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허진호
주연 : 임수정, 황정민, 공효진
개봉 : 2007년 10월 3일
관람 : 2007년 10월 9일
등급 : 15세 이상
10월... 쭈니는 바쁘다.
10월의 첫째 주를 방통대 출석 수업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저녁 6시 땡 치면 칼 퇴근하여 저녁도 굶으며 방통대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 삼각 김밥과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밤 11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죠.
방통대 출석 수업이 끝나고 나니 이번엔 회사 창립기념일과 야유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리팀장이라는 버거운 직책 탓에 창립기념일과 야유회 준비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둘째 주에 야유회를 다녀오면 곧바로 셋째 주에는 방통대 중간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 과목을 시험 보는데 두 과목은 주관식 시험이고, 한 과목은 과제물 제출입니다. 일주일동안 벼락치기로 공부와 과제물을 동시에 준비해야 합니다.
방통대 중간시험을 끝내고나면 마지막 넷째 주에는 방통대 출석시험을 봐야합니다. 다행히 출석 수업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아 기본적인 공부는 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열심히 필기한 것을 토대로 역시 일주일동안 벼락치기 공부를 해야 합니다.
달력에 빼곡하게 일정을 적고나니 한숨만 절로 나옵니다. 어떻게 단 한 주도 쉬는 날이 없이 이런 완벽한 일정이 잡혀있는 것인지... 마음이 급해서인지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공부도 안 됩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급해도 마음의 평화부터 되찾자고. 그 핑계로 오랜만에 영화를 혼자 보고 왔습니다. ^^
나도 이젠 알고 있다. 사랑은 변한다는 사실을...
마음의 평화를 되찾자는 핑계로 영화 보기에 나선 저는 성룡 주연의 코믹액션 [러시아워 3]와 [봄날은 간다]로 제 마음을 후벼 팠던 허진호 감독의 [행복]을 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당연히 영화를 보기위한 취지를 위해선 [러시아워 3]을 선택해야 옳았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아픈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의 신작 [행복]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두 편 전부 보기로 결심했지만 [행복]을 보고나서 [러시아워 3]는 보지 못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답니다. [행복]의 여운을 잃어버릴까봐.
[행복]의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봄날은 간다]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제 영화 이야기에서 여러 번 밝혔지만 [봄날은 간다]는 제게 '사랑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라는 아픈 사실을 가르쳐준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엔 진정한 사랑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영원불멸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우연하게도 [봄날은 간다]를 본 직후 저는 제 생애 첫 실연을 당했고 영화 속의 상우(유지태)처럼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울부짖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6년이 흘렀습니다. 실연이 아픔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저는 단 1년 만에 그 실연의 아픔을 훌훌 털어버렸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여 이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사랑은 변하지 않아'라고 울부짖던 저 역시도 새로운 사랑을 찾았으니 사랑은 변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행복]은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행복]은 [봄날은 간다]의 또 다른 버전입니다. 허진호 감독은 여전히 너무나도 쉽게 변하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화법은 [봄날은 간다]에 비해 더욱 과감해 졌습니다.
너는 내 운명이라던 그 녀석이 변했다.
[행복]은 술과 담배에 찌든 방탕한 나날을 지내다가 간 경변을 앓게 된 영수(황정민)가 시골 요양원 희망의 집을 찾으면서 시작됩니다. 폼 나게 운영하던 클럽은 친구의 손에 넘어갔고, 사랑했던 수연(공효진)은 그에게 이별을 통보합니다. 그렇기에 희망의 집에 당도한 그는 오히려 아무런 희망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의외의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희망의 집에서 중증 폐질환 환자이지만 밝고 낙천적인 은희(임수정)를 만난 것입니다. 서울에서의 방탕한 생활에 찌들었던 그는 은희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빠져들고 은희와 함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행복의 삶에 빠져듭니다.
만약 [행복]이 영수와 은희의 사랑과 은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영화를 끝맺음했다면 이 영화는 보통의 최루성멜로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허진호 감독은 그들의 사랑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은희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은 영수는 서울에서의 화려한 삶과 수연과의 사랑을 되찾고자 은희를 버립니다. [봄날은 간다]에서 버림을 받은 쪽이 남자였다면 [행복]은 여자라는 것만 바뀌었을 뿐, 기본적인 것은 같은 셈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황정민이라는 배우입니다. [봄날은 간다]에서도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를 매정한 배신녀로 설정했던 허진호 감독은 [너는 내 운명]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연기했던 황정민을 배신남으로 캐스팅하며 영화적인 재미를 살렸습니다. 이미 [사생결단]으로 나쁜 남자 연기도 잘 어울림을 증명했던 황정민은 허진호 감독의 기대에 부흥하듯 [너는 내 운명]과 [사생결단]의 사이를 오고가며 영수라는 캐릭터를 표현합니다.
아직도 사랑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믿어야하나?
하지만 허진호 감독은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는 [봄날은 간다]와는 비교되는 커다란 변화를 시도합니다. 그것은 끝까지 지고지순한 사랑을 간직하는 은희의 모습과 그런 은희의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영수의 마지막 울부짖음입니다. 그렇기에 [행복]은 [봄날은 간다]와 비슷한 영화의 전개를 보이면서도 마지막에 가서는 [봄날은 간다]와 판이한 끝맺음을 선택한 셈입니다.
[행복]이 [봄날은 간다]에 비해 쿨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아련한 여운이 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나 역시도 영수를 결코 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영수라도 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은희 대신 돈 많고 화려한 수연을 택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영수의 배신 앞에서 '내가 더 잘 할께'라고 애원하던 은희의 모습이 저 역시도 너무나도 아프고 미안 했습니다. 게다가 임수정의 천사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운 연기 앞에서 영화를 보는 제 죄책감은 더욱더 커져만 갔습니다.
결국 영수는 울음을 터트립니다. 은희의 영원한(병에 걸린 그녀에겐 영원할 수밖에 없는) 사랑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은희에 대한 죄책감이 마지막 눈물의 원천일 것입니다. 그러한 영수의 깨달음을 보며 사랑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이 어쩌면 다른 어떤 이들에겐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허진호 감독은 제게 병주고 약주는 군요. 언제는 사랑은 변한다며 제 마음을 후벼 파더니, 이번엔 은희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며 사랑이 영원할 수도 있다고 달래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IP Address : 211.201.226.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