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7년 영화이야기

[아들] - 장진 감독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니...

쭈니-1 2009. 12. 8. 19:36

 



감독 : 장진
주연 : 차승원, 류덕환
개봉 : 2007년 5월 1일
관람 : 2007년 5월 4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어린이날 선물을 준비하다.

웅이가 4번째 맞이하는 어린이날. 뭔가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웅이가 원하는 선물은 멋진 태권V 장난감. 영화가 성공했으니 태권V 장난감이 출시될 만도 한데 아무리 찾아봐도 파는 곳을 찾을 수가 없네요.
그 대신 제가 고른 선물은 영화를 좋아하는(혹은 영화를 좋아하는 아빠를 둔) 웅이를 위해서 베스트 애니메이션 컬렉션 DVD 세트입니다.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 10편을 수록한 DVD 세트인데 가격이 겨우 9천9백 원입니다. 며칠 전 웅이에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노키오], [덤보]를 보여줬는데 무척 좋아하길래 아예 DVD 세트로 구매해 버린 겁니다.
이거 왠지 웅이를 위한 선물이 아닌, 내 자신을 위한 선물 같아서 약간 찔리기는 하지만 웅이와 함께 좋은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 제가 웅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며, 웅이도 이런 제 맘을 알아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어린이날에 맞춰 DVD 세트를 받기위해 불광동까지 직접 가서 수령했습니다. 날씨도 좋고, 웅이의 선물도 마련했고, 갖고 싶었던 디즈니 명작 애니메이션 DVD 세트까지 들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들뜨더군요. 그때 멀리서 CGV 불광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 웅이의 어린이날 선물을 산 기념으로 영화를 봐야지!"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CGV 불광에서 보게 된 영화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들]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이건 장진 감독의 영화이다.

강도, 살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강식(차승원)은 15년 만에 단 하루 동안 아들 준석(류덕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3살 때 헤어진 후로 단 한 번도 얼굴조차 못 봤던 아들. 강식은 떨리는 마음으로 아들과의 짧은 만남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15년이라는 세월이 너무나도 큰 벽이었던 겁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은 다가오고 조금씩 준석도 강식에게 마음의 문을 엽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 영화의 스토리만 놓고 본다면 제가 상당히 싫어하는 스타일의 영화입니다.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어디에서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느껴야할지 눈에 휜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정해진 틀에만 맞게 관객들의 감수성도 끼워 맞추려 하는 이런 식의 영화는 분명 제 취향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감독이 장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를 좋아합니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예측불허였고, 장르의 법칙을 따르기 보다는 장진식으로 새로운 장르의 법칙을 개척해 나가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는 여자]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틀을 깨기 힘든 전형적인 장르를 취하면서도 장진식 로맨틱 코미디라는 놀라운 진면목을 보여줬으며, 스릴러 영화인 [박수칠 때 떠나라] 역시 장진식 퓨전 스릴러로 제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장진식 조폭 코미디를 외쳤던 [거룩한 계보]가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거룩한 계보] 역시도 이전의 조폭 코미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신선했던 영화임에는 분명 했습니다.
그런 그가 15년 만에 만난 아들과 아버지가 그동안 잃었던 부성애를 되찾는다는 칙칙한 최루성 멜로 영화를 만든다고요? 그건 겉보기만 그럴 뿐, 이전의 그의 영화처럼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 스릴러, 조폭 코미디를 넘어 이제 최루성 멜로 역시도 장진식으로 개척할 것이라는 믿었던 겁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과연 장진식 최루성 멜로는 어떤 것인지...


 

 

  
과연 장진 감독답다.

제가 예상했던 대로 [아들]은 이전의 최루성 멜로 영화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각각의 캐릭터들의 나래이션이 바로 그것입니다. 최루성 멜로 영화에서 나래이션은 매우 위험한 장치입니다. 아니 그 누구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장치입니다. 최루성 멜로 영화라면 관객이 영화의 상황에 빠져들고 그들에게 공감함으로써 감동하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데, 이 영화의 나래이션은 그러한 관객의 감정이입을 자꾸 방해합니다. 게다가 나래이션이 약간은 엉뚱한 방식이니 슬플만하면 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들기도 합니다.
최루성 멜로 영화에서 눈물을 방해하다니 그것은 거의 자살 행위이죠. 하지만 장진 감독은 그러한 자살 행위를 거침없이 해냅니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슬픈 상황이면서도 눈물보다는 웃음과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정재영, 신하균, 공효진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이루어진 철새들의 목소리도 관객들을 즐겁게 합니다. 15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의 슬픈 하루에 눈물이 글썽일 때쯤 갑자기 튀어나온 이 우정 목소리 출연진들의 재롱은 눈가를 맴돌던 눈물을 다시 쏙 들어가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최루성 멜로 영화가 아니지 않을까요? 최루성 멜로 영화는 관객을 울리는 것이 목표일 텐데, 영화 스스로가 그러한 관객의 눈물을 방해하고 있으니... 하지만 그러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진 감독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이 흘릴 잔잔한 눈물들을 거둬들이는 대신 영화의 막판 강력한 한방의 감동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도대체 장진 감독이 할 줄 모르는 게 뭘까?

'이건 최루성 멜로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여.'라는 개그 프로의 유명한 유행어가 생각날 때쯤 장진 감독은 마지막 반전을 준비합니다. 아니 최루성 멜로 영화에서 반전이라니... 하지만 그 반전으로 인하여 이 영화는 그저 눈가에 흐르는 눈물 이상의 감동을 안겨줍니다.
그 순간 강식의 흐느끼는 울음에 나도 모르게 동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마지막 감동을 위해서 장진 감독은 스스로 관객들이 섣부르게 눈물을 낭비하는 것을 막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를 보고나서 장진 감독이 다시 존경스러워집니다. 하긴 그의 그러한 능력은 이미 데뷔작인 [기막힌 사내들]에서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이렇게 장르를 넘나들며 그 모든 장르들을 장진식으로 재구성하는 모습은 천재적입니다.
과연 그가 만들지 못하는 장르는 무엇일까요? 장진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발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최루성 멜로 영화에서조차 기발함을 보여주는 장진의 능력을 보며 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것만 같아 기뻤습니다. 제가 그의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올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언제나 기발함으로 관객을 즐겁게만 했던 그가 이젠 관객을 눈물 흘리게도 만드네요.
다음 영화에선 또 어떤 장르를 장진식으로 재구성할지... 이제 그의 다음 영화가 무작정 기다려지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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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ook
지난달부터 갑자기 쏟아져 나온 아버지에 관한 영화들 중 두번째로 본 영화입니다. 그리고 제 의견이 반영된 첫번째 영화였구요..

친구들의 의견에 따라 본 영화는 [눈부신날에]라는 영화였는데, 요즘 한창 서신애 붐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더구만요.. 근데 차라리 그 시간에 하던 드라마를 볼것을 잘못했다는 후회를 하고 말았죠..

저도 장진을 좋아하는데 그의 영화가 개봉하면 꼬박꼬박 잊지 않고 챙겨봤어요.. 역시 [거룩한~]은 기대에 못미쳤지만 말이죠.
이영화는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친구들의 반응도 좋았고요.. -제 친구들과는 취향이 조금 맞지않아 영화가 끝난 후에 간혹 불상사가 생기곤 했거든요.-가장 맘에 들었던건 두 부자가 번갈아 가면서, 혹은 교도관까지 가세해서 하는 나레이션과 생뚱맞게 튀어나온 따뜻한 곳 찾아가는 철새가족이었어요... 목소리가 낯익다 싶었더니 엔딩에 목소리 신하균 공효진...지나가더라구요........엔딩보면서 한참 웃었어요..
마지막이 조금 슬펐는데.. 뭐 슬픈채로 끝나진 않더라구요. 마지막까지 눈물 머금은 웃음이 떠나지 않는 영화였어요...
 2007/05/07   
쭈니 요즘 아버지에 관한 영화가 갑자기 쏟아지긴 하더군요.
저는 이런 류의 멜로를 별로 안좋아해서 [우아한 세계], [눈부신 날에]는 전부 안봤습니다만...
역시 장진 감독은 제가 싫어하는 장르의 영화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더군요.
저 역시 대만족스러운 영화였더랬습니다. ^^
 2007/05/07   
져니
장진감독 영화인거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런부류의 영화도 만드나? 싶었죠...
 2007/05/23   
쭈니 결혼도 했으니 이제 이런 류의 영화도 많이 만들지 않을까 싶네요.
남자는 결혼를 기점으로 많이 바뀌거든요. ^^
 2007/05/24   
월드무비
예고편볼때 아.. 이영화도 다봤네.. 하고 재끼려다 볼영화가 없어 보게된 영환데.. 반전에 깜짝 놀라고만... 의외로 골때리는 반전...  2007/06/04   
쭈니 공감...
저도 예고편이나, TV영화소개프로그램을 보고 '다봤다'라는 느낌이 드는 영화가 많답니다.
[아들]도 그런 류의 영화일뻔 했는데 역시 장진 감독답다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
 2007/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