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도이 노부히로
주연 : 츠마부키 사토시, 나가사와 마사미
개봉 : 2007년 5월 17일
관람 : 2007년 5월 18일
등급 : 12세 이상
두 편의 일본영화 앞에서 고민을 하다.
[넥스트]를 보기위해 조금 서둘러서 인지 영화를 보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오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엔 뭔가 아쉽고, 그렇다고 영화를 한 편 더 보자니 이제 제가 안 본 영화라고는 일본영화인 [내일의 기억]과 [눈물이 주룩주룩] 뿐이었습니다.
사실 [내일의 기억]과 [눈물이 주룩주룩],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일본영화라는 사실 이외에도 최루성 멜로영화라는 점에 있습니다. [내일의 기억]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중년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엄청 슬프다고 합니다. [눈물이 주룩주룩]은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남매라는 인연의 끈으로 만난 젊은 두 남녀의 이룰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을 담은 영화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내일의 기억]과는 달리 제목처럼 눈물이 주룩주룩 흘릴 만큼 슬프지는 않다고 하네요.
결국 제가 [눈물이 주룩주룩]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즘 기분이 우울해서 슬픈 영화를 굳이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화적인 재미와 완성도 면에서 [내일의 기억]이 평론가들과 네티즌에게 후한 점수를 받고는 있지만 [내일의 기억]보다 슬프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눈물이 주룩주룩]을 선택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최루성 멜로라면 당연히 얼마나 슬프냐가 영화적 재미의 척도인데, 최루성 멜로영화를 보며 굳이 슬프지 않은 영화를 선택해야 하는 제 처지가...
낯익은 배우들, 낯익은 스토리
한때 [러브레터]에 매료된 나머지 일본 영화에 푹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으로 대표되는 멜로영화들과,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으로 대표되는 예술영화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으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까지...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일본 영화에 대한 제 탐구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오디션], [이치 더 킬러]로 대표되는 엽기적인 공포영화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 영상을 체험한 이후 저는 일본영화 보기를 멈췄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본영화를 그리 자주 보는 편은 아닙니다.
그렇게 저는 꽤 오랫동안 일본영화는 가뭄에 콩 나듯이 몇 편의 영화만 가끔 봐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주룩주룩]에는 낯익은 배우들이 포진되어 있더군요, 제가 최근에 재미있게 봤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츠마부키 사토시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나가사와 마사미가 바로 그들입니다.
워낙 일본배우들의 이름은 못 외우기에 영화를 보면서도 '어디에서 많이 본 배우들이다.'라는 생각만 했었다가, 영화를 본 후 영화 사이트에서 이들의 출연영화를 검색해 보니 반가운 제목의 영화들이 튀어나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마냥 반가웠답니다.
그리고 제 기대대로 영화 자체도 슬프기 보다는 젊음의 풋풋한 향내가 물씬 풍겨서 좋았습니다. 영화의 기본 모티브도 학창 시절 재미있게 봤던 우리영화인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연상시켜 잠시 동안 20년 전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고요. 역시 중년의 슬픔보다는 청춘의 아픔이 지금 제 상황에서는 잘 맞았나봅니다.
사랑엔 이유가 없다.
[눈물이 주룩주룩]은 요타로와 카오루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동생 카오루(나가사와 마사미)에게 헌신하는 요타로(츠마부시 사토시)는 사기를 당해 레스토랑을 차리는 꿈이 무너지고, 막노동판에서 밤낮 없이 일을 하며 빚을 청산해야 하며, 여자 친구의 아버지는 요타로가 미래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딸과 헤어질 것을 권유합니다. 하지만 요타로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에겐 카오루가 있으니까요. 요타로는 카오루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합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런 요타로의 카오루에 대한 무조건적인 희생에 의문을 품을 만도 합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요타로의 무조건적인 희생에 의문을 품는 그 순간 [눈물이 주룩주룩]은 고리타분한 청춘 멜로영화가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선 그런 의문 따위는 버려야 합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도대체 왜 나를 사랑해?'라고 묻는다면 과연 대답할 수 있을까요? 만약 대답할 수 있다면 그래서 '네가 예뻐서, 착해서, 돈이 많아서'라고 대답을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엔 이유가 없습니다. 단지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사랑은 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죠.
그렇게 요타로와 카오루의 사랑을 이해한다면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남매라는 사회적 벽을 결코 허물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가슴 아프게 느껴 질수 있을 것입니다.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지는 않지만...
영화의 후반부 감기한번 안 걸린다던 요타로가 쓰러집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그날 밤, 폭풍우를 무서워하는 동생 카오루를 위해 한걸음에 달려왔던 그는 그렇게 그녀 앞에서 쓰러지고 맙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젊음의 풋풋함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잘 조절했던 이 영화는 요타로가 쓰러지는 순간부터 예정된 최루성 멜로의 수순을 밟습니다. 요타로의 죽음과 성년을 맞이한 카오루에게 배달된 요타로의 마지막 선물. 영화는 이래도 안 울래? 라고 관객을 몰아 부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목처럼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관객들에겐 그것이 불만이었겠지만 제겐 다행스러운 일이었죠. 눈물이 흐르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슬픈 영화 덕분에 젊음의 풋풋함만 느끼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젊었을 때 수도 없이 상상했던 이룰 수 없는 슬픈 사랑이 다행스럽게 제게는 현실에서 빗겨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코끝을 움켜잡고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것을 참으며 살아가는 것 보다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네가 내 발등을 찍었네, 아니네.'라며 아웅다웅 싸우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행복하니까요.
그렇죠, 요타로군? 카오루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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