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생전 처음으로 영화제라는 것을 가보았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설마'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무려 5년하고도 5개월 동안 영화 홈페이지를 운영하였고, 400여 편의 영화 이야기와 440여 편의 아주 짧은 영화평을 올리며 스스로 대단한 영화광인 것처럼 으시대던 제가 국내의 그 수많은 국제 영화제에 단 한 번도 참가를 해 본적이 없다니...
변명을 하자면 워낙 영화제용 영화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게으른 천성 탓에 집 앞 극장에서만 영화 보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어서 영화제가 열리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꺼려한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암튼 부산 국제 영화제나 전주 국제 영화제 같은 국내의 대형 영화제가 아닌 CGV 용산에서 상영한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무려 4편의 영화제 프로그램을 관람하며 즐거웠기도 했지만 괴로웠기도 했습니다. 이제부터 영화 리뷰가 아닌 영화 이야기 최초 영화제의 리뷰를 적어 보겠습니다.
아메리칸 클래식 1 : 척 존스 - 어릴 적 친구를 만난 듯한...
사실 [아메리칸 클래식 1 : 척 존스]라는 프로그램을 SICAF의 첫 영화로 고르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같은 시간대에 [파노라마 2 : 상상]을 놓고 무엇을 볼 것인가 영화 시작 10분 전까지만 해도 선뜻 선택을 하지 못했었죠.
기나긴 고민 끝에 결국 제가 [아메리칸 클래식 1 : 척 존스]를 선택한 이유는 익숙한 캐릭터 덕분입니다. 어린 시절 TV에서 봤었던 워너브라더스 영화사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대피 덕을 비롯한 벅스 바니, 로드 러너 등이 제 눈을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아메리칸 클래식 1 : 척 존스]는 상당히 즐겁게 봤습니다. 특히 [난폭한 덕]의 유쾌한 실험 정신과 [오페라가 뭔가요?]의 오페라와 애니메이션의 결합 등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50년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보관 상태는 70년대 애니메이션인 [로보트 태권 V]를 복원하겠다며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던 우라나라의 상황에 비춰어 봤을때 부럽기만 했습니다.
암튼 처음 가 본 영화제의 첫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아니 무난한 선택을 한 셈이죠. ^^
24 1/2세기의 덕 다저스 / Duck Dodgers in the 24 ½th Century
도버 보이즈 / The Dover Boys
냄새 때문에 / For Scent-imental Reasons
호스타운에 간 대피 / Drip-Along Daffy
토끼 사냥철 / Rabbit Seasoning
고양이 먹이주기 / Feed the Kitty
개구리의 밤 / one Froggy Evening
난폭한 덕 / Duck Amuck
아이코 / Gee Whiz-z-z
오페라가 뭔가요? / What’s Opera, Doc
가제트빌에서 온 로테 - 유아적인, 그냥 그저 착한...
이번에 본 영화중 가장 아쉬웠던 것은 SICAF의 개막작인 [초속 5CM]를 매진으로 인하여 보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영화들은 거의 좌석이 텅 비어 있다시피 했건만 [초속 5CM]와 [파프리카]만은 일찌감치 매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다행히 [파프리카]는 발 빠르게 예매를 해서 볼 수 있었지만 [초속 5CM]는 아쉽게 놓치고 말았죠.
제가 [초속 5CM]대신 고른 영화가 바로 [가제트빌에서 온 로테]입니다. 발명이 온 마을 사람들의 지상 과제인 가제트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유쾌한 소녀 로테가 친구들과 함께 일본의 유도 대회에 참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두 가지 문제점을 제게 안겨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영화 운영의 아쉬움입니다. 사실 [아메리칸 클래식 1 : 척 존스]를 상영할 때도 관객이 모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상영을 준비하고 미숙한 운영을 보여줬던 SICAF의 운영진은 영화 상영 내내 왔다 갔다 하며 영화 관람을 방해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애교로 웃고 넘어 갈 수 있었지만 [가제트빌에서 온 로테]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한글 자막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거죠. 결국 영화를 보는 내내 자막을 읽기위해 눈에 힘을 줘야했고, 자막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영화 자체는 놓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자막 자체도 거의 50% 정도는 놓치고 말았고요.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너무 안 보였다는 관객들의 질타가 있었는지 그때서야 자막의 폰트를 변경하더군요. 하지만 제 입장에선 이건 완전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입니다. 다음 상영 땐 관객들에게 자막으로 인한 불편함을 끼치지 않겠지만 이미 본 저는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두 번째 아쉬움은 영화 자체에 있습니다. 영화제의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유아적이어서 성인인 제가 보기엔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적었습니다. 물론 영화제에 출품된 영화라고 모두 성인 취향의 영화여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말입니다.
뭔가 기발한 상상력이 부족했고, 캐릭터도 어린이 만화 채널에서 나올법했으며, 마지막 결말도 너무 뻔해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냥 일본이나 미국 애니메이션이 아닌 에스토니아라는 생소한 나라의 애니메이션을 본 것에 만족해야할 듯한 영화였습니다.
심사위원 특별전 1 : 이고르 쿄발료프 외 - 생전 영화를 보며 이렇게 괴로웠던 적이 없었다.
첫 번째 영화로 익숙한 캐릭터의 향연인 [아메리칸 클래식 1 : 척 존스]를 선택했던 저는 이번엔 익숙함이 아닌 특이함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월드 어메이징 : 아카데미가 선택한 애니] 대신 [심사위원 특별전 1 : 이고르 쿄발료프 외]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을 후회하기까지는 영화가 시작한지 단 10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심사위원 특별전 1 : 이고르 쿄발료프 외]는 제가 왜 영화제용 영화를 싫어하는지를 극단적인 방법으로 보여준 예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아니 혐오스럽기까지 한 그림체는 그렇다하더라도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영화의 전개는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습니다.
1시간 25분이라는 시간동안 무려 10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상영되었는데 그 중 제가 내용을 이해한 것은 우리 단편 애니메이션인 [무밭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휠휠 간다], 그리고 불가리아의 애니메이션인 [로빈슨 크루소 : 오프닝]과 [로빈슨 크루소 : 목욕하는 날]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영화들은 제겐 그저 이미지의 나열에 불과했는데, 그렇다고해서 그 나열된 이미지가 아름답거나 멋있기보다는 혐오스러운 것들뿐이니 앉아 있는 것이 곤욕이었던 겁니다. 특히 이고르 쿄발료프의 애니메이션인 [창문 위의 새]와 [플라잉 난센], [밀크], 그리고 시작 된지도 몰랐는데 어느새 막을 내린 오토 앨더 감독의 [파피루스]는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들었을 정도입니다.
이들 영화를 보면서 익숙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익숙한 미국이나,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지만 익숙하지 못한 애니메이션일 경우는 보는 것 자체가 괴로움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하지만 영화제이기에 이런 느낌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익숙함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존재 할 수는 없는 것이니, 영화제에 자주 참가하고 많은 익숙하지 못한 영화들을 경험하게 된다면 지금은 익숙하지 못해서 보는 것이 괴로웠던 영화들이 나중엔 새로움의 쾌감을 느낄 수 있지도 않을 런지... [심사위원 특별전 1 : 이고르 쿄발료프 외]를 보고 괴로움에 빠졌던 절 스스로 위안을 해봅니다.
창문 위의 새 / Bird in the Window
플라잉 난센 / Flying Nansen
밀크 / Milk
파피루스 / Papirossy
로빈슨 크루소:오프닝 / Robinsoniada_The Opening
로빈슨 크루소:목욕하는 날 / Robinsoniada_day for bathing
야단법석 / Bustle
무밭에서 태어난 아이들 / children Borne in a radish field
훨훨간다 / Hoal Hoal Ganda-I go as fly lightly
사계절의 끝 / The end of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