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곽경택
주연 : 주진모, 박시연, 김민준, 주현
개봉 : 2007년 9월 19일
관람 : 2007년 9월 28일
등급 : 15세 이상
자유의 시간을 얻었지만...
구피가 1박2일로 회사에서 야유회를 갔습니다. 의외의 자유 시간을 획득한 저는 웅이도 외면하고 밤새 영화를 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계획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영화를 보기위해 CGV 홈페이지에 접속한 저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가 안본 영화는 달랑 세편뿐, [사랑],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그리고 [상사부일체]였습니다.
영화를 못 본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건만 어떻게 안 본 영화가 이리도 없는지 의아했지만 알고 보니 이번 주는 새로운 영화가 개봉을 하지 않았더군요. 매주 새로운 영화가 꼬박꼬박 많게는 10여 편 이상 개봉하더니만 왜 하필 자유의 시간을 얻은 이번 주는 개봉을 하지 않았는지...
암튼 저도 운이 참 없습니다. 바쁠 땐 기대작들이 많이 개봉하여 안타깝게 만들더니, 이렇게 맘 놓고 영화를 보려하면 볼 영화가 없어서 허탈하게 만드니 말입니다. 할 수 없이 [사랑]과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이라도 보고 자유의 시간을 아쉽지만 끝내려 했지만 허탈해진 마음은 쉽게 잡히질 않네요. 결국 [사랑]만 보고 처남과 집에서 맥주 마시며 자유의 시간을 보내고야 말았답니다.
곽경택 감독이 사랑을 말하다.
극장가에서 이번 추석시즌의 최종 승리자로 확정된 [사랑]은 분명 제겐 기대작이었지만 막상 영화를 보려고 맘먹으면 이상하게 땡기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이 영화의 신파가 싫었던 겁니다. 그것도 다른 이도 아닌 곽경택 감독의 신파라니...
곽경택 감독은 남성영화의 대표 감독입니다. 한때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의 김성수 감독이 남성영화의 대표감독으로 맹활약을 벌였지만 요즘은 활동이 뜸한 틈을 타서 곽경택 감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곽경택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을 보면 굵직한 선이 돋보이는 영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의 초기작인 [억수탕]과 [닥터 K]를 제외하고 [친구]에서부터 시작하여 [챔피언], [똥개], [태풍]까지 그는 남자들의 거친 이야기에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갑자기 사랑이야기를 꺼내들었습니다. 김성수 감독이 [영어완전정복]으로 남성영화감독의 이미지를 탈피하려 노력했던 것처럼, 곽경택 감독 역시 [사랑]으로 남성영화감독이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려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고편을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결국 [사랑]은 신파와 마초의 결합이라는 상당히 곽경택다운 사랑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마초의 세계에서 신파가 살아남는 법
신파와 마초의 결합... 이것은 [친구]에서 우정 대신 사랑을 넣은 것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결국 [친구]의 엄청난 흥행성공 이후 [챔피언], [똥개], [태풍]이 흥행에서 실패를 거듭하자 곽경택 감독은 다시 [친구]의 세계로 귀환하고 말았던 겁니다.
하지만 무작정 [친구]로 귀환하기에는 좀 부끄러웠는지 [친구]의 주요 테마인 우정을 사랑으로 바꾸는 센스를 발휘합니다. 그 결과 [사랑]은 [친구]처럼 부산이 영화의 무대이고, 캐릭터들은 거친 경상도 사투리를 내뱉습니다. 거친 사내들의 칼부림이 자주 등장하고, 가슴 아픈 비극적 라스트 역시 빼놓지 않고 준비되어 있습니다.
신파라는 이 영화가 애초부터 내세운 장르가 무색할 정도로 [사랑]은 마초적인 거친 액션으로 쉴 새 없이 관객들을 몰아 부칩니다. 그 결과 [사랑]에서의 사랑은 뒷전이 되어 버립니다. 애초에 주진모에 비해 연기력이나 인지도가 떨어지는 박시연이 정미주를 맡았기 때문인지 미주는 단지 채인호(주진모)의 비극적인 남성적인 삶의 액세서리에 불과해 보입니다.
거친 마초의 세계에서 가냘픈 신파가 살아남는 법은 이렇게 정면에 내세워지는 것보다는 뒤에 숨어서 양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제목과 다른 영화의 분위기가 낯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곽경택 감독의 영화라는 것 때문에 결국에서는 '그럼 그렇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창조적이지 못한 라스트 비극은 도대체 왜?
시종일관 [친구]를 연상시키는 [사랑]은 그 속에서 신파적인 사랑이 양념 역할을 하며 [친구]와는 조금은 색다른 영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호감적인 반응은 영화의 후반부에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그것은 상상력이 부족한 라스트의 비극 때문입니다.
[친구]에서처럼 장동건이 마지막에 내뱉었던 그 멋진 비극적인 대사는 아니더라도 [사랑] 역시 뭔가 마초적인 영화의 분위기에 맞게 멋진 마무리를 관객에게 선사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곽경택 감독의 상상력은 비극적인 우정의 마지막 비극은 멋지게 포장할 줄 알았지만 거친 남자와 가냘픈 여자의 비극적인 사랑의 최후를 멋지게 꾸며내는 능력은 부족했나봅니다.
결국 곽경택 감독이 선택한 것은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의 고전인 '로미오와 줄리엣'식의 마지막 비극입니다. 그것은 결코 좋은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슬픈 사랑이라면 제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곽경택 감독의 선택이 제겐 너무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곽경택 감독은 [친구]의 성공을 [사랑]에 덧입히기 위해 무진 애는 썼지만 마지막 창조적이지 못한 라스트 때문에 결코 성공적으로 완성해내지는 못했습니다. [친구]가 [사랑]이 되기 위해선 [친구]보다 멋있는 라스트의 비극을 준비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초의 세계에서 신파가 살아남지 못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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