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성욱
주연 : 김수미, 임채무, 유진, 하석진, 윤다훈, 안연홍
개봉 : 2007년 5월 10일
관람 : 2007년 5월 15일
등급 : 15세 이상
온통 [스파이더맨 3]뿐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일이지만 [스파이더맨 3]가 국내 극장가를 장악하고 말았습니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가 봐도 극장엔 온통 [스파이더맨 3] 뿐입니다. 저처럼 [스파이더맨 3]를 이미 본 관객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과도한 스크린 독과점 사태는 좀 자제를 해줘야 할 텐데...
이런 상황에서 벌써부터 한국 영화의 위기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작년 무절제하게 영화를 제작하는 바람에 올해는 작년에 비해 제작편수가 확연히 줄어들었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스크린퀴터 일수가 미국의 압력으로 줄어들었고, 그에 대한 영향 탓인지 한국 영화의 관객 점유율도 할리우드 영화에 밀리고 있는 형상입니다.
다수의 영화인들이 스크린퀴터 일수를 다시 늘려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한국 영화가 설 자리를 영영 잃어버린다고 말이죠. 그들은 [스파이더맨 3]의 흥행과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인 [천년학]의 흥행 실패를 예로 들며 스크린퀴터 일수를 늘리지 않으면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들의 횡포는 날로 더해 갈 것이며, 작품성 있는 우리 영화는 상영의 기회조차 잃을 것이라 말합니다. 저는 스크린쿼터제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스크린쿼터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영화인들의 모습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지난 2004년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동시에 흥행 대박을 터트렸을 때를 저는 기억합니다. 스크린이 몇 개나 되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가도 온통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뿐이었습니다. 다른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죠. 지금은 그런 스크린 독과점이 한국 영화가 아닌 할리우드 영화라는 점이 다를 뿐, 다른 상황은 2004년과 똑같습니다. 결국 스크린퀴터제가 문제가 아니라 스크린 독과점이 문제인 것입니다.
요즘 개봉되는 우리 영화를 보라!
지금의 한국 영화의 위기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으로 썸머시즌은 할리우드 영화의 강세가 이어졌었습니다. 스크린퀴터 일수가 줄어들지 않았을 때도 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와 대적할만한 우리 영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때 꾸준히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만들어졌지만 연이은 흥행 실패로 이젠 그런 모험을 하려는 영화사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은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파이더맨 3]의 개봉에 맞서는 우리 영화는 [아들], [이대근, 이댁은]이었습니다. [스파이더맨 3]가 개봉된 일주일 후 개봉된 우리 영화 역시 [못말리는 결혼], [경의선], [상어], [살결]이었습니다. 결국 [스파이더맨 3]와의 정면 대결이 아닌 틈새시장을 노리는 영화 아니면 개봉관을 잡지 못하다가 [스파이더맨 3]로 인하여 다른 영화들이 개봉하기를 꺼려하는 틈을 타 개봉하는 독립 영화들만이 개봉을 한 셈입니다.
[스파이더맨 3]가 개봉했던 첫 주, 틈새시장을 노렸던 [아들]과 [이대근, 이댁은]은 흥행의 쓴 맛을 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3]의 흥행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이번 주엔 [못말리는 결혼]이 선전함으로써 한국 영화의 체면을 살렸습니다. 그러면서 [못말리는 결혼]은 몰락하고 있는 한국 영화의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대작 영화에 맞서 틈새시장을 노리는 전략은 미국에서도 흔히 일어납니다. 적은 예산의 가벼운 코미디 영화들이 주로 그러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분명 그런 틈새시장 전략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우리 영화의 썸머시즌 전략이 틈새시장 노리기만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못말리는 결혼]이 틈새시장 노리기에 성공하긴 했지만 그러한 성공은 요즘 우리 영화의 분위기로 봐서는 달콤한 독약과도 같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킬링타임용 영화.
[못말리는 결혼]은 정확히 킬링타임용 영화입니다. 전통 계승을 몸소 실천하는 풍수지리가 지만(임채무)의 외동딸 은호(유진)와 강남 큰손 럭셔리의 대표주자 말년(김수미)의 외아들 기백(하석진)이 어느 날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하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지만과 말년은 이 둘을 떼어놓기에 바쁩니다.
이 영화는 사랑하고 싶은 은호, 기백과 이들을 떼어 놓으려하는 지만, 말년의 좌충우돌 코미디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스토리 따위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웃기는 상황과 그 상황에 맞는 웃기는 캐릭터만 있을 뿐입니다.
김수미의 코믹 연기는 역시 최고입니다. 이미 [가문의 위기], [가문의 부활], [마파도 2] 등의 코미디 영화에서 그 재능과 끼를 맘껏 발산했던 그녀는 이 영화에서도 콩글리쉬와 욕이 뒤섞인 완벽한 애드리브로 관객들을 끊임없이 웃깁니다.
최근 어느 아이스크림 광고를 통해 뒤늦게 코믹 연기에 눈을 뜬 임채무는 김수미를 쫓기에는 벅차 보이지만 그런대로 잘 버텨주었으며, 윤다훈, 안연홍의 오버 연기는 간간히 웃음을 안겨 줍니다. 떠오르는 신예스타 하석진과 가수에서 연기자로 전향한 유진의 풋풋한 연기도 그런대로 봐줄만 합니다.
요즘 코미디 영화의 추세인 마지막 감동적인 설정 역시 무리 없이 삽입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웃음도 주고,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게 만드는 감동도 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예고편이나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이 영화의 코믹 장면들을 미리 섭렵한 관객이라면 [못말리는 결혼]은 마치 이미 본 듯한 느낌을 안겨줄 것입니다. 단 10분 정도의 장면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를 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에 대해서 우리 TV의 뛰어난 편집 능력을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영화의 빈약한 장면들을 욕해야 할지... 참 난감하네요.
올 여름 한국 영화의 희망은 따로 있다.
문제는 [못말리는 결혼]과 같은 가벼운 코미디 영화로 언제까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를 막아낼 수는 없다는데에 있습니다. 이번엔 [스파이더맨 3]의 스크린 독과점이 워낙 심했고, 각종 언론 매체들이 관객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기사를 토해내는 덕분에 어부지리로 [못말리는 결혼]이 첫 주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지만 분명 그러한 결과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지, [못말리는 결혼]이 재미있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지금 한국 영화는 분명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위기는 올해 들어 스크린퀴터 일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아주 오랫동안 조금씩 목을 조여오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한 위기에 한국 영화 역시 많은 준비를 해왔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대적할만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꾸준히 만들었으며, 해외 시장 개척의 여러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과에 관객들 역시 많은 성원을 보냄으로써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천만 관객 동원을 여러 편 이루어 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 영화는 단기적인 성공에 도취되어 다시한번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를 잊어버리고 그저 값싼 코미디 영화만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한국 영화의 안일한 태도에 관객들은 실망하고 다시 예전처럼 한국 영화들을 외면했고, 때마침 스크린쿼터 일수가 줄어들며 그때서야 한국 영화인들은 위기론을 들먹이며 다시금 관객들의 애국심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알아야 할 것은 애국심만으로 영화를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통신사 카드 할인도 없애줬고, 신용카드 할인도 없앨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게 관객들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데 그러한 희생에 좋은 영화로 보답할 생각은 없고 스크린쿼터라는 안전장치만 더 늘려달라고 칭얼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영화에 필요한 것은 영화의 제작 편수가 아니라 영화의 질적 향상입니다. 물론 [못말리는 결혼]같은 킬링타임용 영화도 분명 필요하지만 그런 킬링타임용 영화만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한국 영화의 진정한 위기입니다.
올 여름 [밀양], [화려한 휴가], [황진이] 등 한국 영화의 라인업도 꽤 진지한 영화로 포진되어 있습니다. 한국 영화의 희망은 [못말리는 결혼]이 아닌 바로 [밀양], [화려한 휴가], [황진이]입니다. 이들 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맞서 어떤 흥행 실적을 올리느냐에 따라 한국 영화는 지금의 위기론을 다시한번 되짚어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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