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7년 영화이야기

[고스트 라이더] - 코믹스의 영웅스럽기만 했다.

쭈니-1 2009. 12. 8. 19:32

 



감독 : 마크 스티븐 존슨
주연 : 니콜라스 케이지, 에바 멘데스, 웨스 벤틀리, 피터 폰다
개봉 : 2007년 4월 12일
관람 : 2007년 4월 12일
등급 : 15세 이상

두려움에 대해서...

아직도 그날의 일이 뚜렷하게 기억납니다. 그날이 몇 년도인지, 제가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상황과 그날 느꼈던 두려움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저는 이발을 하기위해 동네 유일의 이발관에 갔었습니다. 그곳은 저희 동네 입구에 있는 것으로 꽤 규모가 컸으며, 그곳에서 이발 기술을 배우는 분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제가 입구에 들어서자 그곳의 주인아저씨는 열심히 청소를 하던 젊은 이발사에게 제 머리카락을 자르고 시켰습니다. 그 순간 그 이발사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이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머리감기기, 청소하기 등 허드렛일을 하다가 저를 첫 손님으로 맞아들인 거죠.
하지만 그는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제 머리카락을 자르며 다른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인사를 하다가 그의 가위가 제 귀를 자르고 말았던 겁니다.
솔직히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귀 끝이 아주 조금 잘려나간 것에 불과했으니까요. 약간 따끔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 목 주위를 감싸놓은 하얀 천에 귀에서 흘러나온 피가 물들기 시작하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 순간 제 눈엔 오로지 유난히도 하얀 천을 새빨갛게 물들이던 제 피만이 보였습니다. 너무 놀라 울 수도 없었습니다. 이발사 아저씨들이 재빨리 약을 사다가 발라줘서 피는 곧 멎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과장된 이미지로 제 뇌리에 깊숙이 박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충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 달 후 다시 찾은 그 이발관에서 제 머리카락을 잘라주던 이발사는 절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실수로 너의 귀를 자르는 바람에 그는 이곳에서 쫓겨났다'며 안타까워하시더군요. 갈 곳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몇 달을 고생하다가 처음으로 기회를 잡은 것이었는데, 마치 그 모든 제 잘못 같아 죄책감이 느껴졌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그 이발관을 갈 수가 없었으며, 지금도 이발 가위가 제 귀에 닿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움찔합니다. 어찌 보면 어린 시절 흔하게 겪었을 작은 사고에 불과하지만 제겐 마음 속 깊숙이 두려움으로 자리 잡은 겁니다.


 

 


영웅들에게도 두려움은 있다.

사람들은 내면 깊숙이 자기 자신만의 두려움을 하나 이상은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바퀴벌레를 무서워하고, 어떤 이들은 쥐를 무서워합니다. 과연 그들이 바퀴벌레나 쥐에 물려서 그렇게 무서워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아닐 겁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들에 대한 과장된 이미지들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미국 코믹스의 영웅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두려움을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 캐릭터에 표현한 기발함 때문입니다.
코믹스는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로 나뉩니다. DC 코믹스의 대표적인 영웅은 '슈퍼맨'과 '배트맨'이고, 마블 코믹스의 대표적인 영웅은 '스파이더맨', '엑스맨', '헐크' 등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 내면의 두려움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은 모든 것을 가진 백만장자이며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이지만, 어린 시절 우물에 갇혀 박쥐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이후 그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고, 결국 그의 그러한 두려움은 부모님의 우연한 죽음으로 연결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그는 그 두려움을 떨치는 방법으로 스스로 그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가 '배트맨'이 된 이유입니다. 하지만 '배트맨'이 되어 정의를 위해 싸워도 그 내면 깊숙한 곳의 두려움과 그로인해 죽음을 맞이한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슈퍼 히어로가 된 그는 자신의 엄청난 힘을 방치한 대가로 삼촌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메리제인에게 다가갈 수도 없는 처지에 빠지죠. 그의 경우 자신이 가진 초인적인 힘이 오히려 두려움으로 자기 자신을 옮아 매고 있습니다. 3편에선 그런 피터 파커의 두려움을 형상화한 '블랙 슈트 스파이더맨'이 탄생한다니 이 영웅의 두려움에 대한 스스로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그리고 여기 또 한명의 코믹스 영웅이 탄생했습니다. '스파이더맨'과 마찬가지로 마블 코믹스의 영웅인 '고스트 라이더'가 2007년 드디어 영화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고스트 라이더, 그에겐 어떤 두려움이?

기왕 두려움이라는 주제로 이 글을 시작했으니 '고스트 라이더'인 쟈니 블레이즈(니콜라스 케이지)의 두려움도 짚고 넘어가보죠.
사실 쟈니의 두려움은 브루스 웨인이나 피터 파커와 비교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멋모르고 한 악마와의 계약 때문에 사랑하는 아버지를 사고로 잃은 그는 자신의 실수로 아버지가 죽었다는 죄책감과 악마인 메피스토(피터 웨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젊은 시절을 보냅니다. 유명 모터사이클 스턴트 챔피언으로 명성을 떨치지만 그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스턴트를 자처하는 이유는 어쩌면 죄책감과 두려움을 떨쳐 버리려는 자기 자신만의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두려움의 대상인 메피스토가 다시 찾아와 자신에게 반기를 들은 타락천사 블랙하트(웨스 벤틀리)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쟈니는 밤이 되면 스스로 원치 않는 '고스트 라이더'가 되어 블랙하트와의 목숨을 건 대결을 벌입니다.
'배트맨'이 두려움의 대상인 박쥐를 역이용하여 스스로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고, '스파이더맨'은 자기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린 초인적인 힘을 두려워하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면, '고스트 라이더'는 오히려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하는 운명에 처한 것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명령을 들어야하는 굴욕감과 두려움은 분명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이며, 자신이 원치도 않는 그 힘으로 인해 첫사랑의 여인 록산나(에바 멘데스)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아픔은 여자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배트맨'과 메리제인과 러브 라인이 형성되고 있는 '스파이더맨'에 비해 더욱 절망적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고스트 라이더'는 다른 코믹스 영웅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혼자라는 외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고스트 라이더]는 그러한 쟈니의 어두운 면모를 표현하는데 별다른 심혈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마크 스티븐 존슨 감독은 [배트맨 포에버]와 [배트맨 앤 로빈]의 조엘 슈마허 감독처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재미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고뇌하지 않는 영웅은 코믹스 영웅의 자격이 없다.

이쯤에서 또다시 [배트맨 포에버]과 [배트맨 앤 로빈]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엄청난 제작비와 초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속 알맹이는 빠뜨리고 겉모습만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농담이나 주고받는 바람둥이 영웅 '배트맨'이라니...
그렇기에 [배트맨 비긴스]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배트맨'을 원상태로 돌려놓기 위해 아예 처음으로 되돌아가 '배트맨'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다시 고뇌하는 '배트맨'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하지만 [고스트 라이더]는 두려움의 실체를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시작은 하지만 그 의도는 [배트맨 비긴스]와는 완전 다릅니다. 애초부터 쟈니의 두려움과 죄책감은 [고스트 라이더]가 코믹스의 영화임을 과시하는 수단에 불과할뿐입니다.  이 영화가 노린 것은 할리우드 특수효과로 재탄생된 화려한 비주얼과 액션 블록버스터 본연의 의무인 신나는 재미일뿐입니다.
연기파 배우인 니콜라스 케이지도 그러한 감독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고뇌보다는 약간은 시니컬한 영웅의 모습에 치중합니다. 클라이막스에서의 그의 대활약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웅의 슈퍼 파워의 전형이며, 여기에 록산나까지 여전사로 가세를 하고나니 영락없는 신나는 액션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죄책감을 느끼는 척, 메피스토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뇌하는 척하던 쟈니는 마지막엔 속편을 연상케 하는 멋진 한 마디를 날려줌으로써 슈퍼 히어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무시무시하게 등장한 블랙하트와 특이한 재능을 가진 블랙하트의 부하들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쓰러지는 것은 당연히도 '고스트 라이더'를 좀 더 뽀대나게 치장하려는 감독의 의중으로밖에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고스트 라이더'가 두려움의 대상인 메피스토에게의 도전했음에도 별 흥미가 안 느껴지는 겁니다. 분명 블랙하트에게 했던 것처럼 멋지게 이길 텐데 궁금할 이유가 없죠.
물론 속편이 개봉한다면 전 또다시 극장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코믹스 영화는 분명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속편에선 제발 '고스트 라이더'가 코믹스 영웅스럽기만 보이지 말고 진정한 코믹스 영화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길 바랄뿐입니다. 고뇌하지 않는 영웅은 코믹스의 영웅으로 어울리지 않으니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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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쉬 푸싯~
이거보다 졸앗또요 ㅋㅋㅋㅋㅋㅋㅋㅋ
 2007/04/22   
쭈니 우리 구피도 졸던데... ^^  2007/04/23   
ZARD
최악..  2007/04/23   
쭈니 제 솔직한 견해로는 이 영화보다 더욱 엉망인 영화는 많았답니다. 그러니 최소한 제겐 최악은 아닌 셈이죠. ^^  2007/04/24   
길가던행자
친구의 깔끔한 한마디. 이거 녹음한 테이프가 아깝다 =ㅅ=.....
만드는데 든 제작비가 아깝다는 말보다 강력한 한마디;;
문제는........공감했던 1人 =ㅅ=
 2007/08/11   
쭈니 왠지 저도 공감...  2007/08/11   
이빨요정
정말 설명하기도 힘든 최악이었던 영화.
마치 영화와 원작만화를 모욕하는듯한 느낌.
 2009/01/04   
쭈니 ㅋㅋㅋ
이 영화에 대해서 좋은 평을 내리시는 분을 아직 한 분도 못만난... ^^
 2009/03/29