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명준
스텝 : 김명준, 변재훈, 박소현
개봉 : 2007년 3월 29일
관람 : 2007년 4월 25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숙제하는 마음으로...
전 영화는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이해 안 되는 영화제용 영화, 혹은 지루한 예술 영화는 거의 안보는 편입니다.
예전엔 영화제에서 상탄 영화들과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예술 영화는 꼭 챙겨보곤 했습니다. 스스로 영화광이 되고 싶었던 저는 그런 영화들을 봐야 진정한 영화광이 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억지로 보게 된 영화들은 언제나 제게 괴로움만 안겨줬습니다. 천근만근보다 무거운 졸린 눈꺼풀을 참아야만 하는 괴로움, 뭔 내용인지 이해도 못하면서 리뷰를 써야한다는 의무감에 짓눌리는 괴로움.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그러한 괴로움이 싫어서.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그냥 영화를 즐기고 싶었고, 그렇게 즐긴 영화들을 글에 담고 싶었을 뿐, 유명한 평론가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굉장한 영화광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내가 쓴 글을 남들과 공유하고 공감을 얻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 제겐 가장 커다란 기쁨이었던 거죠. 그렇게 억지로 보고, 억지로 쓴 글은 그 누구에게도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우리 학교], 분명 제가 싫어하는 류의 영화입니다. 다큐멘터리인 것도 싫은데, 별 관심도 없는 일본의 조선족 학교 이야기라니... 제가 굳이 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새로 편입학한 방통대에서 [우리 학교]의 상영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왠지 참가해야만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전처럼 숙제하는 마음으로 [우리 학교]를 보러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방통대 교정을 찾은 겁니다.
시간의 무게에 짓눌렸지만...
마치 진정한 영화광이 되겠다는 의무감으로 보기 싫은 영화 억지로 봤던 예전의 얼치기 대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상영회장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이게 왠걸... 스크린은 안보이고 70인치 TV가 덩그러니 놓여있더군요. 순간 밀려오는 실망감.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영화는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2시간이 훌쩍 넘는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볼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회사 끝나고 부랴부랴 오는 바람에 저녁 식사도 못했는데 이 불편한 간이 의자에서 2시간이 넘는 지루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봐야한다니 이건 완전히 최악의 상황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TV에 실망하고, 러닝타임에 짓눌리며 보기 시작한 [우리 학교]는 그래도 다행히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지고, 불편한 의자 때문에 엉덩이가 아팠지만 내가 몰랐던, 아니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접하고 나니 묘한 감동이 밀려오더군요.
[우리 학교]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의 조선족 학교의 아이들 이야기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조선족 학교는 북한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한글 교육뿐만 아니라 김일성 사상 교육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런 제 생각과는 달리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아이들이더군요.
웃고, 떠들고, 조국을 그리워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어린 시절부터 뿌리 깊게 박혀있는 해묵은 반공정신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들을 오해하고 외면하게 만들었던 겁니다.
아마도 김명준 감독이 사별한 아내의 뜻을 받들어([우리 학교]의 원래 연출자는 김명준 감독의 부인인 故조은령 감독입니다.) 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우리 학교]를 찍은 것도 우리들의 그런 오해와 외면을 바꿔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슬프지 않았다. 단지 미안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제 옆에서 영화를 본 분이 제게 묻더군요. "슬프지 않았어요?" 벌써 5번이나 봤다는 그녀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는 군요.
하지만 전 눈물을 흘리지도,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슬프다는 것은 영화 속 조선족 학생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할 때 나오는 감정일 텐데, 그들은 전혀 불쌍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행복해 보였습니다. 가깝지만 먼 일본 땅에서 한국의 전통을 지키려 애쓰며 서로 친구처럼, 형제자매처럼 지내는 학생들과 선생들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영화 속 졸업식에 학생과 선생이 이별을 나누는 장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내 졸업식은 어땠던가요. 공부만 강요당하고, 선생에게 몽둥이 맞는 것이 일과였던 우리는 졸업하는 것이 지긋지긋한 학교를 벗어난다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지 않았던가요?
하지만 미안했습니다. 그동안 그들을 외면해서, 오해해서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깊고도 깊은 편견의 골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더군요.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이 영화가 공산주의를 받드는 조선족 학교를 미화했다고 울분을 토하시던 머리가 히끗하신 할아버지의 성토는 편견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들은 그저 한국을 배우고 싶은 아이들일뿐, 공산주의나 민주주의 같은 이념으로 보면 안 되는 것을...
상영장 밖에는 모금함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작은 돈을 모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보내는 뜻 깊은 모금함이었습니다. 제 주머니엔 만 원짜리 한 장이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그 만원을 쾌척하고 싶었지만 제 저녁 식사를 포기할 수 없어서 또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이기적이기에 5년이라는 시간을 바쳐 영화를 완성하고 우리들의 편견을 없애주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명준 감독이 더욱 위대해 보였습니다. 저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세상이지만 김명준 감독 같은 사람이 있기에 아직은 아름다운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