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7년 영화이야기

[이대근, 이댁은] - 이제 그가 화해의 손을 뻗는다.

쭈니-1 2009. 12. 8. 19:37



감독 : 심광진
주연 : 이대근, 이두일, 정경순, 박원상, 박철민, 안선영
개봉 : 2007년 5월 1일
관람 : 2007년 5월 7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불세출의 에로 스타 이대근을 아는가?

이대근... 아마 젊으신 분들이라면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을 테지만 이름만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변강쇠'로 대표되는 우리 토종식 강한 남성의 아이콘이며, 7,80년대 최고의 에로 스타로 군림했었던 배우입니다.
80년대 후반에 사춘기를 보냈던 제게 이대근의 영화는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비디오 대여점에서 이대근 주연의 야한 사극 영화들을 빌리려다가 매번 비디오 대여점 주인  아저씨한테 혼났던 아픈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네요.  
이대근은 제게 바로 그런 배우입니다. 우습게도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들을 지금까지 단 한편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유명한 [변강쇠]도 아직 못 봤으니까요. 어렸을 땐 볼 수 없어서 못 봤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구식 영화를 누가 보냐?'며 스스로 보기를 거부했었죠.
하지만 누군가 '우리나라 최고의 에로 배우는?'이라는 질문은 던진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이. 대. 근.이라 말할 것입니다. 그만큼 그가 가지고 있는 강한 남성이라는 상징성은 그가 주연을 맡은 에로 영화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제게도 상당히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셈입니다.  
90년 후반 들어서며 이대근의 배우로써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습니다. 제목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몇 편의 영화들과 [해적, 디스코왕되다]에 조연으로 잠시 등장했을 뿐이었죠. 그런 그가 2007년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걸은 영화로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대근, 이댁은]입니다.


 

 


강한 남성의 아이콘이었던 그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이대근, 이댁은]은 바로 이대근이라는 배우가 지금까지 짊어지고 있었던 강한 남자라는 상징성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 실명으로 등장하는 이대근은 그야말로 힘없는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7,80년대 강한 남자로 스크린에 우뚝 섰던 그가 IMF 사태가 터진 90년대 후반, 장길수 감독, 박근형 주연의 [아버지]에서부터 스크린에 이어진 불쌍한 아버지의 대열에 동참하고 말았던 겁니다.
영화 속 이대근은 변화되는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젊은 시절엔 악극단을 쫓아 배우라는 뜬구름을 잡느라 가족을 등한시했고, 사랑을 표현할 줄 몰라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그는 가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힘없는 늙은이가 되며 성장한 자식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편애했던 막내아들의 사업이 부도가 나며 재산을 탕진하고 헌신적으로 남편을 뒷바라지했던 아내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자식들은 이 모든 불행의 근원은 바로 아버지 때문이라고 원망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 자식들의 원망에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그의 쓸쓸한 뒷모습은 더 이상 [변강쇠]에서 '마님'을 부르짖던 강한 남성의 아이콘도 아니었으며, 무서운 아버지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무능력한 고개 숙인 아버지의 모습이었던 겁니다.
그런 면에서 심광진 감독의 캐스팅은 절묘했습니다. 만약 다른 중견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면 요즘 유행처럼 앞 다퉈 개봉하고 있는 부성애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별다른 차별성을 띄지 못했을 텐데 이대근을 고개 숙인 아버지로 캐스팅함으로써 과거의 강한 아버지와 현재의 약한 아버지를 대비시키는 효과를 얻어냈습니다.


 

 


이제 그가 화해의 손을 뻗는다.

이 영화는 이렇게 이대근이라는 강한 남성의 상징적인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처음부터 많은 것을 획득하며 시작을 합니다. 하지만 심광진 감독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식들에게 화해를 손길을 뻗는 이대근의 모습을 통해 불쌍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뚝뚝했던 아버지와 자식들 간의 화해를 잡아냅니다.
한때 자신의 꿈을 위해 아내와 자식들을 고생시켰고, 일을 위해 가족 돌보기를 등한시했으며, 사랑을 표현할 줄 몰라 그저 무서운 아버지로만 보여 졌던 이대근, 아니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 변화된 시대의 흐름 속에 경제를 부흥시킨 강한 남자에서 무능력한 약한 아버지로 내몰린 그들은 가족들의 원망 속에서 더 깊은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현재 우리 경제를 이만큼 끌어올린 역군들이며, 경제 살리기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야 했던 우리 시대가 낳은 가장 큰 희생자일 텐데, 그에 대한 보답대신 사회의 외면과 가족들의 원망을 받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민 것도 역시 아버지입니다. '내가 잘못했다. 모두 내 탓이다.'라며 눈물을 흘리는 이대근의 모습을 보며 더 이상 그가 약한 아버지가 아닌 용기 있는 아버지로 보여 졌습니다. 비록 그는 무서운 아버지였고, 무뚝뚝한 아버지였으며, 어머니를 병으로부터 살리지 못한 무능력한 아버지였지만 자식들에게 먼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았던 용기 있는 아버지였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 속 이대근처럼 무뚝뚝하고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시는 저희 아버지가 생각나더군요. 저도 참 아버지 원망 많이 했었는데, 다음에 집에 가면 아버지와 묵묵히 소주 한잔을 기울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