범한 가족이 군부대에서 잠시 살게 되며 겪는 공포를 그림으로써 미국이 일으키고 있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베이젼]은?


 

 


넌 무엇을 말하고 싶니?

[인베이젼]이 개봉 당시 미국의 평론가들은 거의 혹평 일색이었으며 그 중 시카고 선타임즈의 로저 이버트는 '잭 피니의 SF 클래식 소설에 대한 네 번째이자 가장 수준 낮은 영화판... 앞서 만들어진 세 편의 영화들은 모두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었지만, 이 영화는 현재의 시대 상황을 아무것도 비유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영화가 현재의 시대 상황을 비유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신체 강탈자]를 영화화하기 위해선 시대 상황을 비유해야 한다고 정의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은 앞의 세 편의 영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 번째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면 그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신체 강탈'이라는 소재는 결코 신선한 소재는 아니었으니 원작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뒷받침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본 [인베이젼]은 미국 평론가들의 평처럼 그 어떤 새로운 해석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인베이젼]은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외계의 침입자]처럼 대도시를 영화의 무대로 선택하였지만 획일화된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하기엔 뭔가가 부족해보입니다.
영화 자체는 무난하다할 정도로 SF스릴러 영화의 재미에 충실하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인형처럼 예쁜 니콜 키드만의 무한한 모정이었습니다. 니콜 키드만은 중년 여배우의 성공 모델인 조디 포스터식 강한 어머니의 모습을 무작정 따라한 듯이 보이며, 니콜 키드만의 찰랑찰랑한 금발 머리는 강한 어머니의 모습과 대조적이어서 조금 특이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인베이젼]이 고전적인 원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킬링타임용 SF스릴러밖에 되지 못한 이유입니다.
영화제작 도중 제작사에서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의 [인베이젼]이 마음에 안 들어 워쇼스키 형제로 하여금 대본을 다시 쓰게 했고, 제임스 맥타이거 감독이 새로운 장면들을 대규모 재촬영하게 함으로써 최종본이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의 [인베이젼]을 평가하려면 그의 온전한 감독판이 나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건 극장판 [인베이젼]은 원작의 명성에 비해선 약간 실망스러운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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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허니
오옹..비슷한소재의 영화가 꽤있었군요.. 신체강탈이라니..바디에어리언만 말씀하신영화중에본거같은데..기억이 안나니 재미없었나봅니다..저한텐.. 어둠의경로로 돌아다니던데..화질이구려서 볼까말까망설이는중인데..쩝..  2007/10/05   
쭈니 신체강탈은 좀비와 더불어 꽤 오래된 공포소재죠. ^^
[바디 에어리언]은 그리도 신체강탈 소재중 꽤 걸작으로 알려진 영화랍니다.
뭐 오래전 영화라 화질이 구리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
 2007/10/06   
엘잠
소재자체는 뛰어나긴 한데 '니콜 키드먼'이란 배우의 원맨쇼 영화를 지극히 봐왔기에 보기도 전부터 편견이 생겨버리더군요.

TV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10분정도 간략하게 줄거리 요약하는것만 봐도 영화를 전부 본것 같고 결과따윈 궁금하지도 않은 영화들;;;
 2007/10/22   
쭈니 뭐 그렇죠 뭐... ^^;
니콜 키드만의 원맨쇼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TV영화소개프로그램은 정말 뛰어난것 같아요.
한번 보면 왠만한 영화들은 안봐도 본것만 같은 느낌이...
그래서 간혹 우리 구피는 안본 영화도 봤다고 우기곤 한답니다. ^^:
 2007/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