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7년 영화이야기

[즐거운 인생] - 당신의 열정은 살아 있습니까?

쭈니-1 2009. 12. 8. 20:23

 

 



감독 : 이준익
주연 :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 장근석
개봉 : 2007년 9월 12일
관람 : 2007년 9월 13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그날, 그곳에 [즐거운 인생]이 있었다.

회사에서 추계 야유회 장소를 답사하기 위해 경기도 가평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서울을 떠나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잠시라도 있었더니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고, 가슴도 확 트이더군요. 매일매일 오지는 못하더라도 가족들과 함께 자주 이렇게 좋은 곳으로 놀러 다녀야할텐데...
답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평에서 리조트 영업 직원이 남양주까지 자가용을 태워줬고, 남양주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내부순환도로가 많이 막히긴 했지만 김포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평소 퇴근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업무를 마친 셈입니다.
업무를 마쳤으니 당연히 웅이에게로 달려가야 할 테지만 하필 제 눈엔 CGV공항이 눈에 띄었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저 역시 극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뭐에 홀린 듯이 극장 앞 매표소에 서고 말았습니다.
그날 제가 본 영화는 [즐거운 인생]입니다. 일주일전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보기 직전에 포기했어야하는 아픈 기억이 있는데, [즐거운 인생]은 운 좋게도 제가 극장에 간 시간에 딱 맞춰 절 기다려주고 있더군요. 역시 극장에서 볼 영화는 하늘에서 정해주나 봅니다. ^^  


 

 


그들은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

제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즐거운 인생]을 보려고 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내 이야기 같기 때문입니다. 그 찬란했던 젊은 시절 다 보내고 노땅이 되어서 뒤늦게 열정을 불태우겠다고 애쓰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인생]의 기영(정진영), 성욱(김윤석), 혁수(김상호)가 그러합니다. 그들은 결코 좋은 아빠, 멋진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은행에서 퇴출당하고 학교 선생인 아내에게 용돈을 타 쓰고 있는 백수 아빠 기영은 경제적인 능력이 제로입니다.
성욱과 혁수도 사정이 그리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욱은 회사에서 짤리고 낮에는 퀵서비스,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아내는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자꾸 늘이려하고 있으며 그것은 고스란히 성욱에게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결국 성욱은 말하고 맙니다. 얘들 학원 모두 그만 다니게 하라고...
기영, 성욱에 비해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혁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집 팔아 아들의 조기유학을 위해 아들과 아내를 캐나다로 보낸 그는 소위 기러기 아빠입니다. 하지만 캐나다의 아내와 자식은 그를 잊습니다. 어느 순간 그는 단지 생활비를 대주는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고 말죠.
그런 기영, 성욱, 혁수가 친구의 장례식장에 모입니다. 젊었을 때의 열정을 모두 버렸으나 좋은 아빠, 멋진 남편이 될 수 없었던 그들이 끝까지 열정을 불태웠던 친구의 장례식장에 모인 겁니다.


 

 


밴드? 그걸 왜하는데?

기영, 성욱, 혁수와는 달리 끝까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었던 상우의 장례식장. 그곳엔 상우의 아들 현준(장근석)이 있었습니다. 가정을 등한시하고 자신의 열정을 위해서만 한평생을 살다가 죽은 아버지에 대한 냉소와 증오만 가득 남은 현준만이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영, 성욱, 혁수와는 달리 가정이 아닌 열정을 택했던 상우는 행복했을까요? 젊었을 때 모든 것을 바친 음악에 마지막까지 매달린 상우는 행복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결코 행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역시 좋은 아빠, 멋진 남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떠나버린 아내와 자신을 미워하는 아들 사이에서 그 역시 아파하고 슬퍼했기 때문입니다.
상우의 죽음과 함께 자신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아직 열정이 살아 꿈틀거린다는 것을 알게 된 기영, 성욱, 혁수는 다시 밴드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족들은 묻습니다. ‘밴드? 그걸 왜하는데?’
좋아서, 하고 싶어서 그들은 밴드를 하지만 이미 그들 삶의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는 가족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기영의 아내는 남편이 무능력한 실업자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으며, 성욱의 아내는 남편이 예전처럼 뼈 빠지게 일해 아이들 교육비를 많이 벌어다주길 원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남편의 밴드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거리에 불과합니다. 슬프지만 그것이 현실이며, 그것이 중년 남자들의 모습입니다. 열정을 불태우는 것마저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홀로 선 모습이...


 

 


너무 낙천적인 결말 앞에서...

결국 이 영화는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코 좋은 아빠, 멋진 남편이 아닌 그들이 오히려 자신의 열정을 뒤늦게 불태우며 더욱더 나쁜 아빠, 나쁜 남편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불행은 혁수에게만 일어날 뿐 영화는 오히려 성인 판타지의 낙천적인 결말로 향해 치닫습니다.
과연 저런 결말이 가능할까요? 물론 해피엔딩을 맞이한 저는 영화가 끝나고 흥겨움에 젖어 영화의 마지막 엔딩 타이틀곡을 흥얼거렸지만 과연 20년 만에 밴드를 다시 시작한 그들이 홍대클럽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라이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가족들에게마저 인정받으며 좋은 아빠, 멋진 남편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현실에서 가능할까요? 뭐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참, 낙천적이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낙천적인 결말이 있었기에 영화를 보며 웃을 수도 있었고, 영화를 보고나서 [드림걸즈]이후 오랜만에 OST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며, 영화를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의 낙천적인 결말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그들의 열정이 실패로 끝났다면 전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을지도...


 

 


이 글을 읽는 바로 여러분들이 나의 열정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좋은 아빠, 멋진 남편이 되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저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며, 그 열정이 절 극단적으로 나쁜 아빠, 나쁜 남편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회사 끝나고 저녁식사를 포기하면서 영화를 보고, 밤잠을 포기하면서 영화이야기를 쓰며 저는 이렇게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글을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시며,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셔서 제 열정은 점점 더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경제적인 면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영화에 대한 제 열정에 '그걸 왜 하는데?'라고 묻지 않는 현명한 아내 구피가 있기에 저는 더욱더 행복합니다.
'밴드? 그걸 왜하는데?'라고 물었던 성욱의 아내는 '내가 하고 싶어서'라는 성욱의 대답에 발끈합니다. '나 역시 하고 싶은 일 참아가며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라는 그녀의 항변에 '너도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라는 차가운 대답만이 돌아옵니다.
맞습니다. 남자들만이 열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자들도 분명 열정이 있었을 것이며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열정을 잊고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이겠죠. 하고 싶은 것을 하기위해 집을 나간 아내 때문에 고생하는 성욱의 모습을 보며 '열정도 적당히 눈치 보며 불태워라'는 기영의 충고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즐거운 인생]을 본 후 바로 또 한편의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적당히 눈치 보며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IP Address : 211.226.191.121 
길가던행자
날씨관계로 벌초는 취소.....내일 어머니랑 같이 영화를 보러가게 됐습니다아~!ㅇㅅㅇ/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즐거운 인생보다는 마이파더가 끌리시는듯 =ㅅ=..안돼에!!!  2007/09/14   
길가던행자
두편을 모두보신 쭈니님 감상은........즐거운인생vs마이파더
어떤게 날까요 =ㅅ=?
 2007/09/14   
쭈니 [즐거운 인생]은 제목 그대로 보고나면 마음이 즐겁고, [마이파더]는 보고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물론 두 영화다 좋은 영화이긴 하지만 감동을 눈물을 원한다면 [마이파더], 웃음을 원하다면 [즐거운 인생]이 제격일듯... ^^
 2007/09/14   
액션영화광
노래 너무좋아요... 쭈니님 말대로 [마이파더]는 좀....
[즐거운 인생] 아직 성인이 되지않아 인생이 잘은 모르겠지만
뭐 가보면 알겠죠... 그런데... 질문요...

혁수가 공항에서 아내한테 가려다가 다시 오잖아여...
그리고 그때 세남자가 모두 모여서 타이어를 중심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제목을 아시나여....???????????

끝까지 노래할거야~~~ ^^
 2007/09/15   
쭈니 제목이 '즐거운 인생'일 겁니다.
영화 사이트에 가면 뮤직비디오가 있더군요.
저도 가끔 그 뮤직 비디오를 보며 혼자 흥얼거린답니다.
언젠가 노래방에 그 노래가 나오면 한번 불러볼려고요. ^^
 2007/09/16   
소라빵
아아..ㅇㅅㅇ;;
이 영화.. 전 안갔지만.. 저희 누나가 가서 스텝도와주기도 하고, 영화에도 출연을..(물론 관객으로 대사하나없지만..)
아마 저 영화에서 노래(?)하는 장면에서 보다보면.. 불빛에 저희누나가 보인다고 하더군요..(맨 앞에서 해서)
어째뜬.. 한국에 다시 가면..
맨 처음으로 빌려볼것이 이것같습니다..;;
(덧글쓰다보니 영화에 대한 예기가 하나도 업는..-ㅁ-;;)
 2007/09/16   
쭈니 멋지네요.
한 영화의 스텝으로, 그리고 출연자로 이름을 올린다는 것... 무척이나 멋진 일 같습니다.
아직 제 열정을 그런 것에는 미치지 않앗기에 그냥 이렇게 후방에서 글을 쓰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언젠가는 저도 영화 엔딩크레딧에 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
 2007/09/17   
길가던행자
아악!!!즐거운 인생 너무 재밌게봤어요~ㅋㅋ 말그대로 즐거운 인생으로 끝나더군요~개인적으로 해피엔딩을봐야 뒷기분이 깔끔하다는 ㅋㅋ...인상깊게 본 장면이 많지만 특히 꼽으라면 눈물의 "불놀이야" 그리고 입으로 기타소리내고 타이어 드럼삼아 3이서 노는장면 마지막으론 역시 즐거운인생 부르는 모습!!!!!그리고 이영화는 어깨쳐진 중년남성들이 품은 꿈들의 화려한 부활도 다루고 있지만 친구3명이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다시금 일어나는 모습이 너무도 멋지고 부러웠어요 ;ㅁ;....그리고 배우들의 연기(특히 정진영의 표정연긴 클~)도 좋았구요~~같이 보신어머니도 만족하신듯 ㅋㅋ 영화표값이 안아까운 영화였습니다!!ㅇㅅㅇb!  2007/09/17   
ssook
내내 여기 주제곡을 흥얼흥얼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무지무지 신나더라구요............
아저씨들이 기타잡고 드럼치며 노래하는 것도 신나고, 무엇보다 장근석군........참 잘 컸네요.....ㅋㅋㅋ
친구랑 내내 그 얘기만 하다 왔어요....ㅡㅡ;;
뭐 성격이나 인성같은건 화면을 통해 알 수는 없지만......생긴것만은.......
ㅋㅋㅋ
여튼 [라디오 스타]때도 그랬지만...... 이 영화도 저를 참 기분 좋게 만들어줬어요..........ㅎㅎ
 2007/09/18   
쭈니 이준익 감독은 그런 한물간 남자들의 이야기에서 능력을 발휘하나봅니다.
[왕의 남자]는 오히려 의외의 영화가 되어 버렸고,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같은 영화가 이젠 이준익표 영화로 자리매김할듯... ^^
 2007/09/18   
액션영화광
ㅎㅎ 즐거운 인생 노래 다 외웠다....
[정진영]
난 잃어 버렸지. 오래전 푸른하늘 아래 뜨겁던날을
이제는 일어나~~ 나의 꿈 찾아서 갈테야~

[김윤석]
세상에 던저진 내 가슴을
숨 죽인채 길들여져만왔지

[김상호]
내 손을 잡아 지친 내 친구야.
구름 저편에 태양이 비추잖아...

[다같이]
이젠 날아가는 거야. 하늘끝까지
그래 노래를 하는거야. 즐거운 나의 인생아

그 밑 가사는 하두 많이 나와서^^(혼자 쓴거임)
 2007/09/18   
쭈니 노래 자체가 좋긴 하지만 가사를 가만히 음미해보니 정말 공감이 가네요. ^^  2007/09/19   
그레고리
잔잔한 감동으로 괜찮게 본 영화!!
노래도 참 좋았고 ..
 2007/09/23   
쭈니 네 정말 노래도 좋았고, 큰 감동은 없었지만 기분 좋게 볼 영화였습니다. ^^  2007/09/23   
다크
1998년에 밴드 생활을한 친구가 있는데,
그친구왈 "1980년대 밴드의 테크닉이 그대로 살아있더라."
영화 보는 동안 즐겁게 보고 왔습니다.
밴드쪽에 지식이 조금만 있으신 분들이시라면, 정말 재밌게 보실수 있으실듯.
 2007/09/25   
쭈니 밴드... 멋있군요.
저도 대학다닐때 음악 동아리에서 스카웃 제의가 있었답니다. 보컬로...
하지만 저는 영화 동아리를 선택했다는... ^^;
 2007/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