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안톤 후쿠아
주연 : 마크 윌버그, 마이클 페나, 대니 글로버, 케이트 마라
개봉 : 2007년 4월 26일
관람 : 2007년 5월 9일
등급 : 18세 이상
선택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도대체 무엇을 선택해야 올바른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저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이 선택을 한 제 모습이 어떤지 보고 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 현실이 될 수는 없죠.
저는 선택에 서툰 편입니다. 어찌 보면 그건 집안 내력인 듯합니다. 저희 가족들은 물건을 오래 고르지 못합니다. 그냥 맨 처음 보이는 물건을 집어 들고는 '됐다. 집에 가자.'를 외치죠. 그러한 까닭에 구피와 쇼핑을 갔을 땐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작은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이곳저곳, 이 물건 저 물건을 하나하나 꼼꼼히 비교하고 며칠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사는 구피의 쇼핑 법에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겁니다.
암튼 저 역시 선택의 기로에서 심사숙고하는 편이 아닙니다. 골치 아픈 고민은 집어 치우고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선택을 해버리죠. 그래서 어쩌면 매번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구피와 결혼한 것을 제외하고는 제 선택은 언제나 빗나갔으니까요.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회계 관련 5년이라는 경력을 버리고 수습사원으로 기자직 면접을 본 신문사 사주가 말합니다. 수습사원이기에 근 1년 동안은 거의 월급이 없다시피 합니다. 전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돈을 위해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것인가? 기자라는 새로운 세상은 나에게 기회일까? 아니면 함정일까?
평소 같으면 오래 고민 않고 이것이 기회인지, 함정인지 몸으로 부딪쳐보는 것을 택했겠지만 이젠 아닙니다. 전 한 가정의 가장인 걸요.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을 한다는 것. 정말 힘이 들더군요. 거의 반나절동안 마치 넋 나간 사람마냥 황사바람을 맞으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영화를 보며 잠시 이 힘든 선택의 고민에서 잠시 벗어나자는 생각에 무작정 보게 된 영화가 바로 [더블타겟]입니다.
최고의 스나이퍼, 그도 선택의 기로에 서다.
아프리카에서 작전 수행 중 절친한 동료를 잃은 스웨거(마크 윌버그). 그는 자신과 친구를 버린 군(軍)에 실망한 채 산속 깊은 곳에 숨어서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존슨 대령(대니 글로버)이 찾아옵니다. 대통령이 암살 위기에 처해있으니 도와 달라며 다시한번 스웨거의 애국심을 자극합니다.
스웨거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조용히 산 속에 묻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다시 최고의 스나이퍼가 되어 대통령의 암살을 막고 영웅이 될 것인가? 그는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존슨 대령의 심리전에 말려들어 결국 애국심이 발동하고야 맙니다. 이미 한번 군에 의해 버려진 적이 있는 그는 다시한번 군을 믿고 세상의 밖으로 나왔으며, 그런 그의 애국심은 또다시 배신이라는 냉혹한 현실 속으로 스웨거를 몰아세웁니다.
[더블타겟]은 어찌 보면 상당히 흔하디흔한 액션 영화로 보입니다. 주인공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누명을 벗기 위해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입니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위기의 순간에서 주인공은 총을 맞아도 끄덕 없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맥가이버식 놀라운 과학 지식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을 도와주는 아름다운 여자가 등장하며, 주인공은 모든 음모를 파헤치고 결국 누명에서 벗어납니다. 그렇게 정의는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틀을 지닌 듯이 보이는 이 영화는 몇 가지 면에서 액션 영화의 틀을 벗어나 조금은 색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복수 씬은 총의 왕국, 정의가 죽어버린 나라 미국에 대한 감독의 냉철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뻔한 액션 영화에서 뻔하지 않는 몇 가지 장면들.
뻔한 액션 영화인 듯 보이는 이 영화에서 뻔하지 않는 장면이 몇 가지 나옵니다. 그것은 스웨거를 도와주는 닉(마이클 페나)과 사라(케이트 마라)의 캐릭터에서 비롯됩니다.
먼저 신입 FBI 닉을 살펴본다면... 닉이 맨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보고 저는 그가 곧 진짜 범인에 의해서 죽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군기가 빠져버린 얼간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며 액션 영화에서 그런 얼간이들은 나오자마자 죽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닉은 그런 처음 모습과는 달리 점차 진실을 캐내는 멋진 FBI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마치 신참 FBI였던 닉이 진정한 FBI요원으로 재탄생하는 성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닉이라는 캐릭터는 최고의 스나이퍼 스웨거와 비교되며 영화의 색다른 재미를 안겨줍니다.
영화의 색다른 재미를 안겨주기는 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라는 얼핏 보면 액션 영화의 흔한 여주인공처럼 보입니다. 가냘픈 외모에 위험을 무릅쓰고 스웨거를 도와주는 헌신적인 마음가짐. 게다가 마지막엔 악당의 인질이 되어 스웨거를 위험에 빠뜨리는 센스까지 겸비했으니 액션 영화의 흔한 여주인공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을 듯.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약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자신의 집에 침입한 인질을 총으로 쏴 죽이고(대개는 별다른 반항 없이 잡혀가죠.) 마지막엔 자신을 욕보인 악당을 직접 처치하기도 합니다.(대개는 악당 스스로 발악하다가 주인공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녀는 남자 주인공에게만 매달리는 수동적인 캐릭터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키려하고 복수를 감행하는 능동적인 캐릭터인 셈입니다.
게다가 마지막엔 스웨거와 사랑에 빠지지 않음으로써 스웨거의 영웅적인 행적에 포상처럼 주어지는 그런 여자 주인공의 모습에서 탈피하기까지 합니다.(물론 마지막 장면에서 스웨거와 함께 길을 떠나는 사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대개의 액션 영화는 진한 키스씬이나 좀 더 노골적인 섹스씬으로 마무리하곤 합니다.)
법이 안된다면 총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특이한 점은 마지막 스웨거의 복수씬입니다. 대개 액션 영화의 경우는 아예 주인공의 화끈 복수로 끝을 내거나, 혹은 주인공의 누명이 벗겨지고 악당이 법의 신판을 받는 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두 가지의 혼합된 라스트를 선보이므로 역설적이게도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미국 사회를 비웃고 있습니다.
스웨거의 누명이 공식적으로 벗겨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생각했던 저는 '항상 정의가 승리하는 것은 아니네.'라는 미 법무부 장관의 말 한마디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결국 법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스웨거는 총으로 모든 복수를 마무리 짓습니다.
다른 힘없는 나라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난발하고 대량 살상이라는 최악의 범죄를 저지르지만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라는 말로 애써 외면하고 미국의 법 체제. 돈만 된다면 약소국의 몇몇 인간들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자본주의의 병폐에 찌 들은 상원의원의 이상한 논리.
뻔해 보이는 액션 영화에 불과한 [더블타겟]은 바로 이러한 미국의 현주소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풍자가 흥미진진한 액션으로 포장되어 그리 쉽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애국심을 발휘하다가 두 번이나 배신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법으로 악당이 해결될 수 없다는 현실 속에서 총으로 해결하고야 마는 스웨거의 모습이 다른 액션 영화의 영웅적인 주인공과는 약간 달라보였던 것은 아마도 안톤 후쿠아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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