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석훈
주연 : 봉태규, 정려원
개봉 : 2007년 9월 12일
관람 : 2007년 9월 21일
등급 : 15세 이상
명절엔 코미디 영화를?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금요일 저녁. 전날 [인베이젼]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구피는 제게 또다시 영화를 보러가자며 유혹합니다. 이틀 연속 구피와 한밤중에 영화를 보게되다니 제겐 뜻밖의 행운이지만 막상 극장 앞에서 예상치못한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간대에 곽경택 감독의 [사랑]과 김상진 감독의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그리고 [두 얼굴의 여친]이 제가 영화표를 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번주 기대작 순위 2위에 오른 [사랑]을 선택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제 마음은 [사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은 바로 코미디라는 장르입니다. 명절엔 코미디 영화가 강세라고 합니다. 비록 이번 추석엔 신파멜로 [사랑]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제가 [사랑]이 아닌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과 [두 얼굴의 여친]에 더 보고 싶었던 것을 보면 그런 통설이 결코 거짓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암튼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과 [두 얼굴의 여친] 사이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젊은 감성의 코미디 [방과후 옥상]의 이석훈 감독을 믿기로하고 [두 얼굴의 여친]을 골랐습니다. 구피는 '이런 영화는 비디오로 보면 되지 않아?'라고 반문했고, 저 역시 '그렇지'라고 맞장구를 쳤지만 이상하게도 그날만큼은 기분 좋은 코미디 영화를 봐야겠다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던 겁니다. 역시 명절을 앞뒀기 때문일까요?
[방과후 옥상]이 너무 좋았다.
제가 코미디 영화의 달인이라는 김상진 감독의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을 제치고 [두 얼굴의 여친]을 고른 이유는 바로 [방과후 옥상]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여름에 봤던 [방과후 옥상]은 제게 의외의 재미를 안겨주며 절 즐겁게 했었습니다.
[방과후 옥상]덕분에 저는 봉태규라는 배우를 재평가하였으며, 이석훈 감독의 영화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석훈 감독의 차기작이 [방과후 옥상]의 속편인 [퇴근후 옥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두 얼굴의 여친]이 등장해서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암튼 [두 얼굴의 여친]은 [방과후 옥상]의 그 재기발랄함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영화입니다. 주인공을 맡기엔 너무 독특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봉태규라는 젊은 배우가 있으며, 만화적인 상상력과 시종일관 관객을 즐겁게 만드는 코미디가 함께 버무러져 있으니 말입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두 얼굴의 여친]은 [방과후 옥상]보다는 [엽기적인 그녀]에 더 가까웠고, 새로운 상상력보다는 슬픈 코미디라는 기존의 법칙을 따라하여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얼굴의 여친]이 재미있었던 것은 이 영화엔 젊음이 있었고, 무작정 [엽기적인 그녀]를 따라했다고 하기엔 탄탄한 스토리 라인이 뒷받침되어 있으며, 슬픈 코미디라고 싫어하기엔 매력적인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찌질한 그 녀석과 엽기적인 그녀가 만났다.
시작은 평범합니다.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한심할 정도로 찌질한 구창(봉태규)과 귀엽다고하기엔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많은 아니(정려원)의 만남은 마치 [엽기적인 그녀]의 그 전설적인 지하철 장면이 연상될 정도입니다. [엽기적인 그녀]의 지하철 오바이트 장면은 이후 바이킹 오바이트 장면으로 이어지니 어쩌면 이석훈 감독은 처음부터 [엽기적인 그녀]을 상당히 의식하며 영화를 만들었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렇게 평범한 시작과는 달리 [두 얼굴의 여친]은 영화가 진행되며 점점 새로운 재미거리를 제시합니다. 아니의 내면에 또다른 인격인 하니가 등장하며 영화는 점점 흥미진진하더니 결국 [엽기적인 그녀]를 넘어서는 엽기적인 하니를 만들어 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니의 과거에 관객이 납득할만한 아픔을 심어 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슬픈 코미디로 전환시키는 이석훈 감독의 역량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이 안되네요.
[엽기적인 그녀]의 아류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점 원본을 뛰어넘는 재주를 부리더니만 결국엔 [엽기적인 그녀]와는 전혀 다른 영화를 완성시키는 이석훈 감독. 과연 그의 영화를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봉태규, 정려원의 다음 영화도 기대하며...
여기에 포스트 차태현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봉태규의 물오른 코미디 연기와 이젠 그녀가 가수였는지조차도 잘 기억이 안날 정도로 배우의 길에 안착한 정려원의 귀엽고도 엽기적인 연기는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킵니다.
[엽기적인 그녀]가 곽재용 감독의 연출력보다는 차태현, 전지현의 코믹 연기 덕분에 흥행에서 더욱 성공을 거둘수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두 얼굴의 여친]은 이석훈 감독의 연출력과 봉태규, 정려원의 코믹 연기가 버무러져 영화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냅니다.
[방과후 옥상]때에도 느꼈지만 봉태규는 이제 '독특한 배우'라는 이미지를 뛰어넘어 그의 존재 자체로도 영화를 기대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섰으며, 정려원은 TV드라마에 이어 영화에서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인상을 깊게 심어 주었습니다.
[두 얼굴의 여친]은 오랜만에 추석이라는 명절 속에서 하하호호 즐기며 젊은 감독과 젊은 배우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며 흐뭇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는 그런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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