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유위강, 맥조휘
주연 : 양조위, 금성무, 서정뢰, 서기
개봉 : 2007년 5월 31일
관람 : 2007년 5월 31일
등급 : 18세 이상
복수를 하면 행복해질까?
며칠 전 종영된 TV드라마 [마왕]에서 형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 오승하(주지훈)는 차근차근 치밀한 복수를 실행에 옮겨 당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강오수(엄태웅)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죽음 혹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습니다.
하지만 막상 복수의 치밀한 얼개가 완성되는 순간 오승하는 기쁨보다는 슬픔을 느낍니다. 그의 계획대로 강오수는 오승하에게 총을 겨누고 있지만 그래서 방아쇠만 당기면 그 기나긴 복수는 끝을 맺지만 오승하는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오승하에게 총을 겨누던 강오수는 총을 내려놓으며 말합니다. '너도 삶이 지옥 같구나? 나 때문에 너 역시도 지옥 같은 삶을 살았구나.' 그렇습니다. 죄를 지었지만 그 죄를 덮어버림으로써 죄에 대한 대가를 평생의 짊으로 안고 살았던 강오수도, 복수를 위해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려했던 오승하도 삶이 지옥 같았던 겁니다. 복수가 완성되어도 결코 그 지옥은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지독한 지옥으로 그들을 안내할 뿐입니다.
[상성]는 바로 그러한 지옥 같은 복수에 대한 영화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처를 겪은 두 사람 유정희(양조휘)와 아방(금성무)은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서로 다른 방법을 선택합니다. 유정희는 잔인한 복수로 과거의 상처를 지우려 하고, 아방은 용서를 통해 새로운 삶을 선택하려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서로 다른 방법을 선택했던 두 사람의 대립, 이것이 [상성]의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입니다.
아내가 자살을 했다. 도대체 왜?
술 한 잔도 하지 못하는 순수 형사 아방. 크리스마스 캐롤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던 어느 날, 그는 연쇄 강간살인마를 검거하고 집으로 향합니다. 집엔 사랑하는 아내가 너무나도 평온한 얼굴로 잠이 들어 있습니다. 살며시 다가와 아내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 아방, 그런데 이상합니다. 침대는 이미 피로 얼룩져있었으며, 아내는 칼로 손목을 그은 채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상성]은 아방의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시작을 합니다. 아내를 너무나도 사랑했는데, 그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떠나버린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아방은 경찰을 그만두고 사설탐정이 되어 아내의 자살 원인을 캐내기 시작합니다.
술 한 잔 못하던 그는 어느새 술에 찌들어 버렸으며,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그의 정의감은 어느새 바람난 남편의 뒷조사나 해주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도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자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야할지 알 수 없는 그에게 한 가지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롭게 찾아온 사랑과 그의 정의감을 다시한번 일깨워준 새로운 사건입니다.
이 영화는 유정희를 축으로 전개되는 듯이 보이지만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정희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는 법을 깨닫게 되는 아방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아방의 아내의 자살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오프닝에 배치해 놓고 3년이라는 시간의 터울을 줌으로써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오랜 기간 발버둥 쳤을 아방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아방의 아내가 자살을 하게 된 이유가 설명되는 부분에 이르면 유정희와는 다르게 상처를 치유했던 아방의 현명함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사랑인 펑(서기)과의 행복한 미래를 엿볼 수 있죠. 그가 만약 유정희처럼 복수를 선택했다면(사실 그도 복수를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과연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요?
그가 장인을 죽였다. 무엇 때문에?
아방의 상처가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관객에게 공개된다면, 유정희의 상처는 영화의 마지막까지 깊숙이 감춰지고 오히려 잔인한 복수의 순간부터 관객에게 공개됩니다.
대부분 유정희가 자신의 장인을 죽였다는 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영화를 보게 된다면 사실과 다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유정희의 범행은 아방의 아내가 자살을 하는 것처럼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일 뿐입니다.
아방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캐릭터라면 유정희는 복수를 이미 선택했으며 그로인하여 스스로 절망 속에 빠지는 캐릭터입니다.
아방과 유정희의 대립각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였던 둘은 서로 다른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의 선택으로 인하여 아방은 진실을 캐내는 자로, 유정희는 진실을 은폐시키는 자로 갈리게 됩니다.
하지만 유정희는 적극적으로 진실을 은폐하려 하지는 않습니다.(만약 그랬다면 당연히 진실을 캐내는 아방을 죽이려 했어야만 합니다.) 이미 복수를 완성했던 그는 복수의 성취감으로 인해 행복해지기는커녕 점점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기 자신을 느끼고 있었으며, 아방이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게 될 때쯤엔 이미 그 절망의 끝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정희의 마지막 눈빛에서 [마왕]의 오승하가 떠올랐습니다. 냉정한척 자기 자신을 감추고 있지만 이미 내면 깊은 곳에서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그들. 너무나도 힘든 현실에 대해서 완벽한 복수를 꿈꿨지만 그 복수는 오히려 더욱 끔찍한 현실이 되어 그들을 옭아맵니다. 그렇게 그들은 또다시 상처받고 절망하는 겁니다.
그들의 실력은 결코 녹슬지 않았다.
[상성]은 [무간도]의 맥조휘와 유의강 감독의 영화입니다. [무간도]는 시들어져가던 홍콩 느와르 영화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영화이며, 할리우드에서 마틴 소콜세지 감독이 [디파티드]로 리메이크하여 아카데미 영화상을 휩쓸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영화답게 [상성]역시 홍콩이라는 상처 받은 도시에서 상처 받은 사내들의 쓸쓸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멋들어지게 표현됩니다. [무간도]에 비해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치밀함은 부족하지만 캐릭터를 설명하는 힘은 여전했으며, 그러한 그들의 힘은 다시한번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으며 제 2의 [디파티드]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과연 할리우드에서 만들 [상성]은 어떠한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것은 비단 저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뭐 하나 흠이 없습니다. 양조위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금성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멋지게 상처받은 남자의 내면 연기를 펼쳐 보입니다. 서기 역시 그녀 특유의 발랄함을 무기로 아방의 새로운 희망을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만약 서기의 그런 연기가 없었다면 아방이라는 캐릭터는 끝까지 우울하게만 보였을지도...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새로운 발견은 유정희의 아내이자 유정희의 복수로 인하여 희생당하는 숙진을 연기한 서정뢰가 아닐지. 앞의 세 배우들과는 달리 우리들에겐 낯선 이 여배우는 유정희를 진정 사랑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혹의 눈길을 거둘 수가 없어서 아방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비련의 여인 역을 안타깝게 연기합니다. 그녀의 마지막 눈물은 사랑하는 남편의 사랑을 믿을 수가 없는 자기 자신의 슬픈 처지에 대한 회한이 아닐지. 그런 완벽한 서정뢰의 연기가 있었기에 복수를 완성한 유정희의 절망이 더욱 마음 깊이 와 닿았습니다.
암튼 실력 있는 감독들과 실력 있는 배우들이 만들어낸 이 완벽한 느와르 [상성]은 [무간도]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는 제게는 소중한 영화입니다.
IP Address : 211.187.118.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